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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Sep 07. 2021

먹고 살만해지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베짱이로 사는 기쁨

100세를 넘긴 할머니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었더니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 채식 같은 뭔가 현대의학이 기대하고 있는 대답이 나올줄 알았는데 의외로 하고싶은대로 살다보니 지금까지 살았다라고 대답했다는 한 라디오방송을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 할머니는 채식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간간히 술도 마시고 심지어 담배도 태우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결국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스트레스없이 살아온게 장수의 비결이라는 영양학적 접근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현재를 즐겨라’, ‘오늘같은 내일은 없다’ 이런 현실만끽형의 조언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나친 농담까지도 받아줄만큼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먹고 살만 하면 죽는다. 먹고 살만해지면 하고 싶었던 것들, 한 가지라도 지금해라'. 이런 말에 철없는 소리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있다면 아마 지금 내가 얘기하려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20대 후반, 그리고 결혼하고서도 내 인생의 일부는 베짱이로 살기로 결심했던터라 이런 게으름뱅이의 삶은 낯설지 않다. 이런 생각이 사람마다 다를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다양한 의견들을 존중하면서 살아왔는데 최근에 내 베짱이 이론을 더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주변에서 먹고 살만해졌는데 삶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긴 사람을 몇몇 목격하고 나서부터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 내일 당장이라도 문제를 마주할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더욱 베짱이로 사는 삶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세뇌해보려고 한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이제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Sarah는 무척 밝은 사람이다. 젊은 나이, 꽃다운 청춘에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이민와서 이제는 미국에서 산 세월이 필리핀에서 산 시간들을 한참 추월했고 지금은 딸과 함께 뉴욕에 살고있다.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얼굴과 꾸준히 게을리하지 않는 운동 덕에 키는 크지 않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에게도 주목을 받곤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요즘 말하는 '빵터지는' 유머도 곧잘해서 오히려 여자들 사이에서 더 인기가 좋은, 그저 현재에서 더 바랄것 없는 그녀에게 최근에 비보를 듣게 되었다. 호흡이 좋질 않아서 최근에 응급실에 간적은 있지만 큰 병이라고 생각은 해본적도 없는데 갑자기 의사가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보라고 하니 겁이 덜컥 난 모양이다. 너무 겁이 나서 친구인 내 아내에게 동행을 요청하여 함께 검진을 하고 며칠 후 검진결과를 보러갔더니 폐암2기라는 날벼락같은 진단을 받았다. 현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암발병률이 제법 높아서 암이야 누구나 걸릴수 있다고 하지만, 그리고 그나마 2기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만 그녀는 비흡연자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암검진을 받고 있는 의료인인데 말이다. 암은 가족력을 무시할수 없는게 Sarah의 부모님 중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얘길 나중에 듣긴 했지만 이런 병력까지 붕어빵처럼 유전되는걸 보면 인간미없는 과학을 미워할수 밖에 없게 된다. 간호사로 20여년을 일하면서 누구보다 건강에 신경썼다고 자부했던 그녀가 아마도 검진을 게을리한 암 중에 하나가 폐암인데-여자들은 보통 여성암 검진을 꾸준히 한단다- 이 놈의 암은 정말이지 징그럽게 질기고 혐오스럽기 까지 하다. 게다가 더 심각한건 전이가 발견되어 치료가 만만치 않을것이라는 점인데 그녀를 여러번 봤고 피크닉을 함께 간 적도 있어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순 없는 나로써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했던가. 그녀는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오면서 작은 아파트를 구입했고 모기지를 빨리 갚고 싶고 하나뿐인 딸을 경제적으로 더 지원해주고픈 마음에 투잡을 뛰기 시작한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주 6-7일씩 근무하면서 격무에 시달리고 벌이는 더 좋아졌겠지만 그녀의 건강은 피폐해지고 있다는걸 그녀조차도 몰랐나보다. 이런 와중에 본인 스스로보다, 다 큰 딸을 엄마로써 걱정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모성애는 본능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어떤 것들보다 선행되는 감정인가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불행중 다행인건 그녀가 근무하는 종양내과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가 그녀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고 직원이라 빠르게 대처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녀를 진료하는 그 유능한 의사의 비서 또한 최근에 암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도 전해 듣고나니 돈이 다 무슨 소용이고 직업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돈을 벌다보면 돈이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되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좀 쉬어갈 필요가 있다. 판데믹으로 온 세계가 멈춰있을때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안도했던 것은 그 동안 돈버는 것 못지않게 적당히 쉼표를 찍으면서 달려왔다는 점, 내가 소망하는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반면에 틈틈이 평소 내가 하고픈 일들을 조금씩 하면서 살았다는 점이다. 사진 한 장 남지 않았지만 예전에 다녀온 하와이, 정말 엽서속의 그림같은 스위스, 이직하기 전에 바람쐬러 다녀온 미국 서부의 캐년들이 머리속을 스쳐가며 '그래, 그 정도면 됐지뭐'라고 스스로 갇혀있게 될 시간에 대해 자위하며 되뇌었더랬다. 더 많은 여가시간과 더 적은 스트레스를 위해서 기꺼이 더 많은 수입을 포기하겠다는 다운시프트족(Downshift Lifestyle)이라는 말이 나온건 이미 오래전 얘기지만 여전히 우리는 브레이크 밟는 법을 잊은듯이 멈추지 않았고 일부는 행복을 위해 기꺼이 그 달리는 기관차에서 뛰어내렸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쉴새없이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은 채 미래, 은퇴준비라는 허울좋은 핑계로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게 몰아부치면서 살고있다. 은퇴하면 뭐하고 싶은가 물어보면 적당한 면적의 내 집을 갖고 가끔 문화생활을 즐기고 여유롭게 세계여행을 다니고 싶고 여건이 된다면 함께 늙어가는 배우자와 뚜껑이 열리는 컨버터블을 타고 부는 바람을 만끽하고 싶다고들 말한다. 물론 은퇴를 준비하는 것이 더 많은 부유함을 위함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의 여유를 갖기 위한 아주 필수적인 것들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 내가 묻고 싶다. 세계여행을 지팡이를 짚고 다녀도 상관없는가? 그렇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건강한 두 발로 즐겁게 거리를 누비면서 여행하고 싶은가? 그리고 뚜껑이 열리는 컨버터블을 배우자와 함께 타고 싶은가? 아니면 배우자가 죽고나서 혼자서 쓸쓸하게 컨버터블을 타고 싶은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아무도 알수 없다. 다만 내일도 오늘처럼 건강하고 무탈하기만을 기도하면서 살 뿐이다. 웹서핑하다 또는 카톡으로 전해주는 좋은 말씀(?)들 중에 너무도 자주 나오는 말이라 닳고 닳아서 이제는 흔해져 버린 말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바로 지금이고 그래서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라는 말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에게 지금의 건강과 안녕한 하루가 미래에도 아니 당장 내일도 계속될지 불확실하고, 즐길 수 있는 지금이 즐겁게 보낼 지 알 수 없는 다음 일주일보다 낫다는 것을 전하려는건지도 모른다.


자,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세상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길이 있다. Covid로 한참 어지러운데 밖으로 나가라고 독려하려는게 아니다. 하고 싶었던 일이 생각해보면 별거아닌 것에 의해, 아니면 또 다른 사소한 것으로 인해 방해받고 있다면 과감하게 장애물을 제거하고 오랫동안 원하던 당신의 크거나 작거나 상관없이, 의미있는 소망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발짝 나서보자.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신만이 알고있다.


덧, 베짱이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혹시 배짱이였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맞춤법을 확인하려고 구글검색을 하다가 찾은 ‘베짱이찬가’의 가사인데 들어보진 않았지만 가사만은 주옥같다.


미루고 미루다 행복은 없어

오늘은 또 다시 없어

어느덧 시간을 벌써

Come on and wake you up

 

이렇다 저렇다 거짓된 희망은 치워

싸우고 다투고 살다간 지쳐

 

습관이 돼버린 경쟁에 미쳐

똑같은 틀 안에 갇혀

아무도 모르게 묻혀

come on and wake you up

 

어렵게 포장된 거짓된 이론은 치워

입맞춰 줄 맞춰 살다간 미쳐

 

Ring Ring Ring a Ring a

Ring Ring Ring a Ring a

노래나 부르며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잘고 싶어

 

Ring a ~ 둥글게 살고 싶은 메아리야

Ring a ~ 너와 내가 웃고 싶은 멜로디야

Ring a ~ 잡히지 않는 행복은 신기루야

Ring a ~ 빙글빙글 어지러운 세상이야

 

고개를 들어봐 아무도 없어

네 위엔 아무도 없어

눈치 볼 필요가 없어

come on and wake you up

 

죄인이 돼버린 춤 추고 노는 사람들

여기로 여기로 다 같이 뭉쳐

 

그 누가 뭐래도 네가 더 멋져

즐기는 그런 게 멋져

내 눈엔 네가 더 멋져

come on and let me in

 

이렇다 저렇다 떠들면 뭐라도 된듯

피곤한 사람들 이거나

 

Ring Ring Ring a Ring a

Ring Ring Ring a Ring a

노래나 부르며 손뼉을 치면서

즐겁게 살고 싶어

 

또 어딜 바삐 바삐가 세월이 바삐가

쉬었다 같이 갑시다 둥글게 갑시다

모든 게 바삐 바삐가 흘러가 바삐가

노래나 같이 합시나 놀면서 합시다 x 2

Please Refill the Battery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

쳇 바퀴 속을 돌고 있었군

다 흘러 흘러 흘러 놓쳐 버린 시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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