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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Sep 03. 2021

포도밭 연금술사

단산에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최근 웹사이트에 가입하려면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경우나 본인인지 확인해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 Security question에 대답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당신의 초등학교의 이름은?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은? 배우자를 만난 장소는? 좋아하는 색깔은? 좋아하는 과일은? 등이 그것인데 사실 이런 질문에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답이 떠오르는 나는 항상 비밀번호를 찾고 본인확인을 하는 과정에 애를 먹곤 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과일에 대한 질문에는 언제나 '포도'라고 올바른 대답을 해왔다. 어떤 대상에 대한 선호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여름에 태어난 나의 생일상에는 언제나 싱그럽고 까맣게 익은 포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릴때부터 포도를 즐겨먹었으니 자연스레 좋아하는 과일이 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포도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나이가 먹고서 알게되었고 나는 포도와 또다른 작은 연결고리를 만들게 되었다.


포도하면 충북 영동포도, 대부도 송산포도 등등 유명한 곳이 많지만 나는 경북 영주의 단산포도를 최고로 친다. 그렇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지극히 주관적인 나만의 선호이긴 하지만 단산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포도산지다. 나만의 주관적인 선호도에 대해 설명하자면 약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한다. 아마 2013년이었을텐데 하시던 사업을 접고 현업에서 은퇴하신 후 그럭저럭 지겨운 노년을 몇 년 보내고 계시던 부모 두 분은,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어느 날 경북 영주에 대략 1천평 남짓되는 포도밭을 구입하고 오셨다. 갑자기 고향도 아닌 제 3의 지역에 있는 포도밭을 구입했다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모님이 영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셨고 우리 엄마는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당신의 형제자매들을 찾아가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포도농사를 짓는 이모를 찾아가 돕는 일이었고 두 해 연속 영주에 다녀오시면서 거기서 좋은 포도밭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들으셨던 모양이다. 가족과 상의없이-사실 가족과 상의하면 더 복잡해져서 포도밭은 꿈도 꿀수 없었을테지만-덜컥 포도밭을 샀다는 얘기를 듣고 집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직접 농사를 지으려고 산거냐, 누가 농사를 지을건지 생각해봤냐 등등 질문들이 쏟아질 참이었지만 엄마는 가족들에게 그런 질문을 할 일말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3월 하순쯤 포도밭을 매입했더니 바로 포도농사를 시작할 시기라 의도치않게 가족간의 대화는 이미 사치가 되었고 등기이전을 하자마자 농장주인이 되어 비료를 뿌리고 하우스 비닐을 정비하고 포도가지를 치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이미 오랫동안 포도농사를 짓고 있던 이모님이 간간히 코치를 해주긴 했지만 거기도 농번기에는 바쁘긴 마찬가지라 한번도 직접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우리 부모님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첫 해를 보내며 좌충우돌 포도농사에 도전하게 됐다. 귀농하시기 전, 100여평 정도의 텃밭에 고구마, 감자 등 각종 작물을 심어 자급자족한 후에 자식들에게도 택배로 보내준 경험이 있는 아버지는 텃밭에서의 경험을 워밍업삼아 포도농사라는 본게임에 들어서니 물만난 고기처럼 농사에 진심을 보여주었고 그야말로 밤낮없이 포도농사를 위해 노력했다. 달랑 포도밭만 구입한터라 동네 이장님께 부탁해서 근처에 비어있는 집을 임시로 빌려서 잠을 해결하고 사람을 불러 급하게 농막을 지어서 거기서 끼니를 해결하면서 그럭저럭 포도농사의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나 역시 그동안 뭐하나 부모님께 해드린게 없었는데 가까운 거리에 다니기 편하도록-가까운 거리 이동 뿐만 아니라 농사지을때는 각종 비료, 공구, 농사물품들을 싣고 내리는 일이 많아서 트럭은 필수다- 중고 1톤 트럭을 구입해 드렸을때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이 두고두고 머리속에 남는다. 이렇게 대충 필요한 것들을 갖추었고 농사에 도가 튼 언니(엄마의 언니인 이모)가 근처에 있긴 했지만 어제 귀농한 사람이 누군가의 손길을 빌리기엔, 아니 돈을 주고 일손을 사는것 조차 안면이 없는 사람에겐 쉽지 않았고 그 자리는 고스란히 가족들이 메꾸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대충 5월부터 9월까지 매주 또는 격주로 영주에 내려가서 일을 도왔고 포도에 대한 아버지의 진심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선무당이 사람잡듯 신들린(??) 꿀포도를 수확했고 판매실적도 포도농사 초년생치고는 괜찮았다. 당시 집에서 유일하게 차를 가지고 있던 나는 주말마다 또는 격주로 누나들을 태우고 포도일을 도왔고 포도를 수확하는 8월말부터 9월말까지는 그야말로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해가 질 즈음엔 포장한 포도를 트렁크와 뒷좌석에 가득 싣고- 승용차라 대충 30박스 언저리까지- 주문받은 포도를 배달하고 돌아오곤 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이쁘다고 나에게만 꿀포도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있었지만 다행이도 소비자들 대부분 포도가 달고 맛있다고 엄치를 치켜 세워주었고 그들은 우리집 포도의 매니아가 되어 매년 포도를 사기위해 우리 포도밭에 들르거나 전화로 연락을 하곤 한다.  

알맹이가 꽉 들어차있다.

첫 해 농사가 끝나고 나서는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도 칭찬을 하기 시작했고 다음해도 역시 포도농사는 쉽지 않았지만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도 조금씩 안면을 트면서 농촌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실은 우리 엄마가, 농사는 신의 영역이라고들 하는데 날씨가 너무 좋기만 해도, 너무 비가 내리기만 해도 문제고, 수확시즌에도 적당히 뜨거운 햇볕이 내려야 포도가 달기 때문에 쉽사리 작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지방소도시에서 작은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농사일에 관심이 있었는지 텃밭을 가꾸다가 본격적으로 포도농사를 시작하면서는 많은 시간을 농사에 할애했다. 둘째 해에는 손이 꼼꼼한 형의 도움으로 포도밭 한 켠에 별도의 포도작업장도 만들고 포도작업을 하다보면 적지않은 운전자들이 차를 세우고 포도를 구입해갔고 그들은 그 다음해,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잊지않고 우리 포도밭을 찾아왔다. 소문난 맛집처럼 무슨 대단한 비결이 있나 싶지만 우리(자식들)는 '아버지의 거름손'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포도밭이 햇빛이 완벽하게 들어오고 해가 지기 직전까지 볕이 드는 위치인데다 경작하는 사람들이 애정어린 손길로 포도를 가꾸어주니 완벽하지는 못할지언정 그 열매는 그야말로 달고 또 달다. 포도는 잘 익었지만 송이가 너무 작아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은 따로 분류해서 포도즙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포도즙을 좋아하는 우리 형은 포도송이를 대충 모아서 즙을 짜는 다른 농장과는 다르게 일일이 줄기를 제거하고 포도알을 따서 여러번 세척한 후에, 그리고 더 많은 함량의 포도로 즙을 짜내어 고품질의 포도즙을 만들어냈다. 실은 자신이 먹을 포도즙이라 더 진하게 즙을 내어 먹으려고 특별히 더 신경썼다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 내 가족이 먹는다는 정성으로 짜낸 포도즙 역시 주변에서 많이 도와준 덕에 많이 나오지도 않지만 매년 완판되어 작으나마 불용재고가 쌓이면 어쩌나 고민하시는 부모님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보통 이정도 송이들은 "특"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입지가 좋고 포도가 실하게 열리는 포도밭을 판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첫해 포도농사가 끝날 즈음에 알게되었는데 그 동네 이장님이 포도외에도 여러가지 농사를 짓는데 모든 농사에 일일이 신경쓸 겨를이 없고 포도밭은 몇년간 작황이 안좋아서 판매하게 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우리가 포도밭의 주인이 될려고 하니 이렇게 딱딱 맞아 떨어졌나보다. 우리 포도밭이 너무 잘 돼서 이장님 배가 좀 아플지는 모르지만 서로 윈윈한 상황인게 온전히 포도에만 집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에게 포도는 Everything이었고 이장님에게 포도밭은 그야말로 One of them이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수 있겠는가.

휴식시간에 잠깐 찍어본 우리집 거름손.

그런 포도농사가 올해로 9년차다. 체력이 떨어지고-사실 체력이 떨어지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우리 아버지는 80대 초반이다- 농사일이 힘에 부치다보니 재작년부터는 작업능률도 떨어지고 작년에는 농사짓다가 다치기까지 해서 올해부터는 농사일을 그만하시는게 어떠냐고 권하기도 했고 부모님도 당신들의 마지막 즐거움을 내려둘 때가 됐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아무런 경험도 없이 시작한 포도농사 9년이, 평생 농사지은 분들께 비할바는 아니지만, 애정을 갖고 가꾸어온 부모님에겐 길다면 긴 시간이라 이미 그 땅에, 그리고 그 땅이 주는 열매에 대한 애착을 버릴수 없었는지 올해 3월에도 다시 포도를 가꾸기 위해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영주로 가셨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새까만 포도가 뜨거운 햇살 아래 영글어가고 오늘도 그 곳에서 메마르고 앙상한 나무에서 포도를 주렁주렁 열리게 하는 포도밭의 연금술사로 살고 있다. 아, 포도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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