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
“Yo~ My friend, 잘 지내지?“ 카카오톡 알림이 울린다. 언제나 그랬듯 안부를 묻고 올해는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 올라가서 좋겠다는 말과 함께 직관하러 갈건지 묻는다. 한 경기에 1천불을 훌쩍 넘는 티켓값을 지불하고 갈 필요는 없겠다 싶어- 티켓값을 지불할 돈도 없지만- 집에서 티비중계가 훨씬 보기 편하겠다고 대답한다. 미국살아서 맘만 먹으면 MLB 야구, NBA 농구, NFL 미식축구 뭐든 볼수 있고 여유롭게 살아서 좋겠단다. 나보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서 ”개부럽“다고 덧붙인다.
아메리칸드림. 모든 이민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엄청나게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지만 사실 나처럼 나이를 제법 먹고 이민온 사람은,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는 것과는 별개로 온전히 미국사람으로 살긴 쉽지 않다. 온전한 미국사람이라는 개념이 서로 다를수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내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거주기간도 언어구사의 능숙함도 아닌 미국을 고향처럼 편하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전히 미국사람이 된게 아닐까 생각한다. 인천공항에 착륙해서 느끼는 편안함을 미국 JFK 공항에 내려도 느낄수 있다면 온전히 미국사람이 되었다고 보겠다. 하지만 나는 출장, 여행으로 수없이 JFK, La Guardia, Newark 공항을 드나들었지만 아직 그런 편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고 전보다는 편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입국심사 받을때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공서, 식당 등도 편한 곳 보다는 편치 않은 곳이 여전히 훨씬 더 많다. 10여년 전 이민오기전엔 미국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미국인들과 편하게 어울리는 상상, 북적거리는 맨하탄을 맘만 먹으면 갈수 있겠다는 생각에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역시 현실과의 괴리는 제법 컸다. 미국에서 K-POP도 대중화되었고 한국영화, 한국드라마가 채널마다 나와서 격세지감을 느끼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나같은 아재에겐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 중 몇가지를 얘기해보면 첫번째는 음식이다. 뉴욕은 전세계 음식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한국음식을 포함해, 아시안푸드는 이제 더이상 특별할게 없는, 매우 흔한 음식이 된지 오래다. 코리아타운에 가면 즐비해 있는 한국식당은 더이상 한국사람들만의 장소가 아닌, 전세계 여행자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즐기는 곳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나처럼 오래 한국에서 살다온 입장에서 한국에서 먹던 맛인가 물어보면 확실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식업 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 접하는 많은 아시안 푸드는 미국인들 입맛에 적절하게 맞춰진 '개량식'이라고 생각한다. 고추장이나 고추가루 등 매운 맛은 어느 새 중화되고 그 자리는 단맛이 차지하고 있어 손수건으로 땀닦으면서 먹던 그 맛을 보려면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선택의 폭도 한국만큼은 아니다. 여기서도 한국음식을 즐겨 먹지만 한국에 갈때마다 더더욱 한국음식을 즐겨먹는 말도 안되는 이유다.
옷 얘기를 하면 좋은 점과 불만이 공존하는데 뉴욕은 패션의 아이콘이기도해서 많은 패션쇼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브랜드가 곳곳에 입점해있다. 게다가 아울렛에서는 연휴때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 지나서는 사람으로 북적거리긴 하지만 어마어마한 할인으로 괜찮은 아이템을 헐값에 건질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옷을 사러가면 뭔가 조금 부족함을 느낀다. 바지길이가 긴건 그렇다 치더라도 슬림함 보다는 푸대자루같이 넉넉한 티셔츠, 맘에 드는 옷이 있어도 작은 사이즈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점을 생각하면 돈을 조금더 지불하더라도 한국에 가서 사는게 낫겠단 생각을 가끔한다.
미국에 살면서 관공서에서 업무를 보면 속터지는 경험을 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DMV, 영주권, 소셜시큐리티카드를 발급하는 USCIS 등에 서류를 신청하면 지급으로 처리해도 어찌나 느린지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당일 발급받거나 여권을 길어야 일주일 내에 받아본 사람이라면 미국 관공서 서비스에는 숨넘어갈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뭐든 미리미리 여유를 두고 준비해야 낭패를 면할수 있다. 빨리빨리(8282)의 민족을 만족시키기엔 미국의 서비스는 너무 느리다.
이런 불편함도 있지만 한국에서 오래 살다가 미국에 오면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프라이버시다. 퇴근하면 아무도 회식하자고 하지 않고 아무도 맥주한잔 하고 가자는 사람이 없다. 퇴근하고도 추가로 업무를 볼 필요가 없고 카카오톡 메시지도 오지 않는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국에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 살다가 갑자기 Interaction이 사라져 허전하고 늦게까지 문열고 배달하는 음식점이 없어서 따분한 저녁시간을 보내는 한국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한국사람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고 나와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소주 한잔 걸치는 모습은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뉴욕이나 뉴저지에선 흔한 풍경이다. 한국사람들만큼 사람들과 어울리는걸 좋은 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자식들 미국에 보내서 어학연수라도 해주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 친구는 미국으로 건너와서 사는 내 모습을 참 부러워한다. 내가 미국살이를 10여년 하다보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한국사람이 제일 살기 좋은 곳은 바로 한국이다. "친구, 부러워할거 없어. 한국사람은 한국에 사는게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