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의 부고
몇개월 전, 날씨가 추워지기 전이니까 아마도 작년 10월 하순쯤인데 연말에 한국에 가려는 계획을 마무리하고 입국날짜를 부모님께 알려드리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날 비가 많이 오고 있어서 자질구레한 농사 일은 잠시 미뤄두고 쉬고 계셔서 마침 통화를 하게 되었다. 꾸릿꾸릿한 날씨때문인가, 아니면 전화를 자주 못드려서 서운하신건지, 오늘따라 엄마의 목소리가 무겁게 느낄 무렵 전화 너머로 이모부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약간 떨리지만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부고를 전하는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슬픔을 느낄수 있었고, 아주 건강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병도 없었던 이모부의 부고에 상실감을 감추지 못했다. 해보고 또 해봐도 익숙하지 않은 게 바로 이별이라고, 아버지보다 3살 아래인 이모부와 가족들은 오랜 시간 우리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서인지 부고를 듣고는 '아이고, 저런'이라는 판에 박힌 탄식 밖에는 내뱉을 수 없었다. 사실 내 친구들 중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보다 아직 생존해 계신 경우가 더 많아서 그런가 지금까지는 부고를 들어도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점점 가까운 친인척들의 죽음에,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낯선 감정들이 느껴지고 이모부 가족과 미운정 고운정이 쌓인 엄마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까지는 감출수가 없었다.
나와는 동갑인 규섭, 나보다 두살 아래인 동생 민섭은 사는 곳은 달랐지만 초등학교 때 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왕래가 끊이질 않았다. 이모부는 강원도 태백의 황지탄광에서 통근버스를 운행하셨고 그 당시에는 탄광업이 활황인 시기라 무려 회사에서 직원에게 제공하는사택에 살았는데 나는 방학때마다 이모네 놀러가는걸 좋아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자동차로도 꼬부랑 커브길을 여러번 지나야 하는 통리재를 기차로 가다보니 방학때마다 기차가 후진하는 '스위치백'을 경험하는 즐거움도 내게는 잊지못할 추억이었다. 그러다 이모부가 우리가 살던 동네로 이사를 오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돕기도 많이 돕고 중간중간 서로 맞지 않아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술을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우리집 사람들과 달리 이모부는 한 말통을 마셔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을 정도로 술을 좋아해서 같이 모여서 식사하는 날에는 빨리 끝내려는 우리 식구들과 조금 더 마시려는 이모부 식구들과의 팽팽한 긴장감도 지금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추억이었나보다. 이모부는 약간 깡마른 체격에 항상 자신감, 때로는 허세를 부리며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던 모습, 그리고 심각한 대화중에도 뜬금없이 농담을 섞어서 분위기를 재미있게 해준 덕분에 두 이종사촌들과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고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왕래할 정도로 가까웠다. 7-8 년 전까지는 부모님의 포도농사를 도와주러 오셔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가실 정도로 즐겁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미국에 오고 나서 오랫동안 찾아뵙질 못해 이모부의 농이 그리울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수 없게 되었다. 하늘나라에선 평소 즐기시던 술과 담배를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고 명복을 빈다.
80-9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기를 지나온 어른들, 이제 70대, 또는 80대가 된 우리 부모님들의 시간이 끝나감을 보노라면 여러가지 생각이 스친다. 나도 언젠가는 늙겠지만 80대 중반인 우리 아버지도 밖에 나갈때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발을 떼는 모습에, 미래의 내 모습 같아서인지, 힘빠진 아버지의 뒷모습이 애처로워서인지, 애써 먼 산을 올려다본다. 나이가 들고 연락이 뜸해서 이젠 서로의 안부조차 알수 없지만 신사생인 우리 아버지가 나름(?) 젊을 때 어울리던 동갑 어르신들 중에 지금까지 생존하신 분의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오늘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발을 끌고 목장갑을 끼고 악착같이 운동을 나가신다. 가난을 벗어나 먹고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일하고 그저 자식들 잘 키우는게 그저 당신 삶의 과업이라 생각하고 당신들의 인생을 기꺼이 갈아넣은 우리네 부모님들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연말에 부모님과 식사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도 뭔가 더 하고 올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건 내가 불효자라서 일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온 그 말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이 다시금 내 머릿속에 맴돈다. 올해도 언제 한국에 갈지 달력을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