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을 해도 삶은 계속된다

퇴사를 못하는 퇴사희망자들에게 주는 희망

by 지구별하숙생

지난 10월에 자의로 퇴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할까? 라는 생각이 오늘 문득 들었다.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 퇴사를 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번 퇴사를 계기로 깨달았다. 사실 수 년 전 재미로 해보는 심리테스트를 하고 내 성향을 어느 정도 알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리테스트일 뿐 실제 상황에서의 나를 가늠하긴 어려운 잣대였다. 그 심리테스트는 "지금 사막을 건너고 있는 당신은 사자, 소, 말, 원숭이, 양 중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무엇부터 먼저 버리겠습니까?"였고 먼저 버린 순서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건 사자였다. 사나운 사자를 데리고 다니면 적어도 황량한 사막을 건너면서 만날 수 있는 외부 공격에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선택을 했는데 여기서 사자가 의미하는 것은 자존심으로 재미로 해 본 테스트였고 내가 자존심이 강한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2024년 9월, 회사 내부적인 사정을 계기로 불과 2주만에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조금씩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니 2주라는 시간이 성급하게 결론내린 기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가 다니던 일본회사는 어떠한 회사의 조치에도 그저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며 그야말로 '가늘고 길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가득한,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분위기라 퇴사통보에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불가피한 이유가 없는 한 이직을 하지 않고 한 회사에서 퇴직할 때까지 다니는게 일반적인 일본회사 특유의 분위기도 한 몫 했겠지만 반대로 그렇게 참고 오랜 시간 지내다보면 상황이 반전되어 결국 돌아가면서 기회를 얻게 되는 순간도 있으니 요즘 말로 '존버'하다보면 볕들날도 오긴 올 것이다. 나는 목빼고 그런 날만 기다리면서 살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사자를 버리지 않는 나는 자존감과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그 곳에서 내 커리어를 계속하는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개뿔도 없으면서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아오른 내 자존심을 고급 유리 공예품 마냥 잘 지켜주고 돈도 제법 잘 버는 고마운 아내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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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퇴사전도사는 아니지만 3-6개월 정도 버틸만한 자금이 있다면, 당신의 나이가 몇 살이든 한 번쯤 호기를 부려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처자식이 있어도, 당장 대출금을 갚아야 해도 삶은 살아지고 당신의 인생도 삐걱거리는 소리는 나겠지만 여전히 굴러간다. 퇴사를 목표로 한 건 아니지만 나는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도 있어서 빠르게 결론을 내릴수 있었고 애초에 손가락 빨고 살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조급하지 않았다. 혹시 회사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정말 척박한 환경속에서 어렵사리 신규거래처를 개척해서 A라는 제품을 판매해서 회사에 100억을 벌어주었다면 나는 적어도 당당하게 1억(또는 내가 원하는 합리적인 수준의 급여 또는 인센티브) 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나도 이런 억울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퇴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박을 터뜨릴만한 나만의 제품 'A'들을 찾아 헤매고 있다. 홈런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간히 안타 정도는 치면서 살고 있지만 3할의 타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회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어야 하는 노오력은 필요하다. 다만 시장이나 주변환경 등이 나에게 도움을 줄만한 상황이라면 잘 풀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 안풀릴테니 일을 하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올해 덜 벌었으면 내년에 더 벌수 있는 기회가 올테니까 말이다.


경제용어인지는 모르지만 꼬리가 머리를 흔든다는 말이 있다. 내 주식계좌에는 MSFT, AAPL, NVDA, AMD 등등 소위 말하는 Magnificent7부터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규모의 회사까지 10여 종목의 티커가 있다. 수익이 난 종목보다 손실을 보고 있는 종목 수가 더 많지만 여전히 주식계좌를 들어다보면 흐뭇해 지는 이유는 많은 종목 중 한두가지 종목이 다른 종목의 손실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좋은 수익율로 내 계좌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해, 또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차곡차곡 쌓인 내 수익들이 상호관세라는 말같지 않은 정책으로 인해 최근 며칠동안 녹아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인생은 한 방'이라는 사행성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고 다양한 환경에서도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된다면 어느 회사든, 그리고 회사에 속해 있든 아니든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밥벌어먹고 살기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점을 말하려고 한다. 사족이지만, 지난 주에 촉발된 관세전쟁은 다양한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지만 곧 어떤 방식으로든 해답을 찾으리라. 우리가 언제나 그랬듯이. 직장도 삶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해답을 찾을 것이다. 직장을 계속 다니든, 퇴사를 하든. 오늘도 바쁜 삶을 가로지르는 모든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에게 화이팅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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