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살인마] 이성계의 ‘사초 성계탕 먹방' 수모

by 김저녁꽃

조선시대 상소는 왕명을 출납하던 기관인 승정원을 통해서 이뤄졌다. 처음에는 사헌부와 사간원 관리들이 간을 하던 방식에서 점차 현직 관료, 유생, 일반 백성으로 확대됐다. 상소를 받아본 임금은 사안에 따라 처리, 반환, 문책 등 답을 주기도 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국민신문고나 ‘조선시대 포털 사이트’ 쯤으로 불러도 되겠다(조이버, 조카오?). 암튼, 여기에서 좋은 정책은 전국 방방곡곡에 방으로 붙었으니 가히 쌍방향 소통의 시초로 볼 수 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는 사초(史草)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건국 과정에서 고려 우왕과 창왕의 죽음에 자신이 관련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려말 이행이라는 사관이 “이성계가 우왕, 창왕 등을 죽였다”고 사초에 기록했다가 건국 초기 유배를 보냈으니 더욱 똥줄이 탔을 것이다. 마침내 태조 4년(1395년) 사관에게 사초를 가져오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는 수모를 당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꼿꼿했던 당시 사관들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설 태조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아예 궁예 태조로 빙의해서 도승지 이문화에게 추궁한다.


궁예 태조: 누구인가. 누가 나에 대한 역사 기록을 보지 못하게 하느냐 말이다.


이문화: 역사는 사실을 그대로 적어서 숨김이 없어야 하는데, 만약 왕과 대신들이 보게 된다면 사실대로 바로 쓰지 못함이 있을까 염려되옵나이다.


쪽 팔린 태조는 3년을 기다렸다 건국 공신인 조준을 통해 다시 사초를 들여다 보자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 때 신개(1374~1446)가 장문의 상소를 올려 “전하께서 당대의 기록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덕망과 업적까지도 모두 꾸며 쓴 것으로 의혹을 가질 것입니다. 그 명령을 철회하신다면 매우 다행한 일이라 여겨집니다.”라는 개념 댓글로 맞받아쳤다. 신하들이 한번 말했을 때 이성계는 답글 다는 것을 멈췄어야 했다. 유튜브에서 ‘성계탕 패러디’로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말이다.


이성계: 지라이, 출출하지 않스매?. 오, 저기 가서 돼지국밥 먹방이나 하자


주인: 어서 옵쇼


이지란: 이 집에서 제일 푸짐한 요리로 주시게


주인: 그럼 ‘사초 성계탕’을 올리겠습니다


이성계: 무시기 사초 성계탕? 그건 무슨 음식인고??


주인: 요즘 개성 사람들이 나라님을 빗대... 아니 아무튼, 돼지를 잡아서 끓인 요리인데 4초 안에다 드시면 돈을 안 받는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요. 헤헤


이성계: 허허... 그거 이름 참 그렇구료. 어디 한번 먹어봅시다


이지란: 나도 하나 주쇼


이성계: 흐흑


이지란: 성니매 왜 그러시요!


이성계: 목에 뜨거운 비계 왕건이가 걸렸 지라이. 컥컥… 그래도 너무 맛있으매... 흙흙......


@참고문헌: <상소, 조선을 움직이다>(북인. 2013)



작가의 이전글[댓글 살인마] 진시황 밑장 빼다 뚝배기 깨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