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의 시초가 상소라면, 이를 계승 발전시켜서 문학으로까지 승화시킨 이가 바로 김삿갓(1807~1863)이다.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 찬 그의 시를 읽노라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마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김구라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을 씹어먹고도 남았으리라.
삿갓을 썼다 하여 김립(金笠)으로 불린 그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고, 자는 난고(蘭皐)다. 난초꽃 핀 언덕처럼 그는 선비로서 고고한 심성을 지녔던 듯 하다. 순조 7년 권세 가문인 안동 김씨 집안에 태어난 김병연은 선천 부사였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었다. 잠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해 있다가 강원도 영월땅에 숨어 살았다. 여섯 살 때 그런 난리를 겪은 병연은 훗날 과거에 응시했다가 할아버지 김익순을 비판하는 시제로 장원급제를 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김병연은 스스로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멍에를 지고 스무살 무렵부터 삿갓을 쓴 채 유랑 길에 오른다. 젊은 방랑객에게 지방 토호들이 쉽게 자리를 내주었으랴. 서당, 절, 잔칫집에 가서 멸시와 찬밥을 먹으며 쓴 시는 지금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치 현대에 살다가 ‘시간여행자’가 되어서 조선시대로 다녀오신 분 같다. 한번 보자.
함경도 어느 부잣집에 갔다가 멸시를 당한 설움을 담음 ‘스무나무 아래’(二十樹下. 이십수하)라는 시를 읽어보자.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인간 세상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설은 밥을 먹겠네
여기서 삼십객(三十客)은 서른, 즉 서러운 나그네를 뜻한다. 사십가(四十家)는 마흔 집, 즉 망할 놈의 집이고, 오십식(五十食)은 쉰 밥을 빗댄 표현이다. 칠십사(七十事)는 일흔, 곧 ‘이런’으로 읽어도 좋다. 역시 삼식십(三十食)은 설 익은 밥을 말한다.
객지에서 찬밥을 먹는 신세가 처량했을 것이다. 찬이슬을 맞으며 고향 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김삿갓의 ‘고향 생각’(思鄕. 사향)은 개인적으로 이백의 ‘정야사’(靜夜思)에 버금가는 시로 평가하고 싶다.
西行己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서행기과십삼주 차지유연석거유)
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 지나왔건만, 여기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우운가향인오야 산하역려세천추
아득한 고향 한밤중에 생각하니,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
莫將悲慨談靑史 須向英豪問白頭 막장비개담청사 수향영호문백두
지난 역사 이야기하며 노여워하지 말자, 영웅 호걸들도 다 백발 되었거늘
玉館孤燈應送歲 夢中能作故園遊 옥관고등응송세 몽중능작고원유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 또 한 해를 보내며, 꿈 속에서나 고향 동산 거닐어 보네
이렇게 좋게 말했는데도 반응이 없자 점차 ‘파격시’(破格詩)로 수위를 높인다. 원래는 “하늘은 멀어서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 오지 않네/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 반쯤 연못에 드리웠네/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 지나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이런 내용이다.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천장거무집 화로접불래
菊樹寒沙發 枝影半從池 국수한사발 지영반종지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정빈사과 대취복송하
月利山影改 通市求利來 월이산영개 통시구이래
하지만 이 시는 뜻보다는 소리 나는 대로 읽어야 감칠 맛이 난다. “천장에 거미집, 화로에 겻불 냄새 가득한데/국수 한 사발에 지렁(간장) 반 종지 내놓는구나/강정에 빈 사과뿐 대추 복숭아야/워리 사냥개(개새끼야), 통시(똥통) 구린내 난다” 이렇게 읊어줘야 푸대접 받는 김삿갓의 분을 삭힐 수 있다.
마침내 한 겨울 시골 서당에서 문전박대를 당하자 분노조절장애가 극에 다다른다. 욕설모서당(辱說某書堂)이란 제목의 이 시도 “서당을 일찍부터 찾아와서 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학생들은 모두 열 명도 못 되는데, 훈장선생은 와서 인사도 안 하네”라고 참으로 점잖은 내용이다. 그러나 삿갓선생이 누구인가. 진정 욕설시의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이렇듯 자신과 세상에 대한 한탄을 고귀한 욕설시로 승화시킨 김삿갓이야 말로 재평가에 들어가기 충분한 인물이다. 만약 지금 ‘라스’(라디오스타)를 진행한다면 MC 김구라 귓방망이를 후려 갈기고도 남을 존재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