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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09. 2021

[댓글 살인마] 악플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자세

어렸을 적 흑백 텔레비전에서 구수한 만담으로 시청자들을 웃기는 분들이 계셨다. 장소팔 고춘자 선생부터 남철 남성남 선생에 이르기까지 주거니 받거니 말장난으로 배꼽을 잡게 했다. 아직도 mbc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프로그램에서 구봉서 배삼룡 선생이 “배수한무 거북이와두루미 삼천갑자동방삭 치치카포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을 숨가쁘게 외치던 모습이 선하다. 이 코미디는 후배 개그맨들도 종종 소환해 무대에 올리는 정말 전설 같은 코너다.


만담(漫談)을 처음 시작한 신불출(1905~)은 이 용어를 일본의 만담에서 가져왔지만, 내용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예명을 난다(難多)로 지어 ‘신난다’로 불릴 만큼 센스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한국전통연희사전>(전경욱)에 따르면 20세기 초 우리의 전통적 정서를 담은 박춘재(1881~1948)의 재담이 만담으로 전승되면서 방송 코미디물의 토대가 되었다고 했다. 재치 있는 말솜씨로 언어유희를 구사하거나 세상을 풍자함으로써 청중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만담은 사회풍자를 할 수 없었던 일제시대 나라를 잃은 백성들의 위안거리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의하면 신불출은 평소 검열 대본에 없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애드립이다. 한번은 “새벽을 맞아 우리 모두 잠에서 깨어납시다”라고 하자 관객들이 환호를 보내었고, 흥분한 그는 “삼천리 강산에 우리들이 연극할 무대는 전부 일본인의 것이고 조선인 극장은 한두 곳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동포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야 합니다.”라고 즉흥대사를 했다. 이 일로 종로경찰서로 연행돼 감옥에 갈 뻔하기도 했다. 1939년 일제의 창씨개명 당시 신불출은 일본식 이름을 강원야원(江原野原)이라고 했는데, 이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에하라 노하라’ 즉, 에헤라 디여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의 표현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앞서 김삿갓이 양반사회에 맞장을 뜨던 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해방이 된 뒤에는 1950년대 중반 만담형식에서 재치 있는 개그를 구사하는 코미디언 양석천과 양훈 선생이 ‘홀쭉이와 뚱뚱이’로 주목을 받았다. 코미디언 서영춘과 백금녀 선생은 쇼 형식의 만담 리사이틀로 무대를 사로잡았다. 이후 고춘자, 장소팔 선생의 톡톡 튀는 대화 만담 콤비가 해학과 속사포 같은 입담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간이 흘러 1999년 9월 <개그콘서트>가 첫 선을 보이면서 마치 생방송을 하듯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09년 장안을 뜨겁게 달궜던 ‘분장실의 강선생님’ 코너는 안영미의 “똑바로 해 이것들아”, “야! 영광인 줄 알아”, 강유미의 “니들이 고생이 많다”는 유행어를 낳았다. 조직에서 선후배 간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현실을 풍자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안영미의 아양에 강유미가 능청스런 연기로 맞받아치는 것이 웃음의 포인트였다. 역시 치고 받는 과정 속에 웃음이 유발된다는 점에서 ‘만담에서 댓글로 가는 길에 큰 획을 그은 개그맨’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아래는 댓글 관련 실제 대사다. 음성지원이 되는 사람은 적극 활용하기 바란다.


김경아: 경미야, 우리 기사 되게 많이 났다~ 댓글 구경해야지~~ “김경아 안 웃겨” “김경아 듣보잡!” 경미야, 나보고 듣보잡이래, 듣보잡이 뭐야?


정경미: 듣보잡?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란 뜻인데


김경아: 어 뭐야? 내가 듣보잡이란 말이야?? 흑흑


정경미: 신경 쓰지마. 어 잠깐만, 나도 좀 보자~ “국민요정 정경미 보다가 채널 돌렸음” 뭐야! 애네 알지도 못하면서 웃기지 않냐?


김경아: 너무 한다 진짜… 공연할 맘도 안 난다 진짜


정경미: 그래도 공연은 해야지 어떻게 ㅠㅠ


김경아: 아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안영미: 골룸 골룸, 난 그대 소원을! 골룸 골룸 이뤄주고 싶은~~


경미&경아: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안영미: 수고했어 애들아! 수고했어 수고했어!! 야, 나 피부 트러블 장난 아냐, 피부 완전 망가졌어


김경아: 선배님, 제 팩 해보실래요?


안영미: 어 진짜 진짜 진짜? 완전 땡큐 땡큐. 야, 근데 이거 무슨 팩이냐?


김경아: 이거 진흙팩이에요~ 되게 좋대요


안영미: 야! 나 머드팩 아니면 안 하는거 몰라??


김경아: 아… 그러니까 진흙팩이……


안영미: 너나 진흙팩 많이 하세요~ 난 머드팩만 할거니까~~ 영원히~~~ 딱 걸렸어! 야, 노트북 뭐야? 압수 압수 압수


정경미: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희 악플이 너무 많아서요


안영미: 너네 악플 달렸니? 어디 봐봐 어디 어디 어디야? 어우~ 신나! 좋아 좋아!!


김경아: 저보고는 김경아 듣보잡이라 그러구요


정경미: 저보고는 국민 요괴래요


안영미:  (흐느적거리는 웃음) 좋다 꼴 좋다. 야 너네가 잘못하니까 악플이 달리는 거 아냐. 그냥 받아 들여. 어쩔 수 없어. 이게 세상의 이치니까


김경아: 어! 선배님. 선배님 글도 올라온 거 같은데요?


안영미: 뭔데 뭔데 뭔데? “분장실 강선생님 정경미가 짠 거” “안영미 골룸 하면 뭐햐냐?” 야, 정경미. 이거 니가 썼지?


정경미: 아니요


안영미: 딱 글씨체가 너네~


정경미: 컴퓨터 글씨체는 다 똑같잖아요


안영미: 야, 휴머노이체 딱 너네 너. 야 너 미친 거 야냐? 어따 대고 선배님한테 지적질이야?? 야,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야. 야 우린 선배님 지적하지 말라고 그래서…(한숨) 나 선배님 이에 고춧가루 낀 거 아직도 말씀 못 드렸어. 아직 모르셔, 그냥 입에서 피가 나시는 줄 아셔. 야, 정경미 너 선배가 잘나가니까 아니 꼽냐? 막 화가 치밀어 오르냐??


정경미: 아닙니다


안영미: 야, 너 코 점점 높아진다? 코 압수 압수!


강유미: 줄리엣 호우~ 영혼을 바칠께요~~ 하하하


영미&경미&경아: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강유미: 그래 수고했다 얘들아. 그래 수고했다. 그래 니들이 고생이 많다…아니, 영미야 너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 무슨 일 있었니??


안영미: 선배님, 저 분장실 떠나야겠습니다


강유미: 분장실을 떠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무슨 얘기 하는 거야?


안영미: 아니 후배들이 저랑 선배님만 잘 나간다구. 둘 다 영원히 꺼져버렸으면 좋겠다구…후배가 악플을 쓰잖아요. 흑흑


강유미: 아니 뭐야? 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거야? 도대체, 누구니??


안영미: 아닙니다 선배님. 정경미 언니! 워드 5급이라 그랬죠. 휴머노이체 쓰고…


강유미: 그래~그렇다면 경미 너구나. 경미야, 너 나이가 몇인데 인터넷에 악플이나 올리고 있어? 아니 너, 그리고 그렇게 불만스러워서 어떻게 우리랑 같이 연기했니 그래~ 너 그게 그렇게 배가 아팠니? 아니 살다 보면 이 바닥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니네들은 죽 써서 개 안 줘 봤니?


김경아: 안 줘봤는데요


안영미: 야! 난 꼭꼭 씹어서 먹여드렸다


강유미: 영미 넌 바보야! 개밖에 모르는 바보~


안영미: 죄송해요, 선배님(흐느적 거리는 웃음)


강유미: 아이고 구성지다. 너희들 잘 들어라. 우리 연예인들이란 말이야, 치러야 할 세금이 있어. 이른바 유명세라고 하지. 이런 일이 생기면 ‘그저 유명세다’ 생각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게 상책인 거야. 알겠니?


안영미: 야, 정경미 조냐?


강유미: 놔둬라~


안영미: 선배님 말씀하시는데 졸아?


강유미: 그만해. 애들이 뭐 사실 유명세를 겪어봤어야 알지. 나처럼 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인신고를 당해봤겠니, 아니면 오바마 대통령의 16번째 부인이라고 소문이 나봤겠니? 놔둬라~


안영미: 선배님, 그때 선배님 진짜 영부인 느낌 나는 것 같았어요. 선배님~~


강유미: 뭐 여러 번 그럴 뻔은 했었지. 근데 뭐 이제서 그런 얘기하면 뭐해? 


유미&영미: (흐느적 흐느적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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