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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0. 2021

[자서전 편지 #13] 아내는 초콜릿 아파트를 꿈꾼다

어제는 사회적 협동조합 교육을 받는 아내를 따라 남양주 별내에 갔습니다. 별내역에서 만나기로 한 아내의 동료를 태우러 가는데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아내는 "초콜릿 상자 같다" 라고 감탄을 했습니다. 나는 "저 답답한 곳에서..."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아내가 아파트를 보고 그런 감정을 표현한 것은 처음입니다.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전전하면서 성냥곽 같은 콘크리트 숲을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첫 집을 장만할 때도 아파트가 아닌 빌라였습니다. 단독주택을 꿈꿨지만 사정이 넉넉치 않아 내린 차선책이었습니다.


생애 첫 집에서 아내는 행복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빌라마저도 층간소음과 주차 문제 등으로 실증이 나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5년 전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나의 결정에 아내는 묵묵히 따라줬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잦은 이사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자연의 삶보다는 '남편의 삶'을 존중해 준 것이었죠. 그렇게 뭔가에 홀린 듯 5년을 지내고 자연인의 삶을 끝내고 읍내로 힘겹게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아내는 내게 한번도 "안된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차라리 선택의 순간에 "안돼"라고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을 내 뜻대로만 살아왔습니다. 결과는 그리 썩 좋지 못했고, 이제는 아내의 말을 따라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고백합니다. 단순히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아내가 하려는 일을 지지해줘야겠습니다. 문득 고영민 시인의 '아내의 등'이 떠올랐습니다.



아내의 등


아내의 등을 민다

그녀의 뒷모습, 한 페이지를

때수건으로 민다

기울게 쌓아올린 척추 마디

피사의 사탑을 생각하며

나는 아내의 등을 민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팔이 닿지 않는 그 가려운 탑신

아내의 등 사각지대엔

빨간 앵초꽃이 피어난다

세월의 한켠

묵념처럼 뒤돌아 앉은 삶

언제쯤 나는 말을 걸어야 하나

언제쯤 나는 말을 놓아야 하나

빈 명찰 같은 사람아

첫선을 보듯 앉아 있는 내 중년의 얼굴이

그녀의 등

볼록거울에 비친다



인간은 욕망할 때 삶의 희망이 생깁니다. 아파트를 욕망하고, 차를 욕망하고, 핸드백을 욕망하길 원합니다. 성냥곽 아파트가 수락산을 품은 꿈의 초콜릿 공장으로 다가오길 바랍니다. 아내가 꿈꾸는 '욕망의 아파트'가 무럭무럭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의 등을 밀며 거기에 새겨진 삶의 실핏줄들을 들여다 보며 부끄러움을 느껴야겠습니다. 아내의 척추가 아파트처럼 꼿꼿해 질 때 거기에 살짝 피사의 사탑처럼 몸을 기울이겠습니다. ㅅ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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