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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0. 2021

[댓글 살인마] 이 바닥서 어설픈 존문가로 오래 못간다

앞서 말했듯이 댓글은 소통이고, 일종의 대화다. 일상의 대화가 얼굴을 보고 하는 반면, 댓글은 익명성을 전제로 한다. 온라인 상에서 익명성이야 말로 댓글을 성장시킨 일등공신인 동시에 악플을 양산하는 통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댓글을 쓸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만이 가진 ‘배성(排姓)욕구’를 들 수 있겠다. 쉽게 얘기해서 배설을 하듯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말이다. 이런 현상은 관광지를 가면 대번에 확인할 수 있다. “누구 누구 다녀간다” “00아 사랑해” 등 평소 얌전하던 사람도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예비군 훈련에 가서 점잖은 분도 아무 데나 오줌을 싸듯 말이다. 


그 다음으로 공감과 공격의 욕구다. 좋은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반대하는 글에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이다.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이런 비판은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배설과 비판의 욕구를 뛰어 넘어 '프로 댓글러'가 되려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이 글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댓글 전문가가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니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1)    집단지성의 총체 


언제부터인가 당신은 포털에서 기사를 보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볼 때 댓글부터 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제 댓글은 단순히 어느 개인의 의사 표현을 넘어서 해당 콘텐츠에 대한 평가가 되어버렸다. 좋아요, 싫어요 기능을 통해 투표를 한 후, 조심스럽게 댓글을 다는 것이 일반화됐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눈팅’만 하고 가는 것이 현실이다. 처음에는 그냥 보고 피식 웃거나 불편해하거나 하다가, 점차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알게 모르게 댓글이 주는 마력에 빠지게 된다. 구력이 더 쌓이면 기사나 영상 제목만 봐도 대충 어떤 댓글이 달렸을 지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연히 본 댓글에서 빵 터지는 웃음을 건졌거나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댓글이 주는 감흥을 더 증폭시키려면 각각의 사이트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댓글 성향, 디씨와 일베 등 커뮤니티 사용 언어들, 그리고 유튜브의 댓글 알고리즘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니다. 꼭 알아야 할 것 까지는 없고, 그냥 이렇구나 하는 정도만 알면 된다. 네이버는 2010년대 초반 댓글부대 사건을 겪으면서 상당히 경직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예전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온갖 정치적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금 네이버 기사를 보고 댓글부터 보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마저 민감한 사안은 해당 언론사로 넘어가서 댓글을 보도록 되어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는 요즘 젊은층들이 쓰는 기본적인 용어에 대해 파악하는 정도로 훑어보는 것이 좋겠다. 이들 용어들이 어느 정도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과도한 줄임말로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듣보잡’ 정도야 받아들일 수 있는데, ‘띵곡’(명곡을 눈에 보이는 데로 쓴 것)과 같은 용어는 자제를 해야 할 듯 하다. 문제는 이런 듣보잡 용어를 공중파 방송 등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확산시킨 다는 점이다. 어둠의 세계의 일들을 굳이 밝은 세상에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정도껏 하자는 얘기다. 


이에 비해 유튜브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재기 발랄한 용어들로 무장하고, 탈 정치를 선언한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는 듯하다. 모르는 용어는 많은데, 저속하지 않으면서 웃음을 주는 댓글이 많다. 나는 이것을 댓글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집단지성의 총체’라고 부르고 싶다. 


간혹 네이버 스포츠 댓글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몇 해 전 야구 코너 ‘많이 본 뉴스’에 K일보 모 기자의 기사가 많이 올랐다. 네티즌 수사대에서 파악한 결과, 정치부에서 활동하던 해당 기자가 여기저기 온라인 기사를 짜깁기 해 제목만 그럴 듯 하게 올린 것이다.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듣고 싶었던 네티즌들이 K기자의 댓글에 “또” “0” “0” “지” “겨” “워’ 하는 식으로 릴레이 댓글을 달았다. 


며칠간 이런 일이 발생하자 네이버는 이후 많이본 뉴스 기사 제목에 언론사 명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해당 신문사는 야구 담당 기자를 바꾸고, 야구 뉴스에 그런 기사를 올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그라운드에서 관중들의 파도타기 응원처럼 온라인 상에서도 가끔 환상의 댓글 변주곡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집단지성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사 생산자보다 소비자가 더 전문가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한마디로 어설픈 *존문가로는 이 바닥에서 오래 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2)    선플이냐 악플이냐


2019년은 한국 연예계에 잇따른 비보로 슬픈 한 해였다. 10월과 11월 가수 설리와 구하라가 연이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한가수협회는 즉각 포털 사이트의 연예기사 댓글 서비스 중단을 촉구했다. 가수협회는 성명서에서 "언제부터인가 익명성 뒤에 숨어 가수들을 향해 혐오와 저주의 막말을 퍼 붓는 광기어린 대중, 트래픽에 목숨을 걸고 사회적 타살을 방조하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부도덕한 경영, 정의로운 펜 대신 악플을 유도하는 기사로 빵을 구걸하며 스스로 황색 언론임을 자인하는 일부 신문과 방송사들, 비극적 사태가 거듭되고 있음에도 그럴 때마다 몇 줄 대책으로 국민의 입과 귀를 막는 대한민국의 문화정책 입안자들로 인해 가수들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야만 하는 절박한 지경으로 내 몰렸다."고 질타했다.


이에 2020년 2월 카카오가 포털사이트 다음의 실검 서비스와 연예인 기사의 댓글 기능을 폐지했다. 네이버도 실검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고, 연예인 기사 댓글과 연관 검색어 기능을 잠정적으로 닫는다고 발표했다. 실검은 그 동안 사회적 재난 등 주요 이슈를 알리는 역할도 했지만,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뒷 얘기를 확인 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통로로 활용됐다. 자사 언론사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면서 지탄의 대상의 되기도 했다. 네이버는 연예 정보 서비스를 스타의 개인적 근황이나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콘텐츠 대신 실제 활동의 결과물인 작품 중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고 밝혔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서 무차별적으로 악플을 날리는 행위는 엄밀히 범죄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살수’와 다름 없다. 우울증 여부를 떠나 정상인도 그 같은 공격을 지속적으로 당하면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같이 사는 공감의 힘이 필요하다. 또한 서로 상처를 주지 않고도 웃음을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착한 댓글의 역할이기도 하다. 혹시 인터넷에서 막무가내로 비난을 퍼붓는 댓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싫어요’를 누르는 등 작은 복수를 하자. 사실 세상은 복잡한 것 같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으로부터 더 단순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믿는다.


*다음 편부터는 지겨운 이론은 끝내고 실전으로 들어간다. 현재 위치에서 이탈하디 말고 안전띠 단단히 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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