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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Nov 11. 2021

[자서전 편지 #19]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오버앤오버

어제 양평에는 오전에 깜짝 손님처럼 눈이 조금 왔습니다. 저 멀리 용문산 봉우리에 하얗게 눈이 내려 앉았습니다. 평지에는 오자마자 녹았지만 산 위에는 제법 눈이 쌓였을 것입니다. 


예전에 서울에 살 때는 항상 차 뒤에 산행장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첫눈이 오면 북한산을 오르곤 했습니다. 남들이 밟지 않은 눈 위를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는 즐거움은 아마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겁니다.


우리는 저마다 이렇게 새로 오는 것들에 대한 기대를 품고 살아갑니다. 새 직장에 들어가면, 새 차를 사면, 새 집을 장만하면 '뭘 해야지' 다짐하곤 합니다. 그것을 소박하지만 꿈과 희망이라고 부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창 이력서를 내고 다닐 즈음, 지금의 아내를 연대 앞 독수리다방에서 우연히 처음 만났습니다. 즐겨 부르던 노래가 송창식 선배님의 '사랑'이었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면 불러줘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나나무스쿠리의 '오버앤오버'를 멋지게 부르는 사람과 만났으면 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운명이었나 봅니다.



사랑


언제나 혼자서 애 끓이며  

남몰래 숨어서 보던 사람 

어쩌다 눈 한번 마주치면  

기쁨에 떨며 뛰었었지


(후렴) 영원한 나의 꿈 나의 사랑  

내 가슴 태워준 단 한사람 

그 얼굴 허공에 그리며  

그 이름 속삭여 불러보네


기나긴 이 밤이 지나가면  

한숨에 달음쳐 만날 사람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간신히 말붙여 약속했지

(후렴)


눈을 감으면  그 모습 

다시 또봐도 그 얼굴   

잠자던  나의 세월은 

아름답게 펼쳐지네

(후렴)




낼 모레 11월 13일이 아내를 만난 지 28년째 되는 날입니다. 그날도 토요일이었죠. 결혼기념일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은 아내를 처음 만난 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전태일 열사 기념일이기도 해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둘 생겨서 가족이 저녁에 신촌 어디를 어슬렁거리기로 했습니다. 독수리다방이 없어졌다가 새로 생긴 모양이던데, 그 이후로 아직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전태일 열사를 생각하며 청계천 거리를 걷는 것도 좋을듯 하네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그때는 엄청나게 추웠는데 지금은 그에 비하면 따뜻한 날씨입니다. 자신을 불태운 전태일 열사로 인해 세상이 좀 더 따스해진 것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로 인해 28년 동안 따뜻하게 지내온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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