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편지 #5] 밤을 따지 않고 줍는 이유

니들이 밤 따는 재미를 알어~? ㅋㅋ

by 김저녁꽃

추석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어제는 양평시장에 가서 차례에 올릴 과일을 미리 사두었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그래도 북적거리는 시장을 보니 힘을 얻게 됩니다.


어렸을 적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는 아이 주먹만한 밤을 전날 미리 물에 담가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과도로 세상 제일 정갈한 모습으로 앉아 밤을 깎았습니다. 추석이면 조상님을 대하는 아버지의 경건한 자세가 먼저 떠오릅니다. 물론 문지방을 수백번 오르내리며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니의 고단함은 말 할 것도 없고요.


보통 과일은 딴다고 하는데 밤은 줍는다고 표현합니다. 밤 따러 가자고 하지 않고 밤 주우러 가자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다 익은 다음에 저절로 떨어지는 것을 얻으라는 말씀이겠죠. 간혹 밤나무를 발로 차거나 손으로 흔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돌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어김 없이 밤가시가 머리에 떨어져 '아이쿠' 소리를 내기도 하죠.


어제는 제가 아는 비밀 밤나무 숲에서 밤 한 봉지를 주워왔습니다. 밤을 주울 때마다 느끼는 것이 바로 발 앞에 있던 커다란 밤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바로 눈 앞에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늘 먼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재철 시인의 '도토리농사 2'는 이런 사람들의 얄팍하고 성급한 성미를 잘 파헤치고 있습니다.


도토리 농사 2


희한한 일이지

이게 왜 아까는 안 보였을까

그렇게 샅샅이 훑고 뒤졌는데

왜 안 보였을까

산보 삼아 도토리나무 밑을 어슬렁거리며

도토리 주워보지만

낙엽 속에 숨은 도토리는

이쪽에서 보면 보이지만

저쪽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아주머니들 아침이면

죽 훑어 산을 오르지만

보는 만큼 줍고

보이는 만큼 줍는 일이지

안달하며 죄 주우려고 머무는 법은 없다

오늘 안 보인 것은 내일 보이고

내가 못 본 것은 남이 보고

그래도 안 보이는 것은 낙엽에 묻혀

다람쥐도 먹고 벌레도 먹는다


맞는 이야기 입니다.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과 느낌이 비슷하지만 윤재철 시인이 더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느낌으로 표현한 듯 합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이고, 그걸 억지로 얻으려고 하면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시인은 '하늘농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막상 밤을 주우러 실전에 투입되면 하나라도 더 주우려고 안달을 하는 게 인간 심사입니다. 내일은 긴바지에 장갑, 집게로 단단히 무장하고 밤 줍기 작전에 들어갈 겁니다. 아내가 한 봉지 꽉 안 채워오면 집에 못들어 오겠다고 합니다.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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