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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Mar 06. 2022

[자서전 편지 #27] 놓쳐서는 안될 당신의 '화양연화

며칠 전 큰 애가 남친과 함께 영화 '화양연화'를 봤다고 한다. 20여 년 전 아이가 꼬마일 때 개봉한 영화를 재개봉한 것이다. 


세월은 살같이 흘러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 인생의 화양연화를 어렴풋이 이해할 나이가 됐다. 2007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한번 옮겨 본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For Love)는 제목처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배우자가 있는 두 남녀를 통해 그리고 있다.


“왜 사랑은 격렬한 상실 안에서만 느껴지는 것일까? 왜냐하면 사랑의 원천이 상실의 경험이기 때문”이라는 파스칼 키냐르의 충고를 따르듯, 영화는 아내와 남편의 불륜으로 상처를 받은 차우(양조위)와 리첸(장만옥)이 서로의 상실감을 어떻게 사랑으로 전이시키는 가를 보여준다.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他沒有勇氣接近, 她掉轉身走了)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문장은 이 답답한 수줍녀와 소심남의 앞날을 암시하고 있다. 우연히 옆집에 이사오게 된 차우와 리첸은 좁고 어두운 복도에서 서로의 허기진 눈빛을 스치듯 읽는다. 


차우; 가끔은 결혼한 게 후회가 되곤 해요. 당신은?

리첸; 결혼 전이 훨씬 행복했죠. 뭐든 맘대로 했는데, 둘이 되고나서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해요. 당신은요?

차우; 요즘 난 편히 살려고 해요. 짧은 인생에 뭔가 다른 걸 찾아야죠.

리첸; 그 다른 게 뭐죠?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차우는 무협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리첸은 차우의 글을 읽으면서 국수를 먹으면서도 해결되지 않았던 허기를 조금씩 채워나간다. 소심남에다 바른생활 사나이기도 한 차우는 그러나 리첸과의 관계를 고민하다 싱가폴로 전근을 가겠다고 한다.


리첸; 왜 떠나야 하죠.

차우; 주위에서 우리 소문이 무성해요.

리첸; 우리만 결백하면 되는 거 아네요. 

차우; 나도 첨에 그렇게 생각했소.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근데 틀렸소. 당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야겠소.

리첸; 날 사랑했단 말인가요.

차우; 나도 모르게......


이별연습을 하는 차우의 품 안에서 리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사랑에 예고가 없듯 이별 또한 연습으로 다독여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택시 안에서 “오늘은 집에 안 가겠어요”라며 기대는 리첸의 손을 꼭 잡아주는 차우. 집으로 돌아와 벽을 사이에 두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화양연화’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두 사람.


차우; 티켓이 한 장 더 있다면 나와 같이 가겠소?

(그러나 그녀는 오지 않았다)

리첸; 내게 자리가 있다면 내게로 올 건가요?

(하지만 이미 그는 떠나고 없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那個時代已過去, 都不存在了)


리첸이 차우를 그리워할 때마다 이런 노래가 흘러나온다.


“항상 그대에게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라고 물으면 그대는 늘 '아마도'라고 대답하지요. 이런 식으로 많은 날들이 지나가고 나는 희망을 잃어가지만 그대는 그대는 '아마도'라고 대답하지요. 당신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누구를 사랑하는지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요, 이런 식으로 많은 날들이 지나가고 나는 희망을 잃어가지만 그대는 그대는 '아마도'라고 대답하지요.”(Quizas,Quizas,Quizas)


몇 년이 흐른 뒤에 차우는 리첸을 찾아 옛집에 오지만, 그녀가 그를 기다리며 그 방에 있는 것을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사랑한다고 말 한번 하지 못했던 차우는 가슴에 품었던 비밀 같은 얘기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의 돌에 대고 속삭인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봉인된 그 돌구멍을 열면 이런 노래가 흘러나올 지도 모르겠다. 


줄자와 연필이 놓여 있는 거리

그 거리에 바람이 오면 경계가 서고

묵직한 잡지 귀퉁이와 주전자 뚜껑 사이

그 사이에 먼지가 앉으면 소식이 되는데

뭐 하러 집기를 다 들어내고 마음을 닫는가 

전파사와 미장원을 나누는 붉은 벽

그 새로 담쟁이 넝쿨이 오르면 알몸의 고양이가 울고

디스켓과 리모컨의 한 자 안되는

그 길에 선을 그으면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뭣 때문에 빛도 들어오지 않는 마음에다

돌을 져 나르는가 

빈집과 새로 이사한 집 가운데 난 길

그 길에 눈을 뿌리면 발자국이 사라지고

전봇대와 옥탑방 나란한 키를 따라

비행기가 날면 새들이 내려와 둥지를 돌보건만

무엇 하러 일 나갔다 일찌감치 되돌아와

어둔 방 불도 켜지 않고

퉁퉁 눈이 붓도록 울어쌌는가

-이병률 '화양연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언제, 어뗳게, 그리고 어디서” 있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여전히 “아마도,아마도,아마도”라고 할 건가, 아니면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빈 방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고 할 것인가.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고 전해준다. 파스칼 키냐르가 이 영화를 봤으면 또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사랑은 말을 하는 두 개인, 두 자아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행하는 두 정체성이지, 서로 끌어당겨서 욕망을 채우는 두 육체가 아니다”


봄날은 가도 둘이 머물렀던 자리의 봄빛은 영원히 불그레하니 남아있을 듯 하다. 꽃은 지지 않고 영원히 피어 있을 테니까, 당신 가슴에(花樣年華)...



인생의 화양연화가 어디 남녀간의 사랑 뿐이랴. 부모 자식간에 사랑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리라. 꽃샘 추위 지나고 오는 따스한 봄을 이제는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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