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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Nov 27. 2022

집이란 무엇인가

시골에 카페 짓기1

경기도 양평에 이사온 지 만 6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쭉 직장생활을 하다가 나이 오십이 되던 해 30여 년 머물던 도시를 떠났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시골살이를 하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하는 시점인 2020년을 도시탈출 D데이로 삼고 기다렸다.


그러던 중 2015년에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이듬해 작은 아이까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재수도 하지 않고 둘을 연이어 학교에 보내놓고 보니 마치 큰 숙제를 푼 기분이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골생활을 시작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생애 첫 집으로 장만한 빌라 옆 집의 소음도 도시탈출을 부추기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나이든 부부의 다투는 소리와 딸의 비명소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둘째가 특히 그 소음의 가장 큰 피해자였는데, 보상차원에서 둘째를 위해 작업실을 마련해주자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2015년부터 인터넷으로 전원주택 매물을 검색하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었다. 가끔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양평에 있는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찾아가 직접 전원주택을 둘러보기도 했다. 2016년 봄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사할 집을 찾다가 양평읍에서 멀리 떨어진 청운면의 주택을 구입하게 되었다. 갤러리처럼 생긴 그 집을 보는 순간, 나의 자연인생활과 둘째의 그림 작업이 교차되면서 구매욕구에 불을 댕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내가 하는 일에 그다지 토를 달지 않은 시기라서 계약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야말로 충동구매였고, 집에 대해 지역의 현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단지 외양만 보고 집을 구매한 것이다. 이런 결정은 나중에 나로 하여금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했다. 금전적인 손해는 물론 가족이란 공동체가 해체될 위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집을 다시 팔기까지 아내와 아이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시골에서 군불을 때며 자연인에 도취되어 있을 때 서울 집값은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이런 남편과 같이 사는 아내의 정신적 고통은 커져갔고, 아이들은 비좁은 서울 월세방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2020년 11월에 전원주택을 팔고 양평읍내에 셋방을 얻어서 나왔다. 꼬박 4년 3개월 동안 시골에서 머무는 동안 적지 않은 수업료를 내야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삶이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 시간 동안 시를 많이 쓰게 되었고, 자서전 쓰기에 관한 책도 냈다. 지역에서 인터넷신문을 창간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양평 구석구석을 잘 알게 되었다. 2021년 여름부터는 자서전출판사를 본격적으로 운영해 생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 더 진지하게 탐구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나의 아집을 버리려고 노력하니 세상이 다르게 다가왔다. 냉소적인 인간에서 좀 더 따뜻한 사람으로 변모하고자 애를 썼더니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씩 보이게 되었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순명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하니 하늘에서 적지 않은 열매를 떨어뜨려 주었다. 용서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게 되었다. 


집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다. 편리한 아파트로 들어갈까 생각했다가 ‘바벨탑처럼 끝간 데 없이 치솟다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아파트의 신화’를 보면서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간혹 텃밭을 일구고 장작불을 지피는 것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추위와 외로움과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였다. 거기다 살 집에 빚을 끌어다 쓰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시골살이에 대한 원칙을 정하게 되었다.


1.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

2.     빚 없이 거주공간을 마련하자

3.     전철역이 멀지 않은 동네 어귀의 땅을 산다

4.     난방비 걱정 없는 구조의 건축물을 저렴하게 짓는다

5.     친환경 농사를 지음으로써 생태계 보전에 이바지 한다

6.     거주공간이 작업과 소통의 공간이 되도록 한다


위 여섯 가지 원칙에 맞는 건축물을 찾다가 얼마 전에 좋은 본보기를 찾게 되었다. 동네 안쪽에 있는 100평 이내(80평 내외) 계획관리 지역 토지에 출판사 겸 카페를 할 수 있는 근생 시설을 짓기로 했다. 이미 양평 땅 값이 많이 올라서 마땅한 토지를 구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껏 양평살이를 해오면서 쌓아온 인연과 촉을 바탕으로 발품을 팔아볼 생각이다. 


누구는 ‘집을 지으면 십 년이 늙는다’고 말하는데, 십 년 늙더라도 이십 년 젊어지는 그런 건축물을 짓고 싶다. 난생 처음으로 아내와 집에 대한 생각에 99% 의견 일치를 본 것도 내게는 고무적인 일이다. 짓고자 하는 건축물의 본보기는 완성된 이후에나 공개할 생각이다. 그 분의 프라이버시도 있고, 괜히 오해를 살만한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글의 제목은 임시로 ‘시골에 카페 짓기’로 했다. 그곳이 카페가 될 수도 있고 출판사 사무실이 될 수도 있다. 둘 다 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적은 자본으로 내가 그리는 공간이 실현될 수 있는 날을 위해 부지런히 양평 곳곳을 싸돌아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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