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인 시절, 결혼한 친구들에게 자주 하던 질문이었다. 물어보는 친구들마다 나의 질문에 명확히 대답을 해주진 못하였다. "글쎄,, 그냥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어."
무언가 나를 '띵!' 하게 하는 순간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이라는 삶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건데, 보통의 다른 의사결정과는 달라야지. 만화나 로맨스 소설을 보면 '머릿속에 종이 울린다던지'혹은 '순간이 갑자기 슬로모션으로 흐른다던지' 하잖아. 아! 이 사람이구나!' 하고 운명을 직감하게 하는 신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행 가는 비행기 옆자리 사람과의 운명적 만남!'과 같은 드라마틱한 만남을 꿈꿨던 나로서는 결혼 또한 모를래랴 모를 수 없는 운명 같은 시그널이 있어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우린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내 친구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소개팅으로 이 사람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냐며 이 또한 운명적 만남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를 좋아하게 되고, 연애를 시작하고, 며칠 그를 보지 못할 땐 그리워하고, 심지어 일 하면서도 그가 문득문득 생각났다. 처음 겪는 감정을 마주하기도 하며 나는 그를 좋아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그는 장난반 진담 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더 궁금해졌다. '결혼의 결정에는 무언가 커다란 시그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계기로 우리는 결혼을 결정할 수 있는 걸까?' 답을 찾고 싶었다.
문제는 답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해결된다고만 생각했다. 깨달았다.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은 2가지다. 답을 찾거나, 아니면 문제 자체가 사라지거나.
어느 순간 나는 머릿속을 맴돌던 그 질문을 하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질문은 사라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배가 아파서 약을 찾았는데 어느 순간 아프지 않게 되면 약을 찾지 않게 되는 것처럼 질문 자체가 사라짐으로써 답을 찾을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우리가 만난 지 2년 반.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여름,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다시 2년 반을 지나고 있다.
그때 내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은 왜 사라져 버린 걸까?
어느 사랑이야기를 읽다 문득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면
하루가 쌓이고 계절이 쌓이며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이 된 것처럼
어떤 한순간의 커다란 신호가 아니라 작고 사소한 순간이 신호가 되어 쌓인 것이 아닐까?
이를 테면 이런.
내가 던진 말에 천진난만하게 웃던 그를 보고 설렜던 순간
함께 해변을 달리며 마음이 방방 뛰던 어느 여름의 느낌
세찬 비를 잠시 피하며 그를 꼭 안고 있었을 때의 안도감
잠깐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가온 꼬마의 "짝꿍 아저씨는 어디 있어요?"라는 사랑스러운 말에 지어졌던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