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돌아보면 기적같은.
유학, 출장, 어학연수, 봉사 여행, 인턴십, 휴가. 이 모든 '떠남'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우선, 표준국어대사전은 '여행'이라고 불러줬다.
일이나 업무를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그게 여행이랬다. 그렇다면 내가 했던 것도 다 여행이다. 주로 공부하고 일을 배우거나, 일을 하러 돌아다녔으니까. 20대 부터 30대까지 내 청년기의 대부분은 이런 '여행'으로 채워져 있다.
'여행의 시간'은 결코 멋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거의 다 찌질한 고민, 시행착오, 실패, 막연함, 외로움, 닿지 않는 열망 같은 것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현실은 가혹하고, 적응하려면 꿈과 희망 말고도 알아야 하는 게 정말 많았다.
그런데도 왜 계속 떠났던 걸까? 돌이켜보면, 그게 어떤 형태의 여행이었건, 거기서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건, 결국 나는 무언가를 배웠다. 공부하러, 일하러, 누군가와 만나러, 그리고 쉬기 위해 떠났던 시간은 그냥 그걸로 소용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스쳐갔다고 생각한 모든 순간들이 신기하게도 내 안에 쌓여 있었다.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했던 여행은 여행 잡지나 멋진 여행기에 나오는 것처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은 아니었다. 뭔가를 많이 이겨낸 뒤 영광스런 상처를 자랑하는 영웅기도 아니었고,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도 없었다. 오히려 조금 못나고, 많이 평범했다.
막막해서 울고, 해결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헤매거나 무서워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붙들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 안전한 내 집 침대 위에서는 결코 해볼일 없던 온갖 생각과 경험 속에서 정말 하찮게 휘둘렸다.
교과서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뼈저리게 깨닳았고, 잘 몰랐던 내 부끄러운 모습도 수없이 발견했다. 10년 넘게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 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내가 이렇게 많이 넘어지는 사람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여행을 마친 뒤의 나는, 떠나기 전의 나와 조금 익숙한 듯 다른,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