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턴십이 그렇게 망한 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빅토리아의 고택 유적, Craigdarroch Castle에 자원봉사 지원을 한 것이다. Craigdarroch Castle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만들어진 고택으로, 당시 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던 던즈미어(Dunsmir)가문이 사용하던 곳이다. 한때 병원, 학교 등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역사박물관(Historical Museum House)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는 연간 15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박물관 운영국은 따로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 오직 기부금과 박물관 입장료 등의 수익금만으로 내부를 복원하고, 박물관을 운영한다. 그래서인지 박물관 운영에 자원봉사자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선발된 자원봉사자들은 일정 기간 훈련을 받은 뒤 성의 역사와 유물을 설명하는 도센트(Docent)나, 입장료를 받고 성의 기본 안내를 담당하는 캐셔(Casher) 등으로 활동한다. 나는 영어 실력도 늘릴 겸, 흥미로운 경험도 해볼 겸 이곳에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다.
도센트도 캐셔도 관광객들을 응대하고 성의 유물과 역사를 설명하는 포지션이라 어학연수 온 외국인을 뽑을까 걱정했었지만, 이는 기우였다. 업무에 지장이 없을 만큼만 영어를 구사한다면 외국인 학생들도 자원봉사자로 일할 수 있었다. 나는 한차례 인터뷰를 본 뒤 몇 번의 교육을 마치고 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일은 매우 흥미로웠고, 같이 일하는 직원과 봉사자들 모두 친절하고 밝았다. 일이 재밌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으니 당연히 일하는 시간이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작은 입구를 열고 들어온 관광객들을 맞이하며 “자, 여기에 신발부터 닦으세요!”라고 말하는 캐셔 포지션도 재밌었고, 좁고 어두운 공간에 실망한 기색이던 관광객들의 시선을 천장으로 끌어 올려 감탄하게 만드는 도센트 역할도 즐거웠다. 관람 코스 끝 기념품점에서 관광을 마친 사람들의 흥분 가득한 얼굴을 보는 것도 기뻤다. 성에 일하러 오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다.
성의 입구, 작은 캐셔 공간
"입장 전, 꼭 슈 크리너를 사용해 주세요!"
좁은 입구에서 실망하지 마세요, "Please take a look up!"
어느 날 봉사자들의 게시판 역할을 하는 팬트리 냉장고에 직원을 뽑는다는 공지가 붙었다. 곧 여름이라 손님이 훨씬 많아질 테니 미리 직원을 한 명 더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공지를 그냥 흘려 넘겼다. 뽑힐 직원이 부럽긴 했지만,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외국인, 그것도 학생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캐나다에서 일을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고, 감히 욕심도 안 났다. 또한, 같이 일하던 친구들 중에 현지 대학생들도 많으니 박물관 측에서도 당연히 현지인 직원을 뽑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날도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는데, 자원봉사 지원 당시 내 인터뷰를 맡았던 니콜이 다가왔다.
“이번에 우리 새로 직원 뽑는 거 알지? 네가 일해주면 좋겠는데 생각 있니?”
어안이 벙벙했다.
...나? 나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몇 번을 되물었다.
나중에서야 내가 그 포지션에 가장 잘 들어맞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성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는 도센트나 캐셔, 기념품점 보조 중에 하나의 역할을 맡는다. 자리마다 업무 차이가 많이 나고 숙지해야 하는 내용도 달라서 보통은 하나를 골라 그 포지션에 집중한다. 도센트라면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가득 들어찬 유물이나 성의 역사에 대해 외우고, 캐셔라면 다양한 결제 수단을 소화하고 입구에서 손님의 흐름을 조절하는 스킬에 집중한다. 기념품점 보조는 지하의 창고 관리와 재고 위치, 그리고 상점 내 다양한 상품군을 외우는 식이다.
그런데 웬 특이한 봉사자 한 명이 세 개 포지션 업무를 다 보겠다며 온 성을 쏘다닌 거다. 그리고 정말 세 개의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성에 갑자기 관광객이 몰려 바빠지거나 어떤 포지션을 맡았던 사람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 어디든 바로 투입돼서 일할 수 있는 ‘직원 같은’ 봉사자가 하나 생겼다. 그게 바로 나였는데 그걸 나만 몰랐다. 나는 그냥 흥미를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내 비자. 밴쿠버 공항에서 만난 심사관이 날 대차게 까준 덕분에 입국 후 재신청했던 그 비자 말이다. 일이 가능한 아주 긴 비자. 내가 그 비자를 가지고 있었다. 운영국 입장에서는 꽤 매력적인 선택지였던 셈이다. 여기저기 공고하고, 지원받아서 인터뷰 보고, 그렇게 뽑은 직원을 다시 훈련하는 등의 번거로움 없이 바로 뽑아서 바로 쓸 수 있는, 검증된 즉시인력이 이미 성안을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정식으로 고용계약을 맺었고 자원봉사로 하던 일을 돈을 받으며 하게 됐다.
처음엔 얼떨떨하고 기뻤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왜 나는 내가 직원이 될 수 없다고 그렇게 확신했던 걸까? 왜 지원 요건도 읽어보지 않았고, 지원할 생각도 안 했을까? 선발될 사람이 부럽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질문의 끝에서, 나는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줄을 딱 그어놓고, ‘여기까지만 가능하고 이 위로는 안 돼’라고 말하던 내면의 나를 만났다. “안 되도 질러나 보는 거지!” 같은 말을 뱉으며 호기로운 척 할 수 있는 건 무급 인턴십이나 자원봉사 같은, 사실은 ‘어느 정도 가능성 있고 만만해 보이는’ 일에 한해서였고 그 이상의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도전을 회피하고 있었던 거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전혀 믿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하찮게도 여기는 내가 거기 있었다.
이 일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어학연수생이 외국에서 ‘직원이 되는 일’이 몹시 어려운 일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내가 그런 기회를 얻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믿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는데도.
어쩌면 내가 나를 가장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도, 나만 고집스레 이를 믿지 않는다. 내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얼마나 컸는지 사실 내가 가장 모른다.
그래서 멋진 기회가 바로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보지 못했다. 기회가 그렇게 친절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내게 그걸 잡을 자격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니콜이 다시 권유해준 덕분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자칫 그런 기회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흘려보낼 뻔했다.
고용이 결정되던 날, 사실 스스로의 가능성을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던 그 저녁. 스스로에게 조금 미안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설렜다. 새롭게 인지한 내 자신과, 기회의 가능성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제나와 같은 평범한 퇴근길이었는데, 평소보다 훨씬 더 밝고 시원해 보였다.
선명하고 시원했던 퇴근 길, 여름이 다가오면 늦게까지 환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 앞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하지만 분명히 잡을 수 있는 기회들이 우릴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지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사이 이미 많은 기회가 우리 앞을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지레짐작하고 포기해버리면, 그 기회는 영영 당신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한 자세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삶을 통해 벌어질 새롭고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는 마음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언가를 기대하자. 어쩌면 우리는 이미 기회를 손에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