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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Oct 14. 2020

손님들이 널 기다려줄 거야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캐나다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기다려주는 모습’이었다



.

초극성수기, 캐셔는 한 명입니다

여름이 되면 빅토리아의 유동인구는 관광객 덕분에 몇 배로 늘어난다. 내가 일하던 성에도 관광객이 무섭게 몰려들었다. 일반 관광객에, 인근 항구에 내린 크루즈 단체 손님들까지. 정말 쉴 새 없이 몰려든다. 손님이 몰려올 때 성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아무래도 성 입구에서 매표소와 안내 데스크 역할을 하는 캐셔(Casher)다.      


캐셔의 일은 입장료 결제, 언어별 안내 자료 배포, 오디오 투어 기기 대여, 관광객들이 건물 안으로 입장하기 전에 슈 클리너를 사용하게 하기, 그리고 관광객들의 질문에 응대하기 등 크게 다섯 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틈틈이 안내 자료를 미리 정리하고, 재고도 채워 넣는다. 관광객들이 내는 동전이나 거스름돈이 정말 캐나다 동전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고, 택시 호출을 요청하는 손님도 많아서 입장료 받는 중간중간 콜택시 부르는 전화도 한다.      


그러면, 이렇게 밀려오는 여름 성수기 관광객들을 응대하는 캐셔는 몇 명이나 될까? 

한 명, 단 한 명뿐이다. 


캐셔는 성의 주 출입구와 메인 홀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을 활용하는데, 평범한 집으로 치면 현관문과 중문 사이에 있는 신발장 한쪽 공간에 테이블을 두고 손님을 받는 식이다. 워낙 공간이 좁다 보니 매표소를 한 곳 밖에 둘 수 없어서, 손님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캐셔는 언제나 한 명이다.      


아담한 캐셔 공간. 중앙 문을 지나면 메인 홀이다. 왼쪽이 슈 클리너.


여름이면 저 바깥으로 줄이 끝없이 늘어진다



손님의 기다림

여름 성수기 한복판의 어느 날, 나는 이 캐셔 자리에 섰다. 자원봉사자에서 직원으로 전환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업무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갑자기 손님이 늘어나니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은 계속 말을 걸었고, 눈앞에 전 세계의 카드가 다 들이 밀어졌다. 


정신없이 계산하고 안내하는데도 줄은 계속 길었다. 줄이 계속 길다는 걸 인식하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마음은 급하고 손은 바쁜데, 그날따라 슈 클리너(Shoe Cleaner)를 사용하기 전에 메인 홀로 들어가려는 손님들이 너무 많았다. 건물 자체가 유적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슈 클리너에 발을 넣고 신발 바닥을 한 번씩 닦아야 했는데, 오래 줄을 선 뒤 입장할 수 있게 되니 급한 마음에 메인 홀로 돌진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머리가 점점 하얘졌다.      


그때, 자원봉사자일 때부터 일을 가르쳐주고 도와주던 니콜이 메인 홀 밖으로 나왔다. 한눈에 상황을 인지한 그녀가 옆에서 손님 안내를 돕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나를 다독였는데, 그때 해준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괜찮아, 네 속도대로 해.
다들 기다려 줄 거야 (They can wait for you).”     

순간 무슨 말을 들은 건가 귀를 의심했다. 기다려줄 거라고? 누가? 손님이?     


당시, 2010년 즈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고객이 왕이다’ 같은 말이 서비스업에서 진리처럼 사용됐고 손님이 기다리지 않게끔 빠른 서비스를 하는 것이 강조됐다. 그리고 당연히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좁은 공간에 매표소가 딱 하나뿐인 것도, 그래서 줄이 긴 것도, 캐셔가 대규모 관광객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입장 전에 슈 클리너 등 거쳐야 하는 절차가 많은 것도. 모두 기다려야 하는 손님 입장에서는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황을 손님들이 불쾌해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버겁고 당황스러워도 그저 내가 더 빨리 못하는 게 잘못이라 생각했고, 줄을 빨리 줄이는 것만 생각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짜증이 났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테랑 직원인 니콜이 ‘손님들은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한 거다. 그리고 정말 니콜의 말이 맞았다. 그날을 포함해서 성에서 보낸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관광객이 몰려와 줄이 길어지는 일은 아주 흔했지만, 단 한 번도 ‘줄을 너무 오래 섰다. 카운터에서 너무 오래 기다린다. 왜 카운터가 하나냐, 더 빨리해 달라’ 같은 컴플레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다려주는 건 손님들뿐이 아니었다. 일하는 동안 실수할 때도 있었지만 성의 그 어떤 스텝도 나를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가끔 그럴 때도 있는 거라며, 다시 방법을 알려주고 내가 충분히 일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끝까지 기다려줬다.     


“네 속도대로 해. 다들 기다려줄 거야.” 


1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이 말을 들을 때 놀랐던 감정이 또렷이 기억난다.  


왜 기다려 주는 일이 내게는 그렇게 낯설고 놀라웠을까.






기다려주는 사람들 속에 꽃피는 업무 능력

그 뒤로도 나는 여러 번 캐나다 사람들의 ‘기다려 줌’을 경험했다. 성에서의 근무 이후, 나는 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하는 NGO에서 인턴십 기회를 얻었다. 여기서도 많은 배려를 받았다. 느리고 서툴렀지만, 그래도 직원들, 특히 내 보스였던 크리시는 항상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며 기다려줬다.      


이 NGO는 운영 방식이 좀 독특했는데, 단체 운영에 자원봉사자를 아주 활발히 활용했다. 인력풀에 등록된 봉사자만 3천 명이 넘어가는데, 각 부서에서 필요에 따라 인력을 요청하면 자원봉사자실에서 봉사자를 연결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이 자원봉사자실에서 인턴십을 했는데 책임자인 크리시는 밝고 쾌활한 여성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공부도 많이 했고 맡은 일에 늘 진지한 멋진 보스였다. 크리시는 나에게 다양한 일을 맡겼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가 잘하는 일을 찾아주었고, 못 하는 일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덕분에 자신감이 붙어서 성에서처럼 온갖 포지션을 다 쑤시고 다녔고, 곧 단체의 거의 모든 부서에 지원을 나가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실에서 크리시를 도와 봉사자나 인턴을 관리하고, 리셉션 담당자가 자리를 비울 때면 능숙하게 리셉션 업무를 처리했다. 단체 홍보자료를 만들어서 빅토리아 대학교를 비롯한 지역 학교들을 돌며 학생들을 붙잡고 단체 소개를 하거나 봉사자를 모집 하기도 했고, 거주지원팀을 도와 이제 막 캐나다에 정착하게 된 이주민이나 난민들의 정착을 도왔다. 때로는 고용지원팀을 도와 이주민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자신의 경력과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나 자격 정보를 알아봐 주기도 했고, 1년에 한 번 열리는 주요 펀딩 행사인 [글로벌 패션쇼]를 지원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열심히 만들었던 외부 행사용 판넬. 외부 행사 마다 요긴하게 사용했다.


대학생 설명회 날. 부스를 찾아온 학생과 열심히 대화중인 보스, 크리시


빅토리아 글로벌 패션쇼, 정신없는 벡스테이지


본 무대. 시의 주요 인사들이 잔뜩 오셨다.




크리시가 기다려주는 보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성과를 낼 수 없었을 거다. 처음에 잔뜩 실수하고 아무것도 모를 때 왜 자꾸 실수하냐고 비난하거나 못한다며 일을 맡겨주지 않았다면, 아마 주눅이 잔뜩 들어서 인턴십 내내 최소한의 일만 겨우 처리했을 것 같다.      


이런 일들을 계기로 나는 ‘기다려 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냥 ‘놀라울 정도의 친절함’ 같은 거로 생각했는데, 기다려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내가 엄청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두 번 연속 보고 나니, 이게 뭔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는 왜 잘 기다려주지 못할까. 우리의 ‘삶의 속도’는 괜찮은 걸까.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한적하고 작은 도시 빅토리아와 바쁘고 치열한 거대 도시 서울을 1:1로 비교할 수는 없다. 캐나다 사람들의 태도가 옳고, 한국 사람들의 태도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린 우리의 환경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온 거니까. 캐나다는 그 커다란 땅에 우리나라 인구보다도 적은 3,700만 명이 산다. 사회 정치 시스템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며, 문화도 다르다. 당연히 우리나라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다름’을 만나는 경험을 할 때면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내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당장 택배나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발을 동동거리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의 속도는 다 괜찮다

한국에 돌아온 뒤,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종종 그때 기다려주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은 환경에서 사람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그런 환경에서 내 실수와 느림을 사람들이 어떻게 기다리고 참아줬는지. 그때를 기억하면 오늘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던 누군가의 실수, 느림, 그리고 작은 불편을 한 번 더 참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끔 누군가 너무 느린 것 같아 답답할 때가 있다. 어떤 날에는 나보다 앞서가는듯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뒤처진 건 아닐까 두려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런 마음이 드는 나를 못났다고 밀어붙이거나 저 사람이 너무 느려 답답하다고 화내기보다,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마음을 다독인다.      


언어도, 시간도, 문화도 다른 땅에서, 나는 평생 보고 배운 삶의 모습이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여러 나라의 생활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삶의 속도 역시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그 속도가 꼭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도, 내 속도대로 열심히 걸어가는 길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속도를 기다려주고 존중해주는 것도 멋진 일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따뜻한 응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한 삶이 있고, 삶의 모든 순간은 감사하고 찬란하다. 나는 나의 속도를 잃지 않는 것으로 충분히 괜찮다.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나는 나의 길을 가는 데 집중하는 것. 2년 넘게 머물던 캐나다 작은 시골 도시가 알려준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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