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작은 골방에서 온갖 씨름을 하며 작성한 석사 논문을 겨우 제출하고, 후다닥 방을 뺀 지 일주일. 나는 타이베이에 왔다. 캐나다에서 함께 인턴십을 했던 대만 친구가 그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며, 귀국하는 길에 잠시 들러 얼굴이나 보자 했기 때문이다. 귀국 짐을 이고 지고, 생전 처음 대만 땅을 밟았다.
나는 올림픽 오륜기가 대만의 국기인 줄 알 만큼 대만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래서 처음 타이베이 공항에 내렸을 때, 커다랗게 걸린 국기에 조금 놀랐다. 붉고 푸른 바탕에 하얀 태양이 그려진 대만 국기는 생각보다 훨씬 예뻤다.
하지만 피곤함에 찌든 마음은 곧 다시 시큰둥해졌다. ‘그래, 거리 깨끗하고 안전해 보이니 쉬다 가긴 좋겠네.’ 푹 쉬고,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며 안부를 묻는 일. 그게 당시에 대만에 기대하던 전부였다.
(왼쪽부터) 대만 입국 도장 모양, 내내 들고 다니던 여행 가방과 노트북, 타이중으로 가는 기차
타이중으로 가는 고속 기차를 탔다. 친구는 몇 시에 도착하느냐며 벌써 난리다. 짐을 호텔까지 옮기려면 차가 필요할 테니 남편과 함께 마중을 나온단다. 짐이 무거웠던지라 내심 반가웠다. 좋아, 도착하면 바로 쉬면 되겠다. 친구랑은 내일 오후쯤 보면 되려나? 몇 시간 뒤, 나는 타이중에 내려 무사히 친구 부부를 만났고 친구 남편 덕분에 호텔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트렁크에서 짐을 빼며, ‘내일 몇 시에 보자고 할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불쑥 말을 건다. “얼른 짐 놓고 바로 내려와.” 놀라서 쳐다보니 친구도, 친구 남편도 당연히 내가 내려오리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뭐지. 이게 뭐지. 혹시 우리가 이미 약속을 잡았나? 거절의 말을 해야 하는데, 기대 가득한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 정신 차려보니 온갖 먹을거리가 다 있다는 타이중 야시장 한복판에 서서, 뭔가를 잔뜩 먹고 있었다. 배가 불러 죽을 거 같은데 친구 남편은 자꾸 뭘 더 사다 안겼고, 중국어를 하나도 못 하는 나는 무례하지 않기 위해 그저 최선을 다해 웃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친구 부부는 날 호텔에 내려주었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에 보자고 손을 흔들었다. 늦은 밤, 배에 음식이 가득해서 소화가 될 때까지는 누울 수도 없는데, 나는 또 예정에 없던 내일 아침 약속이 생겼다. 그제야 친구와 내가 생각한 ‘우리 대만에서 보자’의 의미가 달랐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왼쪽부터) 대만식 아침식사, 타이중 유명 만두집, 야시장 핫도그
(왼쪽부터) 파인애플은 땅에서 납니다. 공장에서 갓 찍어낸 써니힐 펑리수
(왼쪽부터) 지지 대지진(또는 921 대지진) 때 무너진 무창궁, 지지 역, 동네 맛집 빙과
친구 부부는 주말을 다 바쳐서 내게 타이중 관광을 시켜줬고, 나는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오후에 잠깐 친구랑 차를 마시려던 계획’을 뒤로하고, 시차와 피곤 속에서 예상치 못한 관광 스케줄을 밟았다. 낯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종일 돌아다니고, 밤에는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괴로웠다. 다크서클이 무섭게 턱으로 치달았다.
그래도 친구 부부의 마음이 느껴져 기쁘고 고마웠다. 피곤해도 새로운 풍경을 보는 건 즐거웠고, 친구와 함께 둘러보는 타이중은 순간순간이 특별했다. 두 살 겨우 된 아이를 돌보며 맞벌이하는 부부가(게다가 시모도 모시고 있다), 금요일 저녁부터 온 주말을 다 써서 관광을 시켜준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힘들고 바쁠 텐데 지극정성으로 챙겨주는 친구 부부의 마음이 고맙고 놀라웠다. 계획과는 전혀 달랐지만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왼쪽부터) 친구네 가족, 일월담, 마지막 날 친구가 챙겨준 나무 엽서들
타이베이로 돌아온 뒤, 출국 전날 밤. 나는 가지고 있던 현금을 대부분 소진했다. 다음날 바로 공항으로 가는 일정밖에 없었고, 당분간 다시 대만을 방문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공항까지는 카드 택시를 이용할 예정이었다. 짐을 정리해 놓고 침대에 누워 지난 며칠 동안의 일을 회상했다. ‘큰 기대 없이 왔는데 친구 덕분에 재밌었네. 대만도 꽤 매력적인 여행지인 것 같아. 그래도 너무 피곤했어. 집에 가면 며칠 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지.’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세상에. 아침이다! 그것도 출국 2시간 전!!
급히 택시를 불렀다. 공항에 도착하니 출국 시간이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아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 급히 카드를 내밀고 짐을 챙겨 들었다. 그런데 계속 결제 기기를 두드리던 기사님이 청천벽력 같은 소릴 했다. “카드가 안 되네요?” 결제가 안 된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카드가 안 먹혔다. 나는 한 장의 신용카드와 한 장의 현금 직불 카드를 들고 있었다. 유학 시절에도 내내 사용하던 카드였는데, 대만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 사용이 어려워서 현금 카드만 사용했다. 그러니까, 지금 결제가 안 돼서 말썽인 카드가 바로 전날까지도 멀쩡히 긁히던 카드였다는 거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택시에 짐을 남겨두고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공항 ATM기로 뛰었다. 초록색 기계에 카드를 집어넣고 인출을 눌렀는데 승인이 거절됐다. 통장에는 충분한 잔고가 있는데, 왜? 급히 다른 기계로 뛰어갔다. 퉤. 붉은색 기계도 카드를 뱉었다. 그쯤 되니 공항 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이제 비행기가 문제가 아니다. 돈은 안 뽑히고 카드 결제는 안 되니 택시 기사님께 돈을 못 드리게 생겼다. 한국에 있는 내 통장에서 대만 택시기사님 통장으로 계좌이체를 할 수도 없고. 무전취식도 아니고, 이건 뭐라고 해야 하지? 카드는 안 되고, 현금도 없고, 친구는 타이베이에서 한참 떨어진 타이중에 있었다. 공항 경찰과 공항 안에 있는 거의 모든 ATM기를 다 돌아다녔지만 소용없었다. 나중엔 공항 내에 있는 은행들을 찾아갔지만 다들 이유를 모른단다. 잔액도 있고, 어제까지 멀쩡히 긁히던 카드가 왜 갑자기 안 되는 건지. 속이 까맣게 탔다. 결국 비행기를 놓쳤다. 택시 기사님은 벌써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돈을 내고 보내드려야 하는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한 여성분이 다가왔다. 자신을 모니카라고 밝힌 그녀는, 자신이 택시비를 내 줄 테니 대신 자신의 별다방 선불카드를 충전해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거 같았다. 당장 카페로 뛰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카드는 먹통이었다. 좌절하던 내게 모니카는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혹시 대만에 돈을 대신 내줄 만한 사람이 있느냐, 나중에 계좌이체를 해준다고 하면 내가 돈을 내주겠다”고. 그냥 가버리지 않고 끝까지 같이 방법을 고민해주는 모니카가 정말 고마웠다. 타이중에 친구가 살고 있다고 하자, 그녀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더니 친구가 돈을 보내주기로 했다며 택시비를 내 주었다. 겨우, 사태가 끝날 기미가 보였다.
택시로 돌아갔다. 한참 기다렸을 택시 기사님께 너무 죄송했고, 영업시간을 잔뜩 손해 봤으니 내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님은 괜찮다며 기존에 나온 비용만 받아 가셨다. 노성도, 비난도 없었다. 조금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택시비를 내준 그녀가 다시 말을 걸었다.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식사할 돈은 있냐고. 그런 것까지 받기엔 너무 염치가 없어서 극구 사양했다. 모니카가 돌아간 뒤, 옆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청원 경찰(공항 경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이 돌아갈 비행기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핸드폰으로 모바일 예약을 할 거라고 하니, 그건 별문제 없이 결제되겠냐며 걱정스러워했다. 그러더니 전광판을 가리키며, 인천으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몇 시간 뒤에 있고 어떤 항공사인지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이 청원 경찰은 어릴 때 인천에 살았던 화교였고(그것도 모르고 서로 영어로 대화한다고 힘들었다), 모니카도 그가 불러 준 거였다. 모니카는 그의 약혼녀였는데, 마침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있었던 그녀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도와줄 수 있냐고 연락을 해 준 것이다. 그 청원 경찰은 내가 다음 비행기를 예약하고 다른 터미널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러 갈 때까지 계속 같이 있어 줬다. 마지막까지 정말 뭐 안 먹어도 괜찮겠냐며, 밥값 없어도 되냐고 걱정을 하면서.
(왼쪽부터) 그 난리를 친 뒤- 공항 출국장, 남은 돈 탈탈 털어 구입한 그날의 첫 끼, 공항에 걸려있던 대만 국기
몇 시간을 더 기다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긴장이 풀리자 극도의 피곤이 몰려왔다. 멍한 시야 끝, 점점 멀어지는 대만 땅이 보였다. 문득, 또 대만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대만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을까? 유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볍게 들렀던 나라. 잠깐 친구 얼굴을 볼 겸 쉬어가려던 곳. 아무 기대도 없었고, 아는 것이라곤 도시 이름 한두 개가 전부였던 곳. 돌이켜보니 이 나라에서의 모든 순간이 처음 계획과 달랐다. 제대로 쉬지 못해 몸이 너무 피곤했고, 마지막까지 당황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그러면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으니 나쁜 여행이었을까?
아니. 물음이 떠오름과 동시에 확고한 부정이 떠올랐다. 절대 그렇지 않다.
대만에서의 일은, 분명 없었으면 더 좋았을 사고다. 당황스러운 시간이었고, 여러 사람에 피해를 끼쳐 아주 미안했으며, 결국 비행기를 놓쳤고, 새로 표를 끊느라 돈을 더 써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다시 경험하기 싫을 만큼 아찔하고 당황스러운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너무 낯설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의 친절도 경험했고, 낯선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도 느꼈다. 이 나라에서 무겁고 중요한 어떤 것을 받은 것 같았다. 대만은 내게 아주 특별한 나라가 되었다.
좋은 여행이란 건 뭘까. 어떤 사람에게는 계획한 일정을 완벽하게 다 소화하는 여행일 수도 있겠고, 최대한 많은 장소를 다녀오는 여행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많이 배우는 여행을 말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몸도 마음도 편하게 잘 쉬고 오는 게 가장 좋은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좋은 여행의 정의가 다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다녀온 뒤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녀온 여행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면 결국 다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약 10년 정도의 시간 동안 5개 대륙의 19개 국가를 다녔다. 재밌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힘들고 당황스러운 순간이 더 많았다. 그래도 다녀온 여행 중에 단 한 순간이라도 쓸모없었다거나 괜히 갔다고 후회한 적은 없다. 일정이 망해도, 계획과 달라져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도 여행은 늘 내게 무언가를 주었다. 유쾌하지 않은 순간들이었지만, 그 역시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어떨 땐 마음을 울리는 통찰을 선물 받기도 했다.
실패나 좌절의 경험은 교훈을 남기고 (카드는 꼭 여러 장 들고 가자, 출국 날 늦잠 자면 큰일 난다!), 돌발 상황에서 더 여유 있게 대처하게 하고 (비행기를 놓쳤다고? 뭐, 그럴 수 있지), 그 모든 일을 잘 이겨내고 집에 무사히 돌아왔을 때 커다란 성취감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