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
소설가 J. K. 롤링의 소설 <해리포터>에는 신기한 생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 ‘디멘터’라는 생물은 인간의 행복한 감정을 없애고 슬픔, 두려움, 절망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게 얼마나 끔찍한지 마법사들의 사회에서는 이 디멘터의 ‘키스’가 일종의 사형 제도처럼 취급된다. 디멘터의 키스를 받으면 행복했던 기억과 영혼이 모두 사라지고 그저 사람의 육체만 껍데기처럼 남기 때문이다.
이 괴물을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삶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익스펙토 페트로눔!”이라는 주문을 외치는 거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황금빛을 뿜어내며 디멘터를 공격하고, 디멘터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다.
우리 삶에도 ‘디멘터’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절망, 슬픔을 마주하면 희망이나 행복은 자취를 감춘 것 같고, 마음은 무력감과 슬픔에 묶여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가라앉는다. 그럴 때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두려움에 숨이 턱턱 막힌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그때, 내 안에 쌓아놓은 행복한 기억이 힘이 된다. 어느 때인가 분명히 있었던, 그래서 내 안에 남은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조금 숨이 트인다. 그러면 눈물 밭에 다시 작은 감사가 떠오른다. 그렇게 행복한 기억과 감사를 하나하나 더듬어 안으면 어느 순간 다친 속을 다독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런던에서 석사를 마치고 졸업할 때, 큰맘 먹고 부모님을 모시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학부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아 부모님이 많이 서운해하셨던지라, 석사 졸업식이라도 보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다 모이는 게 오랜만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처음으로 유럽에 가시는 거니까, 이왕 멀리까지 온 김에 짧게 스코틀랜드 여행도 하기로 했다. 당시 갓 취직을 했고 아프리카 출장까지 겹쳐 정신이 없었지만 동생과 돈을 모아 경비를 마련하고, 어찌어찌 여행 준비도 잘 끝냈다.
이 일정을 말씀드렸을 때 유독 아버지의 반대가 컸다. 이유는 말씀 안 해주시고 계속 안 가신다는 게 아무래도 자식들 부담될까 봐 그러시나 보다 해서 일부러 강권해서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가족들과 졸업식에도 참석하고 여행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유독 시원하게 펼쳐진 들판을 한참 동안 바라보셨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가니, 여행 초기에는 계속 어둡던 아버지 표정도 다행히 조금씩 가벼워졌다.
행복하게 다녀온 가족들의 첫 유럽 여행. 런던과 에딘버러 인근만 겨우 보고 왔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하니 즐겁고 행복했다. 그런데 돌아오고 얼마 안 돼서 이런 행복한 기억은 생각도 안 날 만큼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의 빚 문제였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야 아버지가 빚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렇게 여행을 안 가겠다고 하셨던 거다.
아버지의 폭탄 고백에 온 식구들이 충격에 빠졌다.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문제들이 우리 가족을 할퀴며 들이닥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찢어지지 않기 위해 온 가족이 이를 악물고 서로를 붙잡아야 했다. 아버지는 채권자들이 식구들에게 해코지할까 봐 집을 떠나 계셨고, 군대에 있는 막냇동생에게는 혹시나 싶어 상황을 알릴 수 없었다. 걱정하는 어머니와 둘째를 다독이면서 정신없이 방안을 찾는 날이 이어졌다.
우는 어머니를 다독이고 침대에 누우면 속이 답답해서 잠들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 가서 속 시원하게 펑펑 울어버리면 좀 나을 것 같은데 울 데가 없었다. 집에서 울면 우는 소리에 식구들이 걱정할 것 같고, 괜히 친구들을 붙잡고 힘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모르는 사이 빚이 더 커졌다면 나중에는 정말 손 쓸 수 없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일 때 이런 일이 터졌다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을 테지만, 나도, 둘째도 취직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작게나마 어머니를 도울 수 있을 때 일이 터져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갑자기 직장에도 문제가 생겼다.
갑작스러운 상사와의 독대 후, 당장 아프리카로 몇 년 장기파견을 가거나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 펀딩에 문제가 생겼단다. 일주일 안에 결정하라는 통보를 들었을 때는 정말 숨이 막혔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파견을 가면 보직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아버지 빚 문제도 아직 제대로 해결을 못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식구들만 두고 파견을 갈 수가 없었다. 파견을 못 간다는 내게 상급자가 이유를 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대답을 못 했다. 나는 그렇게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서 계약 해지를 당했다. 벼랑 끝에 겨우 매달려 있던 손이 밀쳐진 것 같았다.
그렇게 잠들지 못 하는 밤, 눈물이 마를 새 없는 시간이 계속됐다. 가족들이 말도 못하게 원망스럽기도 했고 더없이 애틋하기도 했다. 풋풋한 마음을 키워가던 사람도 순식간에 마음에서 밀려났다.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먹먹해졌다. 절박하게 기도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을 봤다. 스코틀랜드의 푸른 초원 위에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사진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나 자신을 향한 조소였다. 멍청하게, 상황이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속 편하게 해외여행이라니. 사진 속 행복한 내 얼굴이 그렇게도 멍청해 보이고 속상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진 속 가족들 표정이 맑았다. 신기하게도 아버지 얼굴도 밝았다. 모두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지친 얼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움과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여행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지의 공원을 걷던 날, 현지 시장 탐험을 했을 때, 관광지 식당에서 맛없는 파스타를 꾸역꾸역 먹었을 때, 시차 적응이 안 돼서 숙소로 낮잠 자러 들어오던 날, 관광에 지친 아버지 손을 이끌고 가족사진을 찍었을 때, 평범한 돌담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뭐가 그리 웃긴다고 서로 한참을 깔깔거렸을 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들고 산책하던 날.
하나하나 기억할 때마다 그때의 감정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터졌다. 기억도 안 난다고 생각했던 행복이 생생하게 거기 있었다.
그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여행 이야기를 했다. 그때 어디가 좋았다, 어떤 음식이 맛있었다, 그것참 재밌었다, 한참 동안 추억을 떠올렸다. 신기하게도 웃음이 났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다녀온 짧은 가족여행을 떠올리며 다들 웃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사진 속에서 자신의 웃는 얼굴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다.
그리자 신기하게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문제에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함께 있었고, 서로 저렇게 행복한 순간을 나눴었고, 무엇보다 기도할 수 있었으니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던 가족여행은 이후 가족들과 어려운 시기를 넘어갈 때마다 큰 힘이 됐다. 힘든 시간을 마주해야 할 때, 서로에게 화가 나고 미운 마음이 들 때마다, 함께한 기억과 행복했던 감정을 떠올리면 마음을 추스르기가 한결 수월했다.
특히 아버지의 경우 문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쉬다 온 것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정서적으로 많이 몰렸을 때는 무서운 생각도 하셨다는 걸 알고 나니 사진 속에서 조금씩 편해지는 아버지 얼굴이 그렇게 다행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그 시간이 의미가 있었고 오랫동안 위로가 됐다.
그 뒤로도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시기를 보냈다. 그래도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미리 준비해서 일 년에 한 번은 꼭 가족여행을 가려고 노력했다. 여행이 가지고 있는 치료와 회복 효과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족들에게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경험은 사람의 정서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친다. 다시 일상을 살아낼 힘을 주기 때문이다. 비록 풍족하고 여유로운 여행은 아니었지만, 여행 경비와 여행 만족도가 꼭 정비례 관계는 아니니까 괜찮다.
일상이 항상 평안하게 이어진다면 참 좋겠지만, 근심 걱정 없는 날보다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는 날이 훨씬 많다. 산을 하나 겨우 넘은 것 같은데 또 산이 나오는 날도 있고, 불의의 일격에 얻어맞는 날도 있다. 속상함과 낙심 속에 헤매는 날이 또 올 수도 있다. 그때, 내 안에 쌓아 놓았던 행복과 감사가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 안에 쌓아 놓은 행복한 기억이 우울과 절망에 먹히려던 마음에 잠시 숨 쉴 틈을 주고 포기하지 않게 도와준다는 것을 말이다.
여행을 간다면, 그 순간 최대한 행복하고 감사하자. 그래서 그 기억과 감정이 내 안에 잘 쌓이도록. 그렇게 쌓인 행복과 감사가 어두운 순간을 지날 때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당신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기억나게 해줄 거다.
그러니 부지런히 행복한 순간을 쌓아가자. 작고 소소한 행복, 특별한 추억, 신기하고 두근거렸던 기억, 웃음이 절로 나오던 순간, 그리고 감사한 마음들을 당신 안에 모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