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헬, 아프리카 출장기_01
2015년, 연구소에 입사하고 채 한 달도 못 됐을 때. 나는 갑자기 아프리카로 리서치 출장을 떠나게 됐다. 한 달 일정, 두 개의 프로젝트를 위한 출장이었는데 한 프로젝트는 탄자니아에서, 한 프로젝트는 말라위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아직 대학원 졸업식도 못한 따끈따끈한 석사 나부랭이였고 (출장을 마치고 졸업식에 다녀왔다), 아프리카는 여행으로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출장 두 건을 아프리카로, 그것도 선임도 없이 혼자 다녀오라니. 원래 이 업계가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인가.
나는 1인용 모기장 탠트와 황열병 접종 확인증, 말라리아 처방약 한 봉지, 그리고 조사가 필요한 수많은 리스트를 들고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공항에 떨어졌다. 그게 내 첫 해외출장 이었다. 그 뒤로 다른 출장지도 다녀올 기회가 있었지만, 몇 년간 다녀온 모든 출장을 통틀어 이 아프리카 출장이 가장 힘들었다.
출장 일정은 상당히 빡빡했다. 아프리카는 워낙 멀어서 한국에서 자주 오고가기가 어려우니, 한 번 갔을 때 최대한 많은 일을 끝내두려고 이것 저것 필요한 모든 일정을 다 쑤셔 넣는 것이다. 똑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동남아 등의 가까운 지역 보다 출장 난이도가 훨씬 높다.
바쁜 일정보다 더 힘든 건 출장 내내 유지해야 하는 긴장감이었다. 출장비를 모두 현금으로 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환전 비율은 1 미국 달러에 현지 화폐 여러 장. 자연히 돈 부피가 엄청 늘어난다. 나는 4주간의 출장비를 가지고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내렸다. 2주 뒤에 국가를 한 번 옮겨야 하는데다가, 현지 조사원들의 인건비부터 출장자 식비까지 모두 현금으로 들고 있어야 해서 금액이 꽤 컸다.
한국보다 불안한 치안 상황을 생각하면 긴장은 배가 된다. 범죄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써 허름해 보이는 옷을 입고, 단 한 순간도 몸에서 가방을 떼놓지 않았다. 너무 껴안고 다니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신경 쓰지 않는 척 신경 쓰느라 신경이 닳는 것 같았다.
출장 가서 비용을 사용했다면 적절한 증빙 자료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건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아는 일일 거다. 그런데 출장지에 정가제도 없고, 영수증은 다 손으로 쓴다면 어떨까. 정말 헬게이트 열린다. 그리고 내 출장지가 딱 그랬다.
대부분의 저개발국에서는 신용 카드 사용이 쉽지 않고 수기 영수증이 많다. 이럴 때는 수기 영수증의 부족한 증빙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로 신분증 사진, 물건 사진, 인건비를 받은 사람의 사진과 자필 서명,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의 서명 등 챙겨야 하는 것이 많다. 혹시 하나라도 잘못되거나 빼먹으면 귀국 후에 다시 가서 가져올 수도 없으니, 매일 정산이 맞는 지 밤마다 영수증과 잔돈 사이에서 씨름을 벌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탄자니아 출장 기간 내내 나는 외부 협력 기관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나는 입사한 지 한 달 차에 아프리카 초보. 우리 연구소에서는 나 하나 달랑 왔는데, 협력 기관 사람들은 셋, 넷, 다섯...... 너무 부담스럽다. 졸업한 대학원 이름에 아프리카가 들어가니 분명히 잘 해낼 거라며 날 덜렁 보내버린 교수님이 미웠다. 부담감을 실체화해서 무게로 달수 있었다면 분명 지구 내핵 어딘가에 이미 박혀있을 거다.
스펙터클한 2주가 이어졌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일 미팅을 하고, 매일 밤 돈 주머니가 무사한지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 문득 정신차려보니 나는 다시 공항에 서있었다. 탄자니아 출장이 끝난 것이다. 이제 말라위로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커다란 산을 하나 넘은 기분으로 기분 좋게 현지 직원과 작별하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수속 카운터에 미리 뽑았던 예약 프린트와 여권을 내고, 직원이 내 비행기 표를 조회하는 걸 보며 2주간의 탄자니아 출장을 회상했다.
부담스러웠던 출장의 반이 무사히 끝났고, 들고 다니는 내내 엄청 신경 쓰이던 출장비 주머니도 반 정도 가벼워졌다. 이제 말라위로 넘어가면 같은 회사 동료들과 일을 하게 되니 훨씬 더 편할 거다.
그러나 뿌듯하고, 기분 좋던 내 마음 상태는 표를 몇 번이나 확인하던 직원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와장창 무너졌다.
“말라위 가는 비행기가 6시간 지연됐어요.”
기분 좋게 붕 떠 있던 기분이 확 현실로 꿀려 왔다. 아프리카에 출장 와 놓고 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냐고 누군가 아주 얄밉게 비웃는 거 같기도 했다.
그때는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6시간을 어디서 기다리지. 수속을 못 했으니 공항 안으로는 못 들어가고, 앉을 수 있는 곳이라곤 공항 밖의 간의 의자 몇 줄이 다였다.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이 이미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날 내려주고 아직 도망치지 못한 현지 직원을 발견했다. 그 직원이 날 불쌍히 여겨준 덕분에 차에 구겨져서 6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겨우 겨우 버틴 6시간. 다시 터덜터덜 수속 카운터로 갔다. 다행히 또 지연됐다는 얘기는 없었다. 대신 이번에는 직항 비행기 표가 없단다. 원래 내 일정은 새벽 4시 쯤 말라위 행 직항 비행기를 타서 약 30분 정도 뒤에 말라위 릴롱웨에 내리는 거였다. 6시간이 늦어졌으니 오전 휴식 시간이 통으로 날아간 셈인데, 경유 비행기를 타면 오후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이게 오늘 말라위 릴롱웨로 넘어가는 유일한 표라니 별수 없지. 나는 항공사 직원이 건네는 표를 받았다. 음? 그런데 받고 보니 표가 너무 여러 장이다. 세상에, 환승을 무려 4번이나 해야 한단다! 전체 비행 시간도 대폭 늘어나 있었다. 30분짜리 일정은 어느새 중간 환승을 포함해 거의 18시간 가까이 걸리는 무시무시한 경유 표가 되어있었다. (이마저도 나중에 더 늘어났다.) 이제는 오후 일정이 문제가 아니다, 출장 일정 전체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힌데 카운터 직원을 보니 얼굴이 또 너무 해맑다. 화도 못 내겠다.
‘그래, 이 사람이 비행기 스케줄을 짠 것도 아니고, 이왕 벌어진 일 화내서 어쩌겠어. 이 나라의 항공 시스템은 우리나라랑 좀 다른가보지.’
상황을 다시 생각해봤다.
일정이 좀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출장비는 안전했고, 강도를 당한 것도 아니다. 2주간 죽어라 조사한 결과물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어디 다치지도 않았다. 출장비 증빙 영수증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올 때 타온 말라리아 약을 먹을 일도 없었다. 2주간의 출장은 잘 진행됐고, 나도 사지 멀쩡하다. 비행기가 안 뜬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늦게 도착한다는 것뿐이지. 좋아, 이 정도야 뭐.
자꾸 헛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마음은 좀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