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그만두게 하실 때

퇴사를 했습니다_01

by 빛탐


회사에 다니면서 무언가 끔찍하게 싫다는 생각은 자주 했지만, 사실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매우 안전지향적인 사람이고, 감정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다간 후회하게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들 회사 생활은 원래 그런 거라고도 했고,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해있던 곳이 최고의 회사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최악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냥 평범한, 모든 직장이 가지는 보편적 특성을 가지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감정도 평범한 직장인의 그것이라고 생각했고, 딱히 특별히 나만 더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매우 힘들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또한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이 나를 그만두게 몰아가셨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을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일을 그만두게 해 달라거나 새로운 직장을 찾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도 않았다. 주로 일이 많이 힘드니 문제 상황을 잘 해결해주길 구하는 기도와 마음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위로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 그런데 상황이 자꾸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만두는 쪽으로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너무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같은 기도를 거의 매일 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더 큰 일이 터진다. 삶은 당연히 풍랑 속 배처럼 흔들린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져서 ‘정말 일을 그만둬야 하나’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곧 일이 해결된다. 상황이 좋아졌으니 잔뜩 긴장한 마음도 풀리고 마음속에는 다시 ‘그만두긴 뭘 그만둬. 열심히 다녀야지. 내년 사업은 이렇게, 그다음은 이렇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마치 그 생각을 읽은 것처럼 더 큰 위기가 무섭게 들이닥친다. 계속 회사에 다니기로 마음먹은 상태이니 최선을 다해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위기는 더 커진다. 어느새 사태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커지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우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펑펑 울면서 ‘이게 뭐야. 진짜 그만둬야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마치 듣고 있었던 것처럼 갑자기 문제가 사라진다. 이런 일이 퇴사 전 거의 반년 동안 반복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내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매일 죽을 거 같아서 매일 기도했다. 당연히 인도하심이나 도우심을 기대했기에 혹시 하나님이 사인을 주시거나 일을 해결해주실 때 알아보고 싶어서 하나님을 향해 촉을 세우고 살았다. 그런데도 사태가 그 모양이었다.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터졌고, 그만둬야 하나 생각하면 문제가 끝났다.


처음엔 ‘설마’ 했다. 그냥 공교로운 우연이거나 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냥 문제가 해결될 때가 돼서 해결됐다고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면 바로 다시 일이 터졌다. 마치 ‘아니야’라고 대답하듯이. 그런 일을 한참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몇 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캐나다 하숙집을 떠날 때도 이랬다.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지만 나는 그 집을 떠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온갖 사건 사고가 몰아치며 나를 두들겨댔다. 처음엔 사소한 불편한 일이 생기더니 점점 짜증스러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고 곧 주인집 사람들과도 관계 문제가 생겼다. 물론 그때의 나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매우 안전지향적이었고 엉덩이가 무거웠으며, ‘다른 데도 다 이래. 어디 가 봐야 뭐 특별히 더 나은 것도 없어’ 같은,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의 양상도 비슷했다. 온갖 불편한 일이 이어지던 집에서는 결국 살인 미수 사건이 벌어졌고, 나를 제외한 다른 하숙생들은 다 짐을 싸서 떠났다. 그때도 나는 남았다. 집에 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울면서 버텼다. 쥐가 방에도 들어왔다. 점점 한계에 몰렸다. 쥐가 내 서랍을 휘젓고 다녔고, 방에서는 계속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한밤중에 내 책상 위를 돌아다니던 쥐를 발견하고서야 나는 항복 선언을 했다. 나는 그 집을 나왔다.


그 사건을 떠올리고 이번 사건에 대입해봤다. 매우 비슷했다. 그때도 나는 하숙집 문제를 두고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왜 해결해주지 않으시냐고, 왜 상황이 계속 힘들게만 변하냐고 많이 울기도 했다. 그 집을 나오고 나서야 하나님이 날 그 집에서 끄집어내셨다는 걸 알았다. 다른 글에도 썼지만 나오는 과정은 모든 게 너무 신기할 만큼 순식간에 해결됐다. 좋은 집, 좋은 동네, 좋은 룸메이트, 즐거운 시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하숙집 떠나던 일을 이번 일에 대입해봤다. 엄청 비슷했다. 그때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던 것부터 기분까지. 세상에. 하나님이 내가 회사를 그만두길 원하시나 봐. 아니, 왜? 나는 이직 준비도 하지 않았고, 어디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아니었고 회사에 불만이 많았던 것과 다르게 정말 퇴사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 뒤로도 ‘에이, 설마. 착각이겠지.’ 같은 생각으로 안일하게 상황에 대처하다가 두어 번 더 두들겨 맞고서야 기도의 내용이 달라졌다. “하나님. 알겠어요. 그만두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나가기 전까지 만이라도 별일 없이 있다 가게 해주세요.”


진짜로 저 기도 이후 내 회사 생활은 평탄해졌다. 이런 평탄함이라면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거냐고, 계속 다니면 안 되냐는 생각을 했다가 화들짝 놀라서 ‘아니에요. 그래도 그만둘 게요. 그러니까 문제는 더 필요 없어요.’ 하는 기도를 하게 될 만큼.


맡았던 일들을 다 끝내고, 인수인계를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마무리하고 정리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종업계 회사 어딘가로 바로 이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내 계획대로 안 됐다. 우선 퇴직 후 한동안 엄청 아팠다. 멋지게 퇴사 여행을 가겠다며 잡아놓은 여행 일정 내내 호텔에서 끙끙 앓았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몸을 추슬러야 했다.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일이 계속 커져서 지금은 퇴사 전 계획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삶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는데. 꿈꿨던 모습과 너무 많이 다르다. 정확히는 상상도 못 해봤다.


어릴 땐 꿈을 이루지 못하면 아주 슬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꿈을 이룬 뒤에 오히려 더 슬펐다. 내가 꿈꿔오던 것이 사실 전혀 찬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불합리의 톱니바퀴 속에서 부속품이 되어 가는 날 바라보면서 더 슬펐다.


그렇게 체념하고 시들어가던 나를 하나님이 끄집어내셨다.

왜 그러셨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삶을 흘러가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 삶은 아주 잘 가고 있는 거다. 그러니 내 삶도 아주 잘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