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했습니다_02
예전에 교회에서 들었던 말 중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기도하는 중에 벌어진 일은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반대로 기도도 안 했는데 일이 잘 풀릴 경우가 더 위험하다고.”
이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나는 딱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꿈으로 계시를 받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알며, 하나님이 내 삶에 섭리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1. 하나님은 내 삶에 섭리하시고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2. 나는 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들었다.
3. 고로 당연히 내 삶은 괜찮다.
나는 이런 단순 논리 체계 위에서 산다.
물론 ‘3. 고로 당연히 내 삶은 괜찮다’는 말이 삶에 아무 고난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일은 여전히 어렵고 인간관계도 쉽지 않다. 돈은 통장을 스쳐 가고 건강 문제도 늘 따라다닌다.
그래도 이 대전제가 있을 때 얼마나 든든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사실 저번에 하숙집을 나왔을 때는 나오고 나니 좋은 일만 펼쳐져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퇴사 후에는 딱히 삶에 꽃길이 펼쳐지지 않았다.
돈은 모자라고, 코로나는 난리고, 심지어 원고료는 몇백만 원을 떼이고,
열심히 번역 공부를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실도 없고.......
이럴 거면 굳이 왜 그만두게 하신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라는 책을 보게 됐다. 신기했다. 직장생활 할 때의 내 얘기가 거기 다 들어있었다. 그걸 보고서야 내가 그때 우울증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 분노가 가득 차는 것 같았고, 일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모니터에 욕을 읊조리고 있을 때가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고 눈물이 자주 났다. 회사 파티션 안에서 업무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고 있을 때가 많았다.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일을 겨우겨우 쳐냈다.
무엇보다 외모 관리에 너무 무신경해졌다. 단순히 잘 꾸미지 않았다 이런 게 아니고, 정말 씻기도 싫었다. 며칠씩 머리를 감지 않고 드라이 샴푸만 겨우 하고 출근할 때가 많았다. 옷도 신경 쓰지 못했다. 같은 옷을 계속 입고 출근하기도 했다. 당연히 화장도 거의 못 했다. 예전에는 여러 기능성 제품도 사용하고 온몸에 꼼꼼히 로션을 발랐는데 이때는 얼굴에 로션 하나 바르는 것도 힘들었다.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누워있거나 웹소설을 보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켜 놓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살이 계속 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막차 시간이 다 돼서 버스를 탔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조금 멀리 섰는데, 뛰기가 싫어서 걸어가서 차를 탔다. 그런데 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귀에 “쯧”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걸어왔다고 그러시는 줄 알고 바로 뒤로 돌아 기사님께 항의했다. “기사님 왜 혀를 차세요?” 기사님은 그런 적 없다고 했다. “방금 저한테 혀 차셨잖아요!” 기사님은 계속 그런 적 없다고 하셨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늦은 시간 버스 안은 조용했다. 내가 따지는 소리와 기사님의 그런 적 없다는 답변 소리만 울렸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 아까 일이 생각나 계속 기분이 나빴다. 아니 혀를 차 놓고 자꾸 아니라고만 하고 말이야. 나는 들었는데, 기사님은 계속 아니라고....... 순간 소름이 끼쳤다. 만약 정말 버스 기사님이 그런 적이 없으면? 나 혼자 이상한 소릴 듣고 괜히 기사님께 따져댄 거면? 그리고 설혹 기사님이 진짜 혀를 차셨다고 해도, 나는 원래 그런 걸 그렇게 따지고 드는 성격도 아니었다. 버스처럼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를 낸 적도 없었다. 방금 그건 누구지? 정말 내가 그랬단 말이야? 눈물이 핑 돌았다. 괜히 늦은 시간 힘들게 일하는 기사님한테 몹쓸 짓을 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해. 나 미친 건가? 정말 뭔가 이상한데. 뭔가 위험한 거 같아.
다음 날 여기저기 상담을 알아봤다. 너무 무서워서 상담을 받고 싶었는데, 기본 상담비가 시간당 10만 원이었다. 검사를 하게 되면 추가 비용이 든다고 했다. 상담도 한 번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몇 주씩 가야 한다고 했는데, 비용을 계산해보니 한 달 월급을 다 쏟아부어야 할 거 같았다. 결국 상담은 포기했다.
줄곧 그런 상태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들 그렇게 다니는 게 회사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가, 어쩌면 이래서 하나님이 나를 끄집어내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퇴사 후 태도도 몸 상태도 많이 변했다. 살도 빠졌고, 무기력증도 사라졌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이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했으니,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단순한 이유 하나, 하나를 다 모은 더 큰 뜻이 있으실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때 이래서 그러신 거구나’ 하고 다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의 이벤트들이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