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초여름이 조금씩 짙어지던 날, 나는 한 발레리나를 만났다.
그녀는 여러모로 백조를 떠올리게 했다.
백조. 물 위에 부드럽게 떠 있는 하얗고 아름다운 새. 호수 위에 앉은 그 우아한 생명체를 저도 모르게 바라보게 되듯, 나도 모르게 시선이 자꾸 그녀를 쫓는다. 움직이는 몸의 선, 응시하는 눈길, 까딱이는 손가락 끝. 분명 평범한 움직임인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백조는 또한 물 밑으로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다리로도 유명하다. 호수 위의 우아함과 그 아래의 치열함이 공존하는 모습 역시 발레리나의 삶과 많이 닮았다.
친구따라 갔는데 나만 하게 된 발레
지안. 올해로 스물일곱이 됐다는 그녀는 열 살 때 처음 발레를 접한 뒤 18년 동안 춤을 췄다.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면, 살아온 시간의 절반을 훌쩍 넘기고도 남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친구가 발레학원에 간다는 거예요. 같이 가게 해달라고 엄마를 졸랐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정작 그 친구는 얼마 안 가 그만두었는데 말이죠.”
처음엔 정말 별생각 없었다. 그냥 친구 보러 학원에 다녔을 뿐. 그때만 해도 제 삶에 발레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줄은 몰랐다며, 지안이 웃는다.
머지않아, 발레에 온 마음을 빼앗기게 된 날이 찾아왔다. 지안은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김주원 씨가 나왔던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였어요. 학원 등록하고 얼마 안 돼서 가족들과 발레를 보러 갔는데, 그 무대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아직도 기억나요. ‘아, 나 발레 해야겠다.’ 그때 다짐했어요.”
무대에 서고 싶다면 네 삶을 다오
그렇게 본격적으로 뛰어든 발레의 세계. 하지만 그곳은 마냥 아름답고 화려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끝없이 훈련하고 견디는 세계에 가까웠다.
아주 많은 것을 참고, 내어주며 버텨야 했다.
삶의 모든 요소가 발레를 중심으로 돌았다.
입시를 치를 땐 자는 시간만 겨우 내어 집에 왔고, 입시가 끝난 후에도 연습에만 매일 평균 5시간은 쏟아야 했다. 공연 리허설 기간이면 스케줄에 ‘대기 시간’이 붙으며 더 빡빡해진다. 몸 풀고 연습하며 리허설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출근 후 12시간을 훌쩍 넘기는 날도 많다.
발레를 업으로 하는 삶이 쉽지 않을 거란 건 각오하고 있었지만, 힘들고 무언가 견뎌야 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더 많았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발레단에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였어요. 계속 떨어졌거든요. 실패하고 좌절하는 순간이 이어지니 자존감이 바닥을 치더라고요. ‘아, 난 정말 안 되나 보다’ 싶기도 하고,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발레를 그만두겠다는 마음은 안 들었어요.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거절. 앞이 보이지 않는 날들. 기약 없는 낙담과 좌절.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어 계속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지안은 어떻게든 무대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불안했어요. 물론 힘들었고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쩌겠어요. 계속 오디션을 봐야죠. 다행히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중에 인천시티 발레단이라는 작은 발레단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거기서 무대에 설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무급이었지만, 그 자리도 귀했다. 그렇게라도 무대에 계속 올라가야 했다.
늘 선택 받아야 하는 삶
어린 발레리나가 막막한 하루하루를 견디며 성숙해지고 단단해지던 어느 날. 기적처럼 그날이 왔다.
국내 굴지의 발레단 객원 단원 합격.
당당히 무대 위 한 명의 무용수로 설 수 있게 된 날.
“입단 후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 오를 때 정말 감회가 새로웠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땐가, 발레 아카데미 소속으로 《호두까기 인형》 1막에서 ‘파티 소년’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날 절 응원하러 와 줬던 가족들이 이번에도 객석에 앉아있었어요. 정말 벅차고, 행복했습니다.”
입시를 위해 달렸던 10대, 내내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도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20대.
치열한 시기들을 넘어 마침내. 그녀는 국내에서 손꼽는 발레단에 합류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렇게 힘들게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꽃길만 펼쳐지면 좋으련만. 삶은 영 그렇지 않다.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선택’을 받아야 했다.
매번 선택받길 바라며 마음 졸이는 순간을 견뎠다.
“공연 캐스트가 발표될 때마다 떨려요. ‘혹시 내 이름이 들어있지 않을까’ 매번 기대하지만, 역할을 바로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어요. 그럴 때면 아무래도 실망하게 되지만,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이름은 대부분 괄호 처리되어 있거나 아래쪽에 쓰여 있다. 무대에 서는 걸 보장받지 못하는 언더(언더스터디: 메인 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되는 무용수, 여러 명의 군무진이 필요한 경우, 많으면 세 네 명 정도 미리 뽑아둔다)캐스트나 연습만 하는 캐스트일 때가 많다.
물론, 그러다가 캐스트가 변경되어 무대에 서게 될 때도 있다.
실제로 《춘향》 공연 때, 처음 발표됐던 그녀의 원래 역할은 엑스트라였다. 무대에 오르긴 하지만 춤을 추지는 않는 포지션. 하지만 공연에 설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연습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존 단원이 이탈하게 됐고, 지안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때 진짜 열심히 연습했어요. 정말 열심히 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포함해서 다섯 번 언더 캐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거 같아요. 그중에 콜업이 돼서 무대에 선 건 세 번 정도네요. 사실 흔한 경우는 아닌데, 코로나 때문에 발레단 상황이 계속 바뀌기도 했고, 발레단 인원도 줄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매번 최선을 다해 연습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원래 캐스팅됐던 무용수가 부상을 당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면,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게 기쁘면서도 남의 불행을 틈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다. 무용수들끼리 서로 다 아는 처지라 마음과 입장이 복잡해진다.
어렵게 겨우 얻은 자리를 피치 못하게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 정도 연습도, 공연도 전혀 할 수 없던 시기가 있었어요. 회복 후 돌아와 보니, 원래 제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더군요. 그 자리는 그대로 그 무용수가 계속하게 됐어요. 그때도 참 마음이 힘들었어요. 이런 일이 빈번합니다.”
무대에 오를 기회는 너무 귀해서, 때로 겨우 받은 자리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다.
“군무 그룹 수가 줄어서 제 자리가 없어진 적이 있어요. 출근하러 걸어가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떻게든 멈춰보려 했는데 울음이 끝도 없이 터져서, 멈출 수 없었어요.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모든 발레리나가 이 과정을 겪고 있거나, 겪었을 거예요.”
계속 선택당해야 하는 어려움.
그 선택이 단장이나 예술 감독 등 사람의 주관적 선택이기에 더욱 어렵다.
“비정규직 직장인과 비슷해요. 발레단 사람들도 다 1년, 짧으면 6개월 단위로 계약합니다. 종신 계약은 없고. 무대에 서도 객원은 무급인 경우가 많아요.”
아름답고 혹독한 세계를 견디는 법
그럼에도 그녀가 계속 무대를 꿈꾸는 건 그 위에 설 때만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 때문이다.
“많은 분이 잘 모르시지만, 무대 위에서 보는 무대와 무용수들의 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떨 땐 객석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멋져 보일 때가 있어요.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무용수들의 특권 같아요.”
무용수들이 공연 중 객석을 볼 것 같지만 사실 무용수들도 무대를 본다. 무대는 밝고 객석은 어둡기 때문에 무대에서 객석을 봐 봐야 객석 앞쪽 일부가 살짝 보일 뿐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배경이 되는 객석이 어둡기 때문에 무용수의 실루엣이 더 선명해서 움직임이 참 아름답게 보여요. 몸의 선이 정말 예쁘게 나오죠. 무대 배경과 함께 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예요.”
중요 역할을 맡은 여자 무용수가 연속으로 푸에테(한 발로 도는 고난이도 동작)를 하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다. 객석에서 보면 그냥 ‘어려운 동작, 화려한 동작을 하는구나’ 싶겠지만, 무대에 서 있는 무용수들에게는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인다.
“객석을 배경으로 푸에테를 도는 모습, 그 원을 따라 비산하는 땀방울, 팽팽하게 움직이는 근육. 그런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아름다운데 동시에 놀라워요. 캄캄하고, 아무 초점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계속 회전을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환한 연습실에서야 다들 할 수 있지만 무대는 달라요. 도는 내내 바라봐야 하는 객석은 어둡고, 그럼 초점을 잡을 수가 없잖아요. 딱 한 곳을 보면서 회전해야 덜 어지럽고 집중할 수 있는데, 어둠을 배경으로 그걸 해내는 모습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게 공연을 마치면, 마지막에는 커튼콜이 기다린다.
커튼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찬사의 표현으로 환성과 박수를 계속 보내어 무대 뒤로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오게 불러내는 일.
무대에 서는 무용수에게 커튼콜은 보상과도 같다. 견뎌낸 시간과 흘린 땀, 한계까지 몰아치던 연습에 대한 다디단 보상.
무대 위에 오르던 날, 지안도 무용수들 사이에 서서 이 커튼콜을 받았다. 공연이 끝난 뒤 들려오는 박수 소리. 맨 처음 그 소리를 듣던 날을 지안은 잊지 못한다. 감동, 뿌듯함, 기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첫 커튼콜이었어요. 그 소리에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드디어 내가 여기에 섰구나. 이 발레단 소속으로 관객들께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됐구나!”
무대에 서서 관객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다. 그건 정식 무용수로서, 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춤을 선보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엑스트라는 커튼콜에 나올 수 없어요. 춤을 춰야만 관객들께 인사드리러 나올 수 있거든요. 커튼콜은 무용수에게 정말 큰 의미예요. 그 박수와 환호 소리가 좋아서 다음에도 꼭 나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후회하지 않아요
그녀에게 혹시 발레를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단박에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는데, 역시 후회가 되진 않습니다. 분명 힘들었지만, 가치 있는 시간이었어요. 얻은 것도 많고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계속 견뎌야 했지만, 덕분에 견디는 힘이 엄청 강해졌어요. 그렇게 춤도 내면도 더 성숙해지더라고요.”
행복하게 춤을 추고 싶고, 그런 자신의 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지안. 그녀는 발레를 자신의 ‘기둥’이라고 표현한다.
“저를 나무로 비유하면, 발레는 거대한 몸통 줄기예요.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가장 큰 부분이죠. 발레를 그만둔다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어떤 모양이 되었든 춤의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려 합니다.”
화려한 무대 아래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선택받음에 대한 갈망, 두려움, 끝없는 연습과 부상의 위험, 막막한 마음.
끌어안고 버티며 오늘도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친다.
그리고 마침내 오른 무대 위에서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춤.
국내 굴지의 발레단 소속 발레리나.
정단원이 되는 것이 현재 가장 간절한 소망인 객원 단원.
언더 캐스트 자리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무대를 기다리는 무용수.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버둥치는 스물일곱 청년.
백조를 닮은 발레리나는 끊임없이 발버둥 처야 하는 시간들을 자신의 삶으로 품었다.
연두색 어린 잎이 기꺼이 짙은 여름을 향해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