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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Oct 21. 2023

퇴사하고 사업합니다 - 괜찮아요, 전 용감하니까

커스텀 벌룬 아티스트, 해미


태풍이 지나간 자리. 순간의 죽음 같은 비바람이 지나간 곳에 검은 물웅덩이가 가득하다. 거센 비바람에 정신없이 흔들린 꽃대 끝에는 눈물 같은 물방울이 달렸다. 물에 푹 젖은 줄기가 무거워서, 고개 숙인 얼굴이 조그맣게 숨을 고른다.    

 

그러나 결국 보라. 폭풍은 꽃을 꺾어내지 못했다. 온몸으로 흔들리면서도 악착같이 흙을 움켜쥐며 버티던 존재는 결국 살아남았다. 잎이 끊어진 자리에 새순을 내고, 강하게 땅을 움켜쥔 뿌리를 바탕으로 꽃대를 뽑아내며.      


폭풍을 이겨낸 꽃은 이제 생명력 가득한 태양을 향해 꽃망울을 틔운다.          






풍선 만드는 사람


“저는 풍선을 만들어요.”     

해미가 자신을 소개하며 가장 먼저 한 말이다.      


커스텀벌룬 아티스트. 해미의 직업이다. 

각종 이벤트에 사용하는 특별한 풍선을 제작, 판매한다.     


“흔히 풍선이라고 하면 둥근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 종류가 정말 다양해요. 여러 디자인의 풍선을 예쁘게, 그리고 고객 요청에 맞게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을 합니다.”     


해미의 작품은 누군가의 생일, 기념일, 프러포즈, 아이 첫돌이나 백일 같은 특별한 날을 더욱 반짝이게 만든다. 특별한 날을 빛내는 선물인 만큼, 제작 과정에도 정성과 세심함이 필요하다. 맞춤 제작인 만큼 주문자의 요청과 이벤트 특성에 꼭 맞는 섬세함과 꼼꼼함은 필수다.     


해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평소에 틈틈이 여러 풍선 디자인과 트렌드를 공부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샘플을 선보이려 노력한다.     


“풍선은 유행을 많이 타거든요. 그래서 늘 트렌드를 예민하게 지켜봅니다. 동시에 저만 만들 수 있는, 개성 있고 예쁜 풍선을 만들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요.”          






눈물과 두려움의 터널을 통과할 때


해미가 원래부터 이렇게 풍선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다. 사실, 풍선을 만들며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다.     


“원래는 풍선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어요. 중국어를 전공했고, 유학을 다녀온 뒤 의료 통역, 해외 마케팅 등 중국어 관련 일을 꾸준히 했습니다.”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앞으로도 걸어가리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삶은 늘 예측 불가. 

해미의 삶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5년 전,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정말 감당 못 할 큰일이 생겼고, 여파가 한동안 이어질 때였습니다. 가족과 계속 떨어져 있어야 했고, 정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어요. 그때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습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겨우 문제 하나가 해결됐다 싶으면 다시 또 하나, 그걸 헤쳐 나왔나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해미를 가로막았다. 겨우 하루를 견뎌내도 이어지는 하루가 또 막막하여, 종종 마음이 끝없이 아득해지곤 했다.     


감당하기 벅찬 날들이 계속되니 결국 몸이 바스러져 내렸다. 하혈이 계속됐다. 2~3주씩 피가 멈추지 않았다. 겨우 좀 나아졌나 싶다가도 또 피가 비추길 반복했다. 병원에 가도 차도가 없었다.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책임져야 할 일은 늘어만 갔다. 업무는 끔찍한 상황으로 치닫고, 관계는 신경을 갉아 먹었다.       


아이 문제도 마음을 힘들게 했다. 임신을 두고 해미 부부는 서로 생각이 달랐다.     


“아이를 갖지 못할까 봐 두렵고 조급했어요. 저는 아이를 가지고 싶었는데, 배우자는 당시 아이를 원하지 않았거든요. 서로 합의가 되어야 아이를 가질 수 있기에 서로 생각을 맞추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과 인내, 기도가 필요했어요.”      


해미는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렸다. 감당하기 벅차 눈물이 터지는 상황도,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 관계도 그 마음을 꺾지 못했다.          






삶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를 때


온갖 파도가 몰아치는 시간을 참고, 삼키고, 때로 울며 버티길 얼마간. 시간도 마음도 한참 묵고 나서야, 해미는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터널의 끝에 도달했다. 삶을 으깨버릴 기세로 몰아치던 어려움들이 조금씩, 조금씩 사그라져 갔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가 생겼다.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해미는 기쁘게 새 생명을 반겼다.      


회사에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회사는 정말 바쁘게 돌아갔고, 해미는 맡은 일이 잔뜩 쌓여있는 팀장이었지만, 최소 몇 달이라도, 이 귀한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미는 잠시 일터를 떠났다. 정말 ‘잠시’일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다시 한번 예상 못 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출산 직후, 코로나가 터졌다. 그리고 해미의 직장에도 그 불똥이 튀었다.      


“제가 있던 부서의 주 업무는 중국 쪽 해외 마케팅이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일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됐습니다.”     


회사 경영에 심각한 타격이 생기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하나둘 정리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과연 복귀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휴직 기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 해미는 회사 이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사님은 중국어 담당 파트를, 팀장인 저만 빼고 모두 내보낼 계획이라고 하셨어요. 순간 마음이 정말 복잡했습니다. 직원들이 모두 나가게 됐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고, 그 많은 직원이 하던 일을 저 혼자 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모두 떠난 자리에 혼자 남는다는 죄책감만큼, 그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업무 특성상 해외 마케팅팀은 야근도 해외 출장도 잦다. 돌도 못 넘긴 아이를 두고 복직해야 하는데, 팀원들이 모두 빠진 상태에서 그 무거운 업무를 혼자 담당하며 육아와 병행할 수 있을까?

      

해미는 아주 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아이 어린이집 대기 번호가 입학 가능권에서 아득하게 멀다는 점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사업을 한다고네가?


기왕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거, 육아만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오래지 않아, 해미는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챘다. 내내 일을 해왔던 삶은 갑자기 찾아온 ‘업무 없는’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엄청난 우울감이 찾아왔다.      


“무능해진 느낌이었어요. 나는 내내 집에 있고, 아이는 말도 안 통하고, 육아는 힘들고.”     


이대로는 안 돼. 뭐라도 해야 했다. 

우울에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움에, 해미는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뭘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돌봐야 하니 회사처럼 하루 종일 얽매이는 일은 불가능했다. 아이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풍선 제작에 관해 알게 됐다. 한창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을 때였다.     


“원래 풍선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겁이 많아서 풍선 터지는 소리를 무서워하거든요. 그 소리가 너무 무섭고 싫었는데, 풍선 일을 하게 되다니. 상상도 못 했습니다.”     


풍선을 무서워하고, 풍선과 상관없는 일을 해왔던 해미. 


그래도 달려들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구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절박함으로, 해미는 눈앞에 보이는 새로운 선택지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막상 시작해 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여전히 풍선이 터지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만들고 나면 너무 예쁘고, 주변에 선물했더니 다들 좋아해서 저도 행복하고요.”      


어느새 해미는 풍선 만지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점점 취급하는 풍선 종류도 늘어갔다.     


“가족들이 많이 놀랐어요. 다들 ‘사업을 한다고? 네가? 풍선을?’이라고 하면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렇게 들어선 길 위에서, 해미는 움츠러들지도 걱정에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본인도 놀랄 만큼 저돌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스스로는 많이 주저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실제 제 모습은 그렇지 않았던 거 같아요. 사업 시작하면서도 ‘실패하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저 설렜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진짜 용기 있었네요. 엄청 도전적이에요.”     


수많은 어려움, 눈물, 한숨, 고민과 결정의 시간을 통과하며. 해미는 어느새 놀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존재 자체를 녹여버릴 듯 뜨겁던 시간을 버티니, 처음과는 다른 모습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불을 통과한 금석처럼.           






도전의 길

맨땅에 헤딩하듯 도전한 풍선 사업. 그 첫 작품을 해미는 아직도 기억한다.      


“파스텔 컬러의 풍선이었어요. 아직 회사 로고도 없었고, 임시 오픈 상태로 SNS에 사진을 좀 올려놓은 게 다였는데, 그걸 보고 주문이 들어온 거예요. 처음에는 ‘이게 주문이 맞나?’ ‘진짜 주문이 들어온 건가?’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 첫 풍선을 만들어 보낼 때 서비스를 얼마나 많이 넣어드렸나 몰라요. 거의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지경이었지만, 기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때 이 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풍선 판매가 늘수록 좋은 후기들이 쌓여갔다.     

해미는 첫 후기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내를 위해 풍선을 주문한 남편이었는데, 결혼 10주년 이벤트를 하신다고 디자인과 문구, 폰트를 아주 꼼꼼하게 확인해서 주문하셨던 기억이 나요. 보내드린 풍선으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셨다고 후기를 남겨주셨는데, 아내가 엄청 만족하셨다고 하셔서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녀는 일을 하며 가장 기쁠 때로 ‘피드백이 좋을 때’를 꼽았다.      


“만족한다, 너무너무 예쁘다. 그런 피드백을 받을 때면 이 일 하기를 잘했다고 느껴요. 한번은 풍선이 너무 맘에 드신다며, 제가 ‘이 동네에서 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 해주신 분도 계셨는데 그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마음 따뜻해지는 주문도 있었다.      


손자 첫돌을 맞아 할머니가 주문하는 풍선이었는데, 풍선 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사랑한다’고 적어달라는 주문이었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해미의 마음을 오래 울렸다.     


물론 일이 힘들 때도 있다.      


“풍선도 시즌이 있어요. 가정의 달인 5월이 특히 바쁘고, 연말 크리스마스 전도 많이 바쁩니다. 그때는 한순간에 주문이 몰아닥치는데, 정말 정신이 없더라고요. 하루에 2~3시간 겨우 자면서 주문 받은 풍선을 만들어 보냈어요. 며칠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바빴는데, 그렇게 극단적으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나면 너무 지쳐서 한동안 풍선 쳐다보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직업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해미는 이 일의 최대 장점으로 “얽매이지 않음”을 꼽았다.      


“일이 바쁠 때는 정말 정신없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적절히 병행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오전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집안일하고 아이도 봐야 하거든요. 회사처럼 일해야 하는 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딱 정해져 있었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제게 주어진 다른 일들을 책임지면서 이 일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해미는 자신을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평했다.    


“몰랐는데 요즘 저 자신이 꽤 생활력 강한 사람이라는 걸 느껴요. 환경이 맞으면 그냥 하는 편이거든요. 웬만한 상황은 잘 웃어넘기고, 사람들 말도 잘 들어주는 편이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활발하고 긍정적이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많은 상처와 우울을 넘었다.     


“한때는 많이 우울했고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어요. 그리고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몰랐으면 했습니다. 밖에서는 밝고 쾌활하고 활달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공허했죠. 다행히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신앙이 힘이 됐고, 유학이나 사회생활, 결혼 후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많이 치유된 것 같아요.”      


해미는 그동안의 시간이, 그 모든 시간을 이루던 경험과 만남이 자신을 치유하고, 고치고, 성장시켰다고 말한다.     


“만약 5년 전의 제게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암담하고 막막하던 문제들도 결국 다 잘 해결될 거라고요. 사랑스러운 아이도 꼭 찾아올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고 싶어요.”     


두려움과 걱정으로 몸을 떠는 오늘. 불확실한 내일. 그리고 답이 보이지 않는 미래, 

그 길을 때론 울며, 때론 넘어지며 걸어온 청년의 마음은 이제 조금 더 단단해졌다.      


“저는 이제 실패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잘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말은 실패할지 안 할지도 모른다는 말과 같거든요. 그러니 먼저 실패를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건 어쩌면 일종의 낭비일지도 몰라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실패와 새로운 시도 앞에 고민하는 사람들. 특히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해 보는 청년들에게 해미는 실패를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너무 많은 걱정을 미리 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때면 언제든 ‘이 일이 얼마나 잘될지’에 대해서 상상합니다. 지금은 주문량이 많지 않지만, 앞으로 주문도 늘어나고, 사업도 잘되리라 상상해요. 주문이 늘고, 공방도 내고 클래스를 열고 수강생을 받는 상상을 거의 매일 합니다. 물론 분명 힘든 순간이 오겠죠. 늘 승승장구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언제가 제게 적합한 길이 열릴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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