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0년차 경찰, 수창
여름 하늘이 비구름으로 흐렸다가, 구름을 미는 바람 덕에 또 푸르렀다가.
옅은 햇살과 흩뿌리듯 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커가는 생명이 한 움 한 움 싱그럽다.
봄부터 뻗어 나온 잎이 어느새 단단하고 짙어지던 날.
수많은 삶이 교차하는 일상의 한복판에서, 새벽이슬처럼 반짝이는 청년 경찰을 만났다.
어릴 적 경찰에 관한 이미지는 막연히 ‘멋있다’ 정도였다. 매체로 많이 접하는, 뭔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제 조금 무서운.
수창이 경찰을 직업으로 인식하게 된 건 그 뒤로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 20대 초반 의경으로 근무하면서였다.
“경찰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그때에서야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어요.”
이런 직업이 있구나. 막연하던 이미지에 구체적인 정보가 더해졌다. 수창의 마음 한편,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까.
여느 청년이 그렇듯 수창도 진로를 두고 고민했다.
수창은 운동하길 즐겼다. 활발히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있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냥 원하는 데로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오늘도 현실은 눈앞에 생생히 살아 있었고, 수창은 삶을 꾸려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가 뭘까.
여러 직업군을 고려하고, 고민하던 어느 날. 문득 의무 경찰 시절이 떠올랐다.
경찰의 삶은 아무래도 단순 사무직보다는 활동적이다.
순찰도 해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현장에도 나가니까.
또한 직업적 안정성도 높았다.
활동적인, 삶을 꾸릴 수 있게 해줄, 그래서 어쩌면...... 내가 잘할 수 있을 일.
경찰. 경찰관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주변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체육 대학을 졸업한 수창에게는 경찰이 된 선배가 많았다.
고민 끝에 수창은 경찰 시험에 도전했다. 물론 수험 기간이 쉽지는 않았다.
공부는 힘들었고, 이미 취직해서 돈 벌기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 뒤처진 기분에 힘들었다.
“공무원 시험이라는 게 붙으면 좋지만 떨어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요.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나 불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느낌이었어요.”
공부는 어렵고, 마음은 불안하고. 수험생활을 시작하긴 했는데, 이 끝이 어딜까.
혹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계속 시험을 봐야 하나?
답을 알 수 없는 질문과 불안을 수없이 삼키고 또 삼키는 날이 계속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힘들고 마음이 번잡할 때면 더 공부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집중하면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어 답답한 걱정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는 날이 쌓여서 어느새 일 년.
수창은 드디어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터널의 끝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경찰이 되었다.
“합격하고 경찰이 되었을 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막상 출근을 앞두니 긴장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두 시간 겨우 자고 잔뜩 굳은 채 들어간 첫 출근 날.
그날 수창은 경찰서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끝도 없이 인사했다.
“처음이니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무조건 인사라도 잘하자고 생각했어요. 하루에 똑같은 분을 열 번 보면 열 번 인사했습니다. 그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서 주변 분들이 지금도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요.”
일을 할수록 감회가 새로웠다.
업무하며 마주치는 모든 순간마다 ‘아, 내가 경찰관이구나!’ 실감했다.
“순찰차를 타고 순찰할 때, 아이들이 인사해 줄 때, 기분이 정말 새로웠습니다. 신고받아 나가서 사건 처리를 했을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고맙다고 해줄 때 참 뿌듯했어요.”
수창은 지구대 파출소에서 근무한다.
지구대 경찰은 사람들이 112에 신고할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출동해서 신고자를 만나고 상황 해결을 도와드리거나 현행범을 검거하기도 합니다. 모든 경찰 업무의 초동 조치를 하는 부서가 지구대입니다.”
그는 일하며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일하면서, 생각보다 실종 신고가 너무 많아서 놀랐습니다. 치매를 앓는 분이나, 노인 실종 신고가 하루 한 번꼴로 들어와요. 그런 분들을 찾아서 가족에게 인계할 때 참 뿌듯합니다.”
물론, 아슬아슬한 상황을 마주할 때도 많다.
“자살 시도자 수가 적지 않은 편입니다. 자해하는 경우도 있고요. 한번은 옥상에서 떨어지겠다고 앉아있던 분이 계셨어요. 그 사람을 말로 잘 설득해서 내려오게 해야 했죠.”
경찰관이 된 청년의 일터는 평범한 또래 친구들의 그것보다 조금 더 적나라했다.
그곳에서 수창은 현실의 가장 약한 고리,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 얇은 선 위에서 당장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사람들을 마주했다.
“‘한쪽 다리라도 이쪽으로 걸치셔라’라고도 해보고, 예민한 대상자와 계속 얘기하며 어떻게든 설득해 내려오게 하려는데 끝까지 안 내려오더라고요.”
이제 갓 경찰 이름표를 단 스물여덟 청년의 두 손만으로는 그 모든 위기와 절박함을 다 막을 수도, 고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당장 오늘, 눈앞의 한 사람만이라도. 수창은 그들의 손을 잡아 어떻게든 다시 삶으로 끌어 올려 보려 애썼다.
“방법이 없나 많이 걱정됐는데, 그때 그분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좋은 기회다 싶어 담배를 구해 주며 확 잡아채 당겼죠. 그렇게 병원에 인계하고 나오는데, 그때 이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일을 제가 하고 있다는 게 정말 보람찼어요.”
다행히도, 그리고 기적같이. 작은 청년의 온 삶을 담은 고군분투는 그날 한 생명을 구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늘 기쁜 순간만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어려움이 더 많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제가 낯가림이 좀 있는 편이라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물론 일할 때는 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 자체의 어려움도 있다. 무엇보다, 슬픈 순간을 봐야 할 때가 너무 많다.
“사람이 많이 죽어요. 특히 노인분들, 병 있는 어르신들이요. 2~3일에 한 분꼴로 돌아가십니다. 아버지가 숨을 안 쉰다, 어머니가 숨을 안 쉰다는 신고가 많이 들어옵니다.”
이런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관은 현장을 찾아가 돌아가신 분의 인적 사항을 파악해야 한다. 또한 평소 어떤 지병이 있었는지, 방금까지 뭘 하고 계셨는지 등등 고인에 관해 세세하게 묻는다.
“방금 부모님 돌아가신 유가족에게, 그 자리에서 그런 걸 물어봐야 하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게 처음에는 참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신고가 많은 상태면 또 빨리 처리하고 가야 하거든요, 그런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수면 패턴이 계속 변하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다.
업무 특성상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데 주간, 야간, 휴무, 비번이 계속 돌아간다.
“하루 근무가 12시간 반 정도 되는데, 이걸 아침 7시에서 저녁 7시 반까지 했다가, 그다음 날은 저녁 7시 반에 출근해서 다음 날 아침 7시 반에 퇴근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업무 시간이 계속 바뀌어요. 야간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해서 잠을 너무 많이 자면 저녁에 잠을 못 잡니다. 그러면 돌아오는 주간 근무 때 잠이 안 오거든요.”
계속 바뀌는 근무 시간과 나흘에 한 번씩 오는 밤샘. 수창은 이런 수면 패턴에 아직 잘 적응이 안 됐다며 웃었다. 다른 경찰관 중에 “수면 패턴 문제로 수면제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말하는 수창의 얼굴에 옅은 걱정의 빛이 보인다.
마음이 힘든 일도 많다.
“악성 민원인이나 욕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고, 특히 밤에 술에 취해서 욕하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뭐야 이 짭새 새끼야’라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수창은 감정을 흘려보내려 노력한다.
“힘든 일을 마음에 묻어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편입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 말 들어도 ‘나한테 욕하는 거 아닌가 보다’하며 흘리고 그냥 업무 처리합니다. 일일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 모든 순간을 겪으며, 청년은 경찰이 되어갔다.
수창은 스스로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런 성격이 직업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경찰은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 같아요. 경찰관들 자살률도 높고, 정신과도 많이 다닙니다. 경찰로 살려면, 긍정적이지 않으면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다행히 긍정적인 편입니다. 경찰이 된 뒤 항상 긍정적으로 살려고 더 노력 중입니다”
그는 또한, 자신을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경찰관이 된 후 이런 특성이 좀 더 강화된 것 같아요. 남들보다 조금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게 되더군요. 아무래도 남들보다 법을 더 잘 지켜야 하는 사람이니, 바르게 살려고 더 노력하게 됩니다.”
인생을 좀 더 바르게 살게 된다는 점에서, 수창은 이를 경찰관이 된 “장점”이라고 말했다.
긍정적이면서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청년에게, 삶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대학에 가겠다고 다짐하고 결국 목표를 이뤘던 순간”을 꼽았다.
조금 평범한 답변이다. 대학에 가겠다는 결심이 왜 그에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된 것일까? 수창은 그 경험이 자기 확신의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어릴 때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고, 방황하게 되면서 공부를 오래 놓았거든요. 그러다 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더니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있었어요. 그 경험이 중요한 순간마다 힘이 됩니다. 목표를 이뤘던 한 번의 경험이 지금까지 모든 일을 할 때 원동력이 됐어요. 어려운 일도 ‘나는 한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경찰 시험을 준비할 때도 이런 확신으로 공부한 덕에 합격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수창은 요즘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아무래도 경찰은 말을 잘해야 하는 직업인데 제가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게 왜 안 되는지, 이 일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무언가 설명하고 상대편을 이해시켜야 하는 순간이 많은데 설명을 잘 못하니 얼버무리게 되더라고요. 선배들 조언으로는 제가 아는 게 많아야 말을 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업무나 관련된 걸 더 공부하며 극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퍽 건실하고 다정하다.
스물여덟 살. 새내기 경찰 청년. 수창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아늑하고 평안한 보금자리를 꾸리고 싶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행복합니다. 어릴 때 가족과 친하게 지내지 못해서 화목하고 친구 같은 가족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직업적 목표는 건강하게 정년까지 이 일을 하는 겁니다.”
초보 경찰관의 소망은 소박하고 충실했다.
물론 이 모든 소망을 이루려면 당장 시보 기간을 무사히 마쳐야 한다.
“올해 12월이 지나면 시보 기간 1년이 다 됩니다. 그 기간을 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잘 마무리하면서 업무적 능력도 잘 키우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