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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Jun 14. 2023

프로 퇴사러가 된 워킹맘- 새로운 나를 찾아 갑니다

어쩌다 프로 퇴사러 - 엄마가 된 청년, 승희



옅은 비구름이 여름 해를 가려주던 날. 습한 공기 가득 계절의 향이 배었다. 완연한 여름.

언덕이 구불구불 이어지던 동네에서, 두 번째 인터뷰이를 만났다.      


37세. 어쩌다 보니 프로 퇴사러가 됐다는, 승희다.






해외 업무를 꿈꾸던 청년


대학생 승희의 첫 일터는 외교부 북미과의 행정 인턴 자리였다. “어릴 때는 막연히 외교관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그녀의 눈은 늘 해외로 향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해외에 나가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어요.”      


직장을 구할 때도 이런 마음이 듬뿍 반영됐다. 승희는 국제개발 NGO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5년간 해외결연과 해외사업 업무를 다뤘다. 일은 만족스러웠다. 적성에도 맞고 잘하는 일. 앞으로도 자기 삶이 ‘국제개발 해외사업부’ 같은 곳을 중심으로 흘러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을 더 전문적으로 잘하고 싶어서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예측 불가. 삶의 방향이 예상치 못하게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승희의 경우는 결혼이 전환점이었다. 스물일곱. 또래에 비해 조금은 이른 나이에 기혼자가 되었다. 얼핏 보면 결혼 후에도 삶은 예전처럼 흘러가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출근하고, 대학원 공부도 해나가는 하루하루. 하지만 삶의 수면 아래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어요.”     


그녀는 아이를 원했다.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온 힘을 다해 달려왔던 ‘일하는 사람 윤승희’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몰아치는 업무, 야근, 해외 출장,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평일 주말 없이 늘 바쁘던 삶. 그 속에서 버티며 쌓아왔던 기억, 경력, 가능성, 익숙한 미래를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날이 반복되니 피곤한 몸만큼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잠시 한 가지를 내려놓기로 했다. 승희는 아이를 선택했다. 그렇게 바라던 해외 파견 후보자 명단에 그녀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였다. 첫 번째 퇴사였다.     


그리고 퇴사 3개월 만에 아이가 생겼다.     






프로 퇴사러


아이가 생겼으니 다시 일하고 싶었다. 승희는 임신 기간에도 일할 곳을 찾았다. 지인 소개로 작은 여행사를 알게 됐고, 여행사 측에서도 영어에 능통한 승희를 반겼다. 하지만 곧 출산을 앞둔 상황. 여행사 측은 육아휴직을 보장하겠다며 승희에게 정규직으로 일해주길 요청했다.


월급은 원래 받던 것보다 많이 적었지만, 승희는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육아휴직 조건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할 수 있는 삶. 그녀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언젠가 다시 국제개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소망하며 만삭의 상태로 대학원도 졸업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출산일이 다가왔고, 승희는 육아 휴직 처리 요청 후 회사를 떠났다. 아이를 낳고 얼마 뒤, 그녀는 자신의 건강보험 상태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뜻밖의 결과가 드러났다. 자신이 육아 휴직 상태가 아니라 퇴사 처리되어 있었다. 육아휴직을 약속했던 여행사가 승희에게 말도 없이 그녀를 퇴사 처리한 것이다.


승희는 부당함에 저항했다. 고용노동부에 진정도 하고, 산후조리도 채 못해 퉁퉁 부은 얼굴로 여행사 사장, 근로감독관과 삼자대면도 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 끝에 겨우 일부 보상을 받았지만, 그녀의 일터는 사라졌다. 그렇게 원치 않게 또 백수가 되었다. 두 번째 퇴사다.

     





아이가 돌이 될 즈음 국제개발 일을 하는 스타트업 NGO에서 해외사업 팀장으로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다행히 단축 근무나 탄력 근무가 가능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아이를 돌보면서 다닐 수 있는 귀한 일터였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승희는 바로 새로운 일터로 출근했다.


그렇게 워킹맘의 세계가 시작됐다. 아이를 키우며 일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의 업무 시간을 고려해서 아프지 않았고, 업무 중에도 아이를 챙기기 위해 짬을 내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야 했다.      


“아빠, 혹시 지금 00 좀 데려와 줄 수 있어요?”

“선생님, 저 00 엄만데요, 00 아직도 열 안 떨어졌나요?”

“엄마, 이따 00 잠깐만 봐줄 수 있어?”     


어쩌다 해외 출장이라도 잡히면 남편은 물론이고 시어머니, 친정 부모님까지 양가 식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일정을 맞추느라 끙끙거려야 했다. 그러다 둘째가 생겼다. 다행히 육아 휴직은 됐지만, 일손 부족한 스타트업 NGO는 해외사업 팀장의 공백에 비명을 질렀다. 승희는 돌도 안 된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툭하면 확진자가 발생하고 하교 조치가 이어졌어요. 아이를 혼자 집에 둘 수 없으니 결국 누군가 집에 가야 했죠. 남편이랑 돌아가며 휴가도 써보고, 재택근무도 해봤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육아휴직을 쓰고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렸지만 휴직 기간이 다 끝날 때까지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때 정말 우울했어요. 육아와 일을 다 하라면 결국 친정엄마를 희생시키는 방법밖에 없는 걸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엄마, 나 커리어 유지하고 싶으니까 내 애 좀 봐줘’라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결국 제 아이는 제가 돌봐야 했고, 아이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퇴사. 해외 업무를 꿈꾸던 청년은 그렇게 ‘프로 퇴사러’가 되었다.      






새로운 를 만나러 가는 길


청년은 엄마로서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삶을 결코 ‘안타깝고, 슬프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내포하는’ 무언가로 정의하지 않았다. 승희는 자신이 성장을 위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여겼다.     


“엄마가 되었다고 갑자기 청년이었던 제가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뿐이죠. 여전히 제 특성과 흥미와 꿈은 변함이 없지만, 거기에 아주 다양한 새로움이 붙는 거예요. 새로운 고민, 낯선 시간을 마주하고, 예전이라면 전혀 안 할 것 같은 결정을 내려 보며, 적응하고 성장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버겁지만, 확실히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터져 나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승희는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시각, 마주하는 새로운 세상을 받침 삼아 보고, 배우고, 느끼며 더 성장해 나갔다.


“아이를 키우니 책과 교육에 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일에 대한 마음과 생각도 더 넓어졌고요. 특히 우리 삶을 둘러싼 넓은 의미의 공동체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폭넓은 관심이 생겼어요. 결혼 전과 다른, 또 다른 시각과 생각과 세계를 가진 윤승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게도 이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 눈에 보이는 순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새로운 자신이 되어 가는 과정.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딱 그만큼 생각도 많았던 청년은 당당하고 유쾌하게 그 길을 걸었다.     






삶의 모든 변화 앞에서 능동적이고 찬란하게


본의 아니게 프로 퇴사러가 된 승희. 그녀는 직업의 변경을 어떻게 생각할까? 승희는 계속된 직업 탐색과 변경을 “피할 수 없는 일”, 더 나아가 “꼭 해봐야 하는 일”로 표현했다.     


“현시대를 살아가며 직업이나 직장의 변경은 종종 피할 수 없는 선택이죠. 한 길로 쭉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깊게 파지 않고 얇고 넓게 가는 삶도 괜찮을 거 같아요. 하나를 10년 해봤으니, 다음 몇 년은 또 다른 걸 해본다는 느낌이랄까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성장이 따르니, 어쩌면 ‘꼭 해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직업과 일을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양성을 추가하는 행위’로 이해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겪었던 일을 경험해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계가 확장될수록 얘기할 수 있는 게 많아지죠. 해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거든요.”      


실제로 승희는 퇴사 후 여러 직업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화장품이나 유아 교보재를 팔아 보기도 했다. 집에 공부방을 차리는 것도 그러한 도전의 일환이었다.     


“여러 가지 시도하면서 자영업 하는 어려움도 배웠어요. 공부방 열면서 다른 원장님들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 세계에도 참 많은 이야기가 있더군요. 학부모, 아이에 관한 다양한 사례와 노하우, 인생 경험 등을 같이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도했던 것들이 매번 잘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실패하고, 잃고, 그만두는 결과가 더 많았다. 그래도 승희는 그 모든 과정이 의미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부모의 이런 시도와 경험이 궁극적으로 부모가 된 청년 개인과, 아이 모두에게 좋을 수 있다고 말한다.      


“꼭 업으로 가지 않더라도 안 하던 일, 싫었던 일, 못한다고 여겼던 일을 하나씩 시도해 보며 깨보면 삶의 폭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그리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큰 자산이 됩니다. 특히 다음 세대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런 생각도 해봐야지.’ 하면서 아이를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녀는 쌓아온 과거에 너무 매여있지 말라고 권한다.     


“직업, 진로, 쌓아온 경력을 생각하면 움직이기 힘들 수 있어요.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움직일 필요도 없어요. 욕심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하나씩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하다 보면 삶에 변화가 생기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일과 가정, 그리고 자신 사이에서 끝없이 꿈꿉니다.


어디에 있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에게는 그 특유의 건강한 분위기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당장 길을 모르고, 헤매고, 어려워도 웃어 보일 수 있는 힘이 있다. 눈앞의 상황을 넘어 훨씬 더 넓은 세상을 인지하고, 더 많은 삶을 생각한다.      


승희에게는 그런 빛이 있었다. 충실히 쌓아온 삶의 시간, 윤승희라는 사람의 모든 경험이 총체적으로 반영되어 반짝인다.      


지금 서 있는 공간, 눈에 담기는 풍경을 넘어서는 세상이 있음을 아는 힘. 그것은 이미 윤승희라는 사람을 이루는 아주 커다란 조각이고, 그녀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모든 과정 중에 생생하게 작동한다. 그러니 결국 그녀는 또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거다.


엄마가 된 청년은 오늘도 온몸으로, 무언가에 신나게 부딪혔다. 그러다 문득, 오늘의 세계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살이 붙어 결국 확장한다. 시도하고 실패하며, 그렇게 오늘도 또 한 뼘 컸다.      


펼쳐지는 삶의 새로움 앞에서, 호기심 가득한 승희가 온 얼굴로 흠뻑 웃는다.

와르륵 쏟아지는 웃음 속에, 생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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