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위치는 장안동에 있던 할머니네 집 창가. 어린 나는 한참 밖을 쳐다보고 있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서 오는 리어카의 정체를 파악 중이다. 그게 스프링 목마 리어카인지, 뻥튀기 리어카인지에 따라 그날의 운세는 결정이 났다. 고작 네 살 혹은 다섯 살인 나에게 둘 다 좋은 게 아니었다.
스프링 목마 리어카가 오는 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스프링 목마가 오면 10~15분을 신나게 발을 구를 수 있었다. 싸구려 테이프 카세트에서 나왔지만 아주 신나는 동요를 부르며 목마를 타면 할머니는 그런 날 기다리며 주인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봤으면 좋겠다’, ‘내가 앞집 누구보다 잘 타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했음 좋겠다’는 마음으로 신나게 발을 굴렀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가 아니라 백마 타고 등장한 왕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프링 목마 중에서도 하얀색 말을 고집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백마를 탄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반면, 뻥튀기 리어카가 오면 나는 절대 밖을 나가지 않았다. 아직도 큰 소리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 나는 어린 시절에 그 공포가 더 했는데 그냥 무시하면 될 것을 꼭 뻥튀기 기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방비로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담배를 태우기 위해 놓아둔 창가 의자를 밟고 올라가 목을 빼고 뻥튀기 기계를 노려본다. 설설거리며 돌아가던 기계가 보이고 아저씨는 그 근처에서 분주히 움직이다 어느 순간 “뻥이요!”라고 외친다. 그럼 소스라치게 의자에서 내려와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나를 품에 안아준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놀라고, 할머니는 그런 나에게 나중에 뻥튀기를 사준다. 뻥튀기는 내 눈물의 맛이다.
결국 그날 온 게 스프링 목마 리어카인지, 뻥튀기 리어카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의 푸근한 품에 안겨있던 감촉과 누룽지 사탕의 구수한 내음만이 은근하게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최초의 기억. 그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안에는 늘 할머니가 함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는 그 이후로 평일, 우리 집에 와서 나와 남동생을 돌봐주셨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꼬박 우리 집에 계시고 주말에만 할머니네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 때의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아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최초의 기억부터 함께 해서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했나보다. 할머니가 나에게 줬던 것들은 따뜻한 기억들뿐인데 어린 시절의 나는 떼쓰고 무례했던 기억뿐이다.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할머니는 교회를 아주 열심히 다니셨는데 교회에서 매주 주는 성경 문제지 한 장을 한 문제, 한 문제 매번 정말 꼼꼼히 적어가셨다. 옆에서 반쯤 누워서 억지로 밀린 학습지를 풀던 나는 할머니에게 물어본다.
“할머니, 어른이 돼서 왜 공부해? 어른 되면 문제 안 풀어도 되는 거 아니야?”
“화신아, 배우는 건 끝도 없는 거야. 죽는 날까지 배울 수 있는 거지.”
그 때 나의 찡그린 표정과 함께 기억나는 알알이 작게 그리고 곱게 쓰여졌던 할머니 글씨들, 그리고 파란 핏줄이 보이게 모나미 볼펜을 꽉 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등.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고 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배우는 건 끝이 없는거야, 죽는 날까지 배울 수 있는 거야, 그런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지낸다.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모습은 아주 작았다. 할머니네 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괜찮다 거절해도 기어코 역까지 배웅을 나왔다. 내가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날 응시하는 그 모습은 아주, 아주 작았다.
배웅하던 할머니는 아직도 단화 모양의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나 어린 시절 자주 신고 다니던 단화 모양의 구두. 또각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신고 나갔다가 대차게 무릎팍을 깨먹고 온 적도 있던 단화. 커서 헐떡이던 할머니의 구두는 이제 내 발이 들어가지도 못 한다. 난 이제 할머니보다 높은 구두를 신을 수 있고 할머니보다 더 작은 글씨도 쓸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어렸을 때보다 더 할머니를 생각하는 날들이 많다.
힘든 건 죽을 때까지 배운다고 치는데 뻥튀기 리어카보다 무서운 것들이 더 많아졌다. 아직도 뻥튀기 리어카가 왔을 그 때처럼 할머니 품에 안기고 싶은 날들이 많다. 부끄럼 없이 무서워하고 눈물 흘리며 뻥튀기를 먹고 싶다. 그리고 다음 날은 꼭 스프링 목마 리어카가 올 것이라는 달콤한 할머니의 말로 위로 받고 싶다. 많이 커도 달라진 건 없나보다. 전화나 자주 드려야지. 언젠가는 꼭 같이 백마를 탈 수 있을 거라고 할머니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손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