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안네의 일기>. 초등학교 때 100번은 더 읽었던 책들. 이 두 이야기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지. 두 명의 꿈이 소설가였던 것. 그렇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꿈꿨던 장래희망은 소설가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그만 책을 보라며, 내 방에서 책을 모두 뺐을 정도로 다독하면서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던 문학소녀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꿈을 빠르게 포기하게 된 건, 엄마가 지나가면서 말한 한마디가 발단이었다. “대부분의 소설가는 불행하던데...” 그냥 행복한 소설가를 꿈꿨으면 됐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불행할 것 같았다. 방에 틀어박혀 그 길고 긴 글을 쓸 자신이 없기도 했다. 상상해 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 갇혀있다가는 행복이 넘치는 사람이라도 불행해질 것이 분명했다. 한 치 앞도 못 봤던 어린 INFJ는 그렇게 첫 번째 꿈을 포기했다.
당시 내가 새롭게 관심 있던 분야는 기자였다.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밖을 나돌아 다닐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남을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거의 1석 3조였다. 대학에 입학 후, 바로 학보사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당연히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TV 혹은 책에서 보던 사람들을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정상적인 루트로 합법적인 덕질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듣고 대화하고 그것을 토대로 나의 기사를 완성하다니, 이 얼마나 충만한 일인지. 근데 이게 1년이 지나니까 너무 지치고 힘든 거다. 다시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다. 엉덩이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기자는 내 꿈에서 그렇게 탈락했다.
신문방송학과였던 나는 심화 수업으로 광고를 선택하고, 마케팅을 복수전공하는 성의까지 보이며 광고에 내 젊음을 올인하기로 한다. 실제로 광고 회사에 가서 주어지는 광고를 맡아 PT까지 진행해보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엉덩이는 그리 무거운 편이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창의성을 담당하는 뇌 부분에 무언가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뭐가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막혀있다는 것을... 더군다나 남들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 못한다는 조급함만이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이 일로 행복할 수 있는가? Nope. 그렇게 광고도 떠나보냈다.
당시 나를 위로해주던 것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듣던 심야라디오였다. 그렇게 다시 남을 위로해주는 글을 쓰는 라디오작가가 되어보자고 다짐한다. 라디오작가 구인광고는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로 방송작가의 길로 먼저 들어서게 됐다. 그렇게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도중에 그만둔 적 없냐고? 당연히 있다. 이렇게 평생 살 수 없을거란 생각에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3개월 동안 다녔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다. 아직 더 사랑할 일을 결국 찾지 못했다. 일단은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오래된 일은 맞다. 작가 일을 사랑하는 게 맞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만 나열했지만 그것에만 국한된 것은 사실 아니었다. 길지 않은 연애로 ‘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후에 연애 종결 상태로 유지해온 기간도 길다. 또한 새로운 사람들을 타 직종에 비해 많이 만나는 직종임에도 여러 인간 군상들에 실망하면서 굳이 그 인연들을 내 노력으로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많은 일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목표 수정을 하게 되면서 왜 이렇게 나는 남들처럼 인내심이 없는지, 꾸준하지 못한지 생각한 적이 많았다. 왜 중간에 포기하는 일만 잘하는지, 유일한 장점은 빠른 전환인건지 자괴감이 들 때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전환이 빠른 나도 그게 현실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최근에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포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사실은 새로운 무언가가 하고 싶어졌던 순간이라는 걸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손 놓고 포기만 하고 있었다면 그 모든 일들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포기하려는 순간에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들이 조금은 기적적으로 내게 생겼고 난 그 기회들은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니 작가 일도 지금까지 할 수 있었고 미운정 고운정 다 쌓인 동료들도 (조금이지만) 내 곁에 있다. 10년 동안 읽고 쓰던 대본이 아닌 다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해줬다.
요즘의 나는 이제 나에게 다가올 또 다른 포기의 순간들이 기대된다. 남들이 원하는 웃음에 내 삶을 갈아 넣는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내가 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순간들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교감은 없다고, 그런 관계들은 모두 쓸모없다고 믿었던 나의 생각을 포기하게 만들 사람을. 나이가 조금씩 먹을수록 포기가 어려워지는 걸 알아서 그 순간들이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