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0687
*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한 시사회 리뷰입니다.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주관적인 생각과 견해의 리뷰입니다.
* 본 글의 모든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 소개에서 가져왔습니다.
그간 모든 영화 리뷰에는 소제목을
달지 않았다.
뭔가 선뜻 내키지 않아서 이다.
또, 영화는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키스트 아워는 달랐다.
이 영화를
홀로 의사결정의 책임을 져야 하는 모든 리더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자신의 비젼과 직원들의 생계를 동시에 염려해야 하는 CEO들에게 추천한다.
비록
우리 모두의 판타지 같은 해피엔딩은 없지만
그래서 더 저 포지션의 사람들이 깊게 공감하고 묘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다.
*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영화의 실제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를 번역하면
정도일 것이다.
영화는 처칠의 총리로서 고독하고 힘들었던 초창기를 보여준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0687
윈스터 처칠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갑자기 수상으로 선출된다.
그것도 책임 전가를 위한 정치적 방패막이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달변가로 유명한 그였지만
그의 의지나 방향대로 전쟁에 대처하기엔 장벽이 많았다.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의 영국군과 연합군을 구하고자 하는 처칠을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정치적 수하도 독일에 항복하고 협상하는 쪽에 동의하는 눈빛을 보낸다.
처칠은 날개를 잃은 새가 날아보려 버둥데 듯이 미국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사실 처칠은 따지고 보면 반 영국인 반 미국인이었다.
처칠의 아버지는 영국 귀족이었고 어머니는 어마어마한 미국인 재력가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이런 결혼 풍습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그만의 방법을 찾아낸다.
영화에선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다소 모양새가 빠지고 어마어마한 군대 병력도 주변국의 도움도 아니었다.
그는 전략을 강구했고 모두 앞에서
처절하게 자신의 신념을 오장육부가 외치는 것처럼 소리 질러 관철시켰다.
영화를 보던 도중
처칠이 잔인하면서도 깨어있는 따듯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타이피스트(Typist) 레이톤 양이 궁금해하던
전쟁의 상황을 알려준 때였고,
자국민들이 두려움에 떨며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다가
그들이 알아야 할 때 연설을 하던 순간이었다.
처칠은 더 많이 알기 때문에 고뇌했다.
그는 부유한 귀족이었지만 사관학교를 나오고 군에서 복무했던 군인이었다.
물론 그의 볼록한 배와 둥근 풍채를 떠올려보면 쉽게 그려지지 않지만 말이다.
군대도 전쟁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정치적 측근들을 설득하기 더 힘들어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화를 냈다.
과거 자신이 패했던 전투가 늦어진 의사결정 때문이라고 설명해도 그의 주변은 귀담아듣질 않았다.
처칠은 출구가 없는 기나긴 복도를 혼자 걷는 것처럼 암담해했다.
그는 지식의 저주를 겪었던 것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47486&cid=56774&categoryId=56774
처칠은 정치인들이 아닌 영국군 사령관을 새로운 테스크 포스(Task Force)처럼 대하며 해결점을 마련해 간다.
지식의 저주를
포기를 몰라야 하는 리더로서 체면도 자존심도 내던지며,
약해져서 안 되는 때라는 걸 자각하며 이겨낸다.
신념이 주변의 평가에 흔들릴 때면
좁은 의사결정 그룹의 틈바구니에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처칠처럼
지하철에서 대중을 만나 독일군에 항복하고 협상하는 것을 논의하는 다소 충격적인 방법으로라도
집단 지성과 마주해야 한다.
미래는 전문가들조차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평범한 대중은 다를 수 있다.
와튼스쿨의 필립 E 교수는
2800명의 미국인 지원자를 모아 예측 토너먼트인 '좋은 판단 프로젝트'를 꾸려서 4년간 전 세계의 500개 이상의 지정학적 사건들을 예측했었다.
지원자들은 주부, 은퇴한 프로그래머, 사회복지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2800명의 예측은 국가정보 분석가의 집합적 판단 적중률을 능가했다고 한다.
그는 이들을 '슈퍼 예측가'라고 했다.
지식의 저주와 슈퍼 예측가는 우리가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난제나 위기로
오인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처칠이 레이톤 양에게 그리고 대중들에게 물었던 것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미래가 흙탕물처럼 흐릴 때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식되지 말고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아주 평범한 다양한 이들에게 말이다.
굳이 리더가 아니더라도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쪽박'이 분명한 프로젝트를 'go'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실패가 확실하더라도
'중박'은 될 것처럼 보고서를 꾸미고 깊은 한숨을 쉰 적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의사결정권자로서
일을 진행하던 중에 방향성이 잘못 됐음을 발견하지만 변경하지 않고,
자만하며 밀어붙인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영화 속 조지 6세처럼 조령모개를 두려워하지 않고 행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조령모개는
아침에 결정한 것을 저녁에 바꾸는 변덕스러움이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앞선 두 가지 사항을 계속 내버려두면 그 비즈니스는 곧 침몰하거나
겉으론 멀쩡할지 몰라도 뒤론 돈이 세어 자금난으로 속앓이를 할 것이다.
리더가 조령모개를 위해 용기를 내야 할 때이다.
처칠을 싫어하던 조지 6세는
항복하지 않겠다는 그를 지지하기로 생각을 바꾼다.
돌변한 그의 생각과 결정은 보기에 어색했고 왕의 위엄보다는 다소 어눌한 듯 느껴졌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만약 그가 자신의 변덕스러운 행보를 걱정하며 처칠의 의견에 반대했다면,
과연 지금의 영국이 가능했을까?
리더라면,
조지 6세처럼
조령모개를 두려워하는 대신
아집을 신념으로 착각하는 자기 합리화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대중들은 리더가 무결점의 절대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집단에 대한 보호와
말 한마디 한마디의 울림이다.
처칠은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덩케르크에 남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는 그를 보면서
4월의 가슴 아픈 노란 리본이 떠올랐다.
그리고 중국 쓰촨 성 지진 당시
66세였던 원자바오 총리가 지진 충격에 빠진 어린이들에게 했던 첫마디도 떠올랐다.
"얘들아,
나는 원자바오 할아버지야. 힘을 내야 해. 꼭 구조할 거야."
윈스턴 처칠은
독일과의 협상 대신
덩케르크 구출과 전쟁을 택했다.
그는 매일 취해 있었으며 시가를 피우는 사람이었다.
줄을 서서 물건을 사본 적도 없고 거의 매일 한 병씩 샴페인을 마셨던 금수저였다.
낭비가 심해서 재정난에 허덕였고, 유색인종과 장애인을 차별했다고도 전해진다.
처칠은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했고 자식들은 그가 늙어 죽을 때까지 속을 썩였다고 한다. 그는 일평생 우울증을 앓았으며 그게 음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들 한다.
그럼에도 대중은
그의 정치적 결정과 판단에 매료되었고 그를 지지했다.
달변가였던 윈스턴 처칠이지만
대중들 앞에서 연설해야 할 때는 시작 1초 전까지도 연설문을 쓰고 지우며 진중하고 예민하게 대했다.
그는 단어 한자, 글의 순서 배열 하나까지도 신경 쓰는 이였다.
처칠은 말의 힘을 알고 있는 리더였다.
처칠이 남긴 이 문장은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연설에도 쓰일 만큼
리더들이 지향하지만 지키기도 어려운 말이다.
다키스트 아워는
저 문구가 왜 나오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저 말은
처칠이 스스로에게 한 말일지도 모른다.
다키스트 아워를 보고
떠오른 처칠의 명언은,
If You're going through Hell, keep going.
이다.
장기불황, 4차 산업혁명, 임금인상, 노령화, 취업난까지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각자의 자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으니
행복하기만 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지옥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다키스트 아워를 떠올리며
계속 가길 바란다.
CEO,
리더,
사장님들이라면 더욱 더 !
여기까지
그녀의 솔직한 리뷰, '다키스트 아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