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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Oct 03. 2016

책임감에 대한 '마음 거름망'

카프카의 '변신'과 패션으로












이라니...

사실 갑자기 왜 다들 인문학을 찾게 된 것인지 가끔은 아주 놀라울 때가 있다.

한국식 주입교육 덕분에 서양 고전이나 소설까지 우리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때 꽤 많은 양의 책을 읽고 심지어 외웠을 텐데 말이다.












갑자기 왜 인문학을 찾게 된 걸까?

갑자기


왜?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중 인문학 열풍에 꼭 맞는 말이 있었다.

지금

한국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1.


마음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같다.

성공하려고 죽어라 공부한 적은 있어도

마음공부는 한 적이 없다니


아이러니하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자기를 조금만 무시하는 것 같으면 버럭 하기 십상이다.

사회생활의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마음은 폭풍이 몰아치는데 그렇다고 일하는데서 뒤쳐지는 건 더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다 보니 처세를 잘하기 위해서 '처세서'를 보게 되기 마련이고

책 속의 처대로 되지 않을 때 더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처세서를 백날보면 해..

실전에서 생각이 안 나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썩 내키지가 않는 거지


도통 모르겠어..

내가 고집이 쎈건지.. 뭔지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안타깝게도

어른이 된 우리들이 자주 보는 처세서는 대부분 오래된 중국의 위인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처세서들의 내용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경우도 많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도 만든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쓴이도 극복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바람만을 적은 것도 있다.


일전에 중국어와 중국 역사에 능통한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중국 관련 처세나 인문학서를 보기 전에 반드시 저자가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도 보게 되었다.

그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다.







그 글을 쓴 저자의 대부분은

본인이 말한 처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유배당한 상태에서 남긴 경우가 태반이다.


공자는

실제로 조력가로 활동했지만 그 어느 한 곳에서도 재상이 되지 못했다.

이런 부분을 배재한 채,

공자의 시선으로 본 것에만 치우쳐서 맹신하며 신격시해선 안된다.

그는 학자이지 맹신할 수 있는 신이 아니다.


글쓴이에게

내가 취할 것과 버릴 것, 실제 적용 가능하거나 해본 것과 생각만 해본 것(탁상공론)

가려내어 보지 못한다면, 안 보느니만 못하다.







사실 내게도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그 이전까지

내가 즐겨보던 '채근담'의 저자인 홍자성이란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홍자성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주변 인물로 유추해보면 명나라 시절 관직에서 물러난 선비로 보인다. 강직한 성품, 깊은 고뇌, 불우함, 삶의 달관이 느껴지는 글 모음이다.)




다 맞겠거니

다 옳겠거니



하며 안일하게 그 어떤 거름망도 없이 '맞다면서', '옳다면서' 읽고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저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부터는

좀 더 나다운 생각과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다.


'채근담'의 홍자성의 글들은 정말 좋다.

그렇게 실천하고 싶.


하지만

그런 내가 '홍자성' 코스프레를 하는 것인지,

나 답게 살기 위한 지혜를 얻은 것인지

명한 선을 두고 보게 되었다.






핸드 드립 커피의 거름망 같은


2.


나만의

'마음 거름망'을

만들기


가 시작된 것이다.






남동생이 대학에 가야 하니깐

당신이 가장이니깐

엄마잖아

이제 어른이잖아



라는 말이 우리 인생에서 희생이나 봉사를 강요할 때, 자기개발서나 처세서가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알려줄 수는 있지만 마음을 울려 실행에 다다르게 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 사회는 모두에게 '책임감'을 강요한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과중한 책임감으로 자살하거나 삶의 의미를 잃은 채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리니깐,

연장자니깐,

남자니깐,

여자니깐,

어른이니깐,


스스로의 상황이나 환경에 맞게

타인이나 집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책임감'을 걸러

마음 거름망이 필요하다.





진정

내가 이 책임감을 어깨에 메야 하는건지,

단순히 자립심이 부족한 이들이

내게 떠 넘기는 것인지,


아니면

부탁하면

 사정하면

몰아붙이면

떠넘길 수 있는 가마니 취급을

책임감이란 좋은 단어로 포장해서

짐을 지우는 것인지를

가려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책임져야할 무엇인가가 있다.

하늘 아래 나 혼자일지라도

어른이라면

나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니깐 말이다.


자기 책임을 가족이나 연인, 구성원들에게 떠넘기면서

들어주지 않으면

이기주의자 취급을 하는

간사한 '진짜' 이기주의자들을 가려내는 걸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 거름망은 그런 것이다.


내마음에 아닌것 같은 싫은데 하면서

책임감을 내세워 책임져줘 봐야

많은 경우엔 '가마니' 될 뿐이라서 하는 말이다.




'책임감'이란 단어하에

가마니 취급을 당하는.. 그런 이들에게

 책임감에 대한 '마음 거름망'으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추천한다.













카프카의 변신은

집안의 가장이었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리면서 그 가족들이 겪게 되는 성장과 인간의 내면에 대해 쓴 다소 냉소적인 소설이다.

소설은 결국 벌레가 된 주인공이 죽게 되면서 비로소 가족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읽는 이 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과도한 책임감이 가족 구성원들의 자립심을 저하시키고 스스로도 갉아먹는다는 생각이 들게 한 소설이었다.


가끔

나이 먹고

자기 개발서나 처세서가 아닌

고전이나 소설을 보는 것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물론

그냥 신변잡기 같은 유치한 소설도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중 누가 그 소설의 주인공으로 단 하루라도 살아볼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면

답은 달라진다.

자기 개발서와 처세서로 인문학에서 경중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 마음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하면

나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소설이나 과거의 실존인물의 삶 속 결정을 통해서 더 공감하며 배울 수 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그 책임감 때문에

벌레처럼 하찮게 느껴지거나

없어져버리는게 좋지 않을까란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히기 전






내가 어느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이나 감정에 철저하게 이입되어 절절히 느끼며

그의 삶을 통해서 대신 나를 객관화해서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마음공부를

하게 되는 개기를 삼아서

그렇게

생겨난 나만의

마음 거름망에


 자기 개발서와 처세서란 지식이 더해진다면

진정 나다우면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 도대체

인문학을 배워서

스스로의 마음공부하고 거름망을 만드는 것과

패션은 무슨 관계일까?


이 질문의 답으로 탈무드의 한 일화를 소개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외국에서 이민 온 학자의 옷차림이 화려한 것을 보고

그 학자의 성향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자 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그 학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 학자는 이민을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려하게 입었을 것이다.

원래 그를 알던 곳에서는 그의 평판으로 학자를 판단했겠지만, 밖에 나오면 그 사람의 옷차림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공부로 인해서

새로운

마음 거름망으로 살기로 했다면


경우에 따라서

나를

외부에서 평가하는

옷차림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3.


마음을 보여주는

옷차림의 인문학


을 시작해보자.





사람들은 남의 삶이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도

내면의 변화는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도

쉽게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내 마음의 변화를 알리고 싶다면 옷차림을 통해서 알리면 좋겠다.

그들이 캐치할 수 있는 힌트를 주자는 소리다.





매번 비판적인 사고로 부정적인 견해만 내비쳤었다. 라면

이제는 좀 더 긍정적으로 말하고 싶다면

밝은 색의 옷이나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면 좋을 것 같다.


꼬장꼬장한 관리자에서

좀 더 유연한 오픈 마인드를 가지려고 한다면

인상이 부드러워 보이는 브라운 칼라로 염색을 하면 어떨까 싶다.


젊은 사장님이라

직원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는 있지만 지시한 바를 바로 시행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은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딱 떨어지는 정장에 세련된 액세서리나 신발로 이미지를 조해서 함부로 할 수 없는 느낌을 연출하면 좋겠다.





옷차림으로 내가 아닌

나를 만드는 것 같아서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담는 그릇이 사람의 몸이고

그 몸이란 그릇을 올리

쟁반을 옷으로 보면,


마음의 방향이 바뀌었다

내 몸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 몸을 올리

쟁반인 옷

마음에 맞게 변화를 주면

마음을 겉모습으로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색유리 창문은

그것을

빛내는 아래서

판단을 해야 공평하다.


W.A. 워드






책임감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지는게 현실이다.


그럴 때가 찾아온다면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면서

'마음 거름망'으로

짙누르는 책임감을 걸러서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리면 좋겠다.


그리고

책임감 운운하며

당신을 함부로 평가하지 못하도록

옷차림이

거름망이 되어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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