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저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셨고, 당시 집에는 제가 읽을만한 책이 많이 없어서인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섭섭하게 '엄마가 동화책을 안 읽어줘서'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그동안 저희 가족을 위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해오신 엄마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에요. 아마도 제가 혼자 사부작사부작 들춰볼 동화책이 집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질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깝지 않았던 제가 고등학생이 되니 언어 영역 점수에서 번번이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어요. 많은 시간을 언어 영역에 투자했지만 결국 모의고사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등급을 수능 성적표에서 받게 되었어요. 시간이 모자라 가채점할 답안도 적어 오지 못했거든요.
공교롭게도 생일날 치른 수능 언어 영역 성적은 제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실패 경험이에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능 점수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20대가 되어보니 생각보다 더 큰 세상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책을 읽지 않은 게 선명하게 드러난 건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의 순간이었어요. 저와 달리 본인의 생각을 논리 있게 잘 표현하고 지혜로운 결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독서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저의 실패 경험의 근본적인 원인을 바꾸게 되는 계기를 마주했어요.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던 저는 뉴스에서 보도되는 어느 사건을 보며 '내가 만약 저기 리더라면 무슨 결정을 내릴까?'라고 생각하며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적이 있어요.
낮은 언어 영역 점수는 이미 지난 과거의 실패 경험이었고 더 큰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살기 위해'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책을 가까이해왔던 시점이. 실패로 인해 깨달은 걸 실천하지 않으면 살아가면서 더 큰 실패를 마주할 것 같았어요. 덕분에 지금도 저는 실패를 피할 수는 없지만 실패의 크기를 줄이고 빈도를 낮추기 위해 열심히 읽어요. 지혜롭게 결정할 미래의 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