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면접을 앞둔 밤이다. 어쩌다 보니 월요일부터 면접이네.
사실 11월에도 한 날 두 곳이나 보긴 했었지, 기대 안 하고 갔던 곳들이라 그만큼 준비할 마음도 없이 털레털레 다녀왔지만.
이번에 가게 되는 곳은 JD 보자마자 '여긴 나 안 뽑으면 누굴 뽑겠어?'라며 자신감에 취해 가을쯤 이력서를 제출했던 곳인데, 예상외로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아서 '음.. 여기도 내 자리가 아니었나 보네..' 하며 나의 착각 어린 자만심을 깨닫고 자중하게 한 곳이다. 당연히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12월 중순에 대뜸 인적성 안내 문자를 받았다. '오잉? 갑자기 이게 뭐지?' 하면서 메일을 확인해 보니 서류 합격했단다. 오예.. 오랜만에 들어보는 합격이라는 단어에 우선 설레고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이틀 동안 준비해서 봐야 하는 인적성이 있었다. 지난여름, 어느 제약사 인적성을 거의 준비도 하지 않은 채로 봤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열심히 예상 문제들을 풀어보고 합격 후기들을 찾아봤다. 교직원 서류 시험 이후로 처음 보니까 꼬박 10년 만이었다. 2016년 초가 마지막이었으니. 다행히 걱정했던 거시속, 소금물, 수열 등의 문제는 나오지 않아 수월하게 풀 수 있었고 그렇게 인적성을 합격했다. 감사하게도 면접 기회를 한번 더 얻었다.
퇴사하고 사실 어떤 일을 언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크게 계획도 없었고 희망사항에도 없었는데 그냥 꾸역꾸역 한 번씩 올라오는 조급함과 압박감에 지원했던 서류들이 그래도 5% 정도는 면접의 기회를 몰고 와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면접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저녁에는 옷방에서 옷을 고르며 이런 말을 했다.
"여름, 가을, 겨울. 세 계절 면접을 다 보고 있네. 신기하다. 내일은 뭐 입고 가면 좋을까?"
무더운 여름 땀을 흘리며 반팔 니트와 스커트를 입고 면접 보러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내일은 목폴라에 기모 슬랙스를 입고 올해의 마지막 면접을 보러 갈 예정이다.
벌써 퇴사한 지 7개월, 일을 안 한지는 8개월이 되었다 보니 내가 했던 일들을 많이 까먹었다. 원래도 내가 하는 일을 어필하는 것에 능하지 못한 사람인지라 챗gpt에게 회사 JD를 보내주고 내가 기존에 했던 파일들을 하나씩 올리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해왔던 사람인지' 분석해 달라고 하고 있다. 데이터도 다루고 영업 관리도 하고 마케팅 전략 기획 다 했던 사람인데, 마지막으로 본 면접에서 "원래 깨알 같은 사람들은 숫자랑 안 친해. 그렇죠? 맞죠?"라는 말을 듣고 나서 진짜 내가 숫자와 담을 쌓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사실 머리가 그렇게 안 굴러가지도 않는데 말이다. 내일은 부디 내가 숫자를 잘 볼 줄 알고, 꽤나 친하고, 데이터 분석을 즐겨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어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은 공백기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퇴사 사유를 리프레시라고 하면 왜 리프레시가 필요했고, 혼자 팀이었는데 그게 갑자기 왜 하고 싶었는지 요목조목 묻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만큼이나 퇴사 후 공백기에 대한 나의 생활을 어떻게 잘 버무려 말해야 할지 고민이다. 어떻게 말해도 납득이 될 거면 되고 안 될 거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은행을 그만두고 1년 반 기간 또한 그랬다. 누군가는 그 공백을 불합격 사유로 삼고 집요하게 질문하고, 또 누군가는 내 대답에 수긍하고 넘어갔다. 내일은 근데 뭐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답이 안 선다. 그렇게 많이 말해봤으면서 또 1달이 지난 이 시점에서 더 마이너스라고 보진 않을까 걱정이 앞서서 그런가 보다. 에세이 썼다고 하면 안 되려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결과가 어떻든 내가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5개월 동안 봤던 면접에서는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여태껏 위축된 느낌을 숨기지 못했던 걸까. 내가 해 온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데 어필하나 제대로 못하고 찝찝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부디 내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일은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말하고 어필하고 왔으면 좋겠다. 부디 막힘없을 질문들만 나와라.. 너무 어렵게만 묻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