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by 깨알쟁이

퇴사하고 나면

적어도 일주일정도는 TV 앞을 떠나지 않고

탱자탱자 넷플릭스만 보면서

하루를 보내면서 쉴 줄 알았는데

오늘이 처음이었다

한파가 날 도왔다

나가지 못할 이유를 선물처럼 주었다

한동안 미뤄뒀던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하루 종일 봤다


남편 출근하자마자 틀어서

퇴근할 때까지 봤다

마치 겨울방학인데 선생님이던 엄마가

연수받으러 나가서 온전히 혼자 있던

그 나날들 같았다

다시 초등학생 또는 중학생 겨울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랄까


후회 없이 하루를 온전히 TV 앞에서 보내고 나니

이런 시간을 진작 가질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행이다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

놀지 않았던 지난 시간에 후회도 하는 거겠지


퇴사하고 나서 무언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남들 다 출근하는 평일에는 나도 마치

어딘가에 일이 있어 나가는 것처럼

하다못해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처럼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고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스스로 죄악시해 왔다

근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죄책감은 들지 않았고

간접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라

정신적으로 제대로 환기가 되는 시간이었다


오히려 숏폼 대신 나름 롱폼 드라마를 보았다는 게

Brainrot과는 멀리 있어 안도감도 든다

시간을 허비한 느낌보다는 잘 썼다는 생각


그렇게 나는 겨울방학을 잘 보냈다

추위 덕분에 따뜻하고 편안한 나의 공간에서

파리에 갔다가 로마에도 가고

유럽에서 스키도 타고 말도 탔다


쉬는 시간의 나도 나고

그 시간도 분명 가치가 있는 시간이다

TV 시청에 너무 죄책감 갖기보다는

때로는 간접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나만의 방학을 보내야겠다 후회 없이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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