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난 보기보다 속이 좁은데 시끄러운 사람이다. 감기에 걸렸는데 약을 먹지 못하면서 생애 최초 새로운 고통을 느끼면서 머릿속이 내내 엉켜 한번은 풀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관계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한다.
나는 사실 관계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다. 초중고시절 한 번씩 동급생 친구들은 그냥 심술이 났다면서 별다른 이유 없이 따돌렸다. 그래서 내게는 단짝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학교 다니면서 가장 싫은 시간은 운동장에서 조회하러 나가 2줄로 서는 시간. 그게 아니면 짝지어 나가 팀플을 요하는 체육 시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오래전부터 ‘동갑내기 이성’을 만나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 지금은 그 꿈을 이뤄 나에게도 드디어 단짝 친구가 생겼지만.
아무쪼록 유년 시절에 나는 여러 번의 버려짐, 무시당함, 따돌림의 경험들을 통해 지금까지도 사람을 잘 믿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빠른 속도로 깊이 있게 다가오면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너는 주변에 사람이 참 많다’ 하는데, 사실은 한순간도 관계들에 있어 노력을 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나 혼자 상대에게 마음을 너무 줬다가 금세 달아날까 봐 억지로 절제한다거나, 상대가 시큰둥할 것 같으면 내 상처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먼저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어.’라며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왜냐고?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걸 경험했기 때문에,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하고 싶지 않다랄까. 여전히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아야 하는 것에는 어려운 것 같다.
가장 처음으로 이유 없는 미움을 받았다고 느낀 건 초등학교 3학년 가을 소풍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겐 그저 일 년에 두 번 있는 소풍 중 한 번의 소풍에 불과했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나는 전 날 오후에 전학 왔는데 바로 다음 날이 소풍이라고 했다. 허허. 그래서 친구들과 친해지기는커녕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전학 2일 차에 동네 야산에 올랐다.
단체로 산에 올라 어딘가에 터를 잡고 (?) 산에서 만난 무언가를 자유롭게 그리고 느낀 점을 쓰는 게 소풍의 목적이었다. 이삿짐을 다 풀지 못해 제대로 된 공책과 연필 대신에 아크릴 판이 뒤에 있고 목걸이로 걸 수 있는 줄수첩과 거기에 딸려있는 펜 한 자루만을 겨우 챙겨갔다.
끄적대며 그림을 그리려던 찰나 선생님은 내게 “학생이 볼펜 쓰면 안 되지! 연필로 그려! 펜 안 돼!”라고 엄포를 내렸다. ‘이삿짐을 다 못 풀어서 못 챙겨 왔어요.. 이걸로 쓰면 안 될까요?’라고 사정했지만, 그럼 친구들에게 빌려보면 되지 않겠냐며 다시 한번 연필의 사용을 강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 선생님이 융통성 있게 대해주셨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러기엔 이미 27년이나 지나버렸네.
아무쪼록 나는 그때 적잖이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기에 앞에 있는 애들한테 갔다. 여자애들 무리였다. 그중 한 아이는 철제 필통을 가져왔는데 뒤에서 슬쩍 보기에 연필이 최소 4자루가 있었고 바로 쓰기 좋게 전부 깎여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용기 있게 말했다.
“저기.. 내가 펜밖에 없어서 그런데 혹시 연필 좀 빌릴 수 있을까?”
“응? 나 내가 쓸 거 말고는 다 부러졌는데 어쩌지? “
친구는 얼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난 그 시절 눈이 안 좋아 이미 안경을 끼고 다녀서 교정시력은 1.0이었단 말이다. 분명 내가 봤는데 거짓말을 하더라. 근데 내가 어디선가 싸워본 적도 있고 배짱도 있고 맷집도 있는 좀 더 독한 계집애(?)였다면 거짓말하는 친구에게 ’ 너 왜 나에게 거짓말하냐 ‘며 따져봤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너무 순진하고 바보 같았다. 그저 물러터졌지.
“아.. 그렇구나.. 알았어...”
그때부터 속 시끄러운 머릿속 고민은 시작되었다.
‘아, 쟤는 날 싫어하는구나.‘
‘왜 이유 없이 날 싫어하지? 아니 이유가 뭘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만약 그때 그 친구에게 솔직히 말했더라면, 혹은 그전에 선생님에게 그냥 나 펜으로 하겠다고 조금 버릇없이 말하고 그냥 펜을 사용했더라면 지금처럼 인간관계가 어렵지 않을까? 다가오기도 전에 밀어내지 않고 진심으로만 관계에 임할까? 상대의 반응에 하나하나 예민하게 반응하며 반추동물처럼 과거에 내가 뭘 잘못했는지 지질하게 되새김질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