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은 회사에서 처음 입 밖으로 퇴사를 말하고 떠날 준비를 시작한 달이었다. 퇴사 준비를 2월부터 시작한 것치고는 마지막 근무가 4월이라 꽤나 긴 시간을 보내왔지만. 회사에서의 지난한 시간들을 흘려보내기 위해 퇴사를 하고 덜 열심히 살았다. 애초에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살아가는 날도 많았고 계획을 세웠다 할지라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나 스스로를 덜 채찍질하는 훈련을 했다. 이 훈련은 꾸준히 필요하겠지만.
이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정말 많았다. 그 속엔 사실 좋은 생각보다는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가득 차있었다.
'나 이대로 쉬면 평생 경력단절되는 건 아닐까?'
'임신이 되기는 하는 걸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회사 일로 바쁜 친구들 대부분은 쉬고 있는 나를 부러워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혼자 집에 가만히 있다 보면 세상 속에 속해있지 않고 나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를 꾸준히 했다. 꾸준히가 꼭 매일은 아니니까 하루 이틀 빠진 것에 대한 강박은 갖지 않기로 했다.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다. 글 하나 쓰려면 글감 찾고 주제 잡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던 과거와 달리 일단 그냥 썼다.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보면 '일단 하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글을 자주 썼다. 때로는 나를 더 옥죄면서 매일 써보기도 했고 그게 벅찰 때에는 주 2~3회로 줄여서라도 글쓰기를 놓지 않으려 했다.
혼자 먹는 밥이라도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삼시 세 끼를 집밥으로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하는 날이 많았는데, 가급적 배달 음식은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그 속에는 '돈도 못 버는데 내가 무슨 배달이냐. 있는 거 해 먹자.'라는 자기반성이 늘 함께해서 괴로움도 공존했지만 지나고 나니 몸이 건강해진 것도 잘 차려먹은 집밥의 영향이지 않았나 싶다. 자취방에서 대충 비벼서 차려먹는 밥이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공을 더 들였다. 내가 셰프인 식당에서 나라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구직 활동도 했다. 열심히 또는 잘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빈도가 현저히 떨어지긴 했으나, 나름의 데드라인을 중간중간 세팅하여 그 속에서 벼락치기를 하든 매일 쪼개서 하든 지원 활동을 해왔다. 끝내 이루지 못한 포트폴리오는 차차 만들어보기로 하겠다.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두 차례 남편 없이 시댁에 가서 어머님 아버님과 식사도 하고, 엄마 아빠와는 근교로 나들이도 여러 번 다녀왔다. 더위를 피해 쇼핑몰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남편과는 매월 마지막 수요일마다 점심 데이트를 빠짐없이 했다. 그 어느 시간보다 값진 시간이었고 후회 없는 선택 덕분에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몸 풀기와 운동 사이 그 어딘가도 꾸준히 했다. 근막 이완이나 스트레칭에 집중했던 기간도, 땀 흘리며 자전거도 타고 근력운동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느슨해진 적도 있었지만 수술 전후 기간을 제외하고는 꼬박 출석하여 몸과 마음을 맑게 만드는 데 힘썼다.
이렇게 퇴사 후 꼬박 9개월을 보냈다.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아 오늘은 아무것도 한 게 없네.' 하면서 의미 없이 흘러간 것 같은 날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버릴 하루가 하나도 없었고 모든 시간 속 주인공은 나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감사하게도 재충전의 시간, 혼자만의 시간은 끝이 나고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던 기회가 주어져서 다음 달이면 다시 일터로 나가게 되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것에도 전부 끝이 있고, 어둠만 가득한 것 같던 시간들에도 충분한 빛이 들어와 있었다. 정해진 게 하나도 없어 불안한 시절에는 모든 게 막막했는데 이제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불안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여유의 마음이 한 줄기 빛처럼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쉬는 기간 동안 뭐 했냐고 물으면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서 주저하곤 했는데,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전력모드와 방해금지모드로 살아가던 나에게 충전기를 꽂아 충전했던 시기였다고. 이제는 80% 이상 채워져서 충전기를 빼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