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지난봄, 새로 이직한 회사는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즉 매마수마다 특별한 문화가 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점심시간은 2시간이라는 것이다. 매일 출근하는 곳이 없는 나는 남편의 매마수 날마다 남편 회사 근처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무더운 8월 한 달을 제외하고 쭉,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이 우리만의 약속이자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결혼을 하고 나니 밖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데이트보다는 그저 생존에 가까웠다. 집에서 요리를 하기 도저히 힘든 날, 나를 구원해 주는 것들은 다름 아닌 집 근처 단골 식당들이다. 그래서 저녁 외식은 분위기 내는 목적보다는 '우리 오늘은 좀 편하게 가자'며 하루 동안 고생했던 서로를 조금 봐주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근데 매마수 데이트는 다르다. 일단 저녁이 아닌 점심 데이트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우리는 밖에서 만난다. 한 집에서 같이 나가는 것이 아니고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따로 출발해 밖에서 만나는 것처럼, 우리는 데이트 장소에서 만나서 식사를 한다. 나는 집에서, 남편은 회사에서 나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 날 만큼은 평소와 다르게 화장도 좀 하고 옷도 차려입는다. 너무 편한 모습만 보여주어 환상을 깨게 만들었던 남편에 대한 예의를 차린다. 안 입던 옷, 잘 안 드는 가방도 한 번씩 매 주면서 우리는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있는 매마수 점심 데이트를 즐겨오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올해 첫 매마수 데이트를 즐겼다. 이제는 식당을 열정적으로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주변을 걷다 보면 괜찮아 보이거나 평소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들을 둘러본다. 사람이 많으면 예약을 걸어보기도 하고 사람이 없으면 적당한 고민 끝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오늘 우리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메뉴를 주문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어먹고 대화를 나눈다. 집에서 직접 차려먹는 때와는 다르게 좀 더 산뜻한 기분으로 우리의 대화에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카페를 가거나 주변을 한참 걷는다. 새로 생긴 상점, 새로 생긴 카페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여름에는 더위, 겨울에는 추위를 느끼며 계절감을 함께 공유한다. 이제 곧 헤어지면 무얼 할 거냐며 남편은 내게 매마수 겸 서울 나들이의 계획을 묻는다. 이왕 한 시간 걸려 서울까지 나온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더 보내다 가기 위해 미술관이나 서점, 혹은 카페에서 사색을 즐기다 집에 가기도 했다. 회사로 향하는 남편과 나는 오후 2시에 각자의 갈 길을 축복하며 "이따 집에서 봐"하고 매마수 데이트를 종료한다.
남편의 회사 덕분에 우리는 월간 점심 데이트 쿠폰을 얻은 것도 같다. 덤으로 서울 나들이 쿠폰도.
몸이나 마음이 분주할 때에는 쉬어가는 시간의 매마수를, 한없이 늘어진 시기에는 조금은 타이트하고 숨 가쁜 매마수를 함께 보내며 우리는 여름에서 겨울로 훌쩍 넘어왔다. 혼자 집에서 고요하게 지내던 내가 최소한 이 날만큼은 사람들 속에 섞여 지하철도 타고 세상 구경을 한다. 그렇게 매마수는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다. 며칠 동안 울적해있던 나에게 1월 매마수 데이트는 양쪽의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의 햇빛과도 같았다. 아침에 헤어진 지 4시간 만에 다시 만나 인사하고, 함께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하면서 걷고, 추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메뉴를 주문하는 것. 그리고 다가올 우리의 주말 일정을 함께 논의하는 것. 별 것 아닌 일상이 내게는 세상에 잘 속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값진 시간이었다.
오늘도 그렇게 나는 세상 구경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1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