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다 한 번에 잘 되는 경우는 드물죠?

by 깨알쟁이

큰 굴곡 없이 살아온 것 같은 내 인생에도 늘 변하지 않는 점은 한 번에 된 적은 잘 없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리더십보다는 팔로워십이 강해 반장보다는 부반장을 원했던 나는 초등학교 3학년에 처음 나가본 부반장 선거도 두 번 세 번에 걸쳐 당선되었다. 5학년 때에는 1년 동안 기다렸던 성가대 반주자 역할을 드디어 하게 되나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갑자기 지휘자 선생님이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오더니 오디션을 보자고 했다. 오디션 날까지 하루에 2시간 이상 연습해서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연주를 보였으나 결과는 1:1이라며 상반기 하반기를 나눠하게 되었다. 1년 내내 혼자 반주자 역할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고 '음, 역시 인생에 쉬운 건 없다!' 처음 깨달았던 12살이었다.


인간 관계도 사실 쉽지 않았다. 쉽게 정이 들고 맘껏 퍼주던 나를 만만하게 보던 사람들로 인해 나는 종종 외로워졌고 심술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럴수록 세게 나가야 하는데 눈치 보고 위축되고 '내가 뭘 잘못했을까?'라며 나에게서만 문제를 찾으려고 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서였을까. 더 주고 싶어도 조금 참고 더 표현하고 싶어도 조금 기다리는 법을 터득했다. 어떻게 보면 계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덜 말하자. 덜 표현하자. 싫은 내색도 해보자.'

그래서 나에게 먼저 다가오고 내가 좋다고 표현하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내가 뭐라고 날 그렇게 좋아하지? 저러다가 나중에 또 나한테 질려서 떨어져 나가는 거 아니야? 언젠간 떠나겠지 쟤도..' 보이지 않는 방어 기제를 남몰래 튼튼하게 세우고 있었다. 멀리서 좋게 봤던 친구들도 막상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면 부담스럽다고 느꼈던 것은 다름 아닌 '언젠간 떠나겠지'라는 두려움이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어떤 관계에서든지 밀당은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 마음으로 깨달으며 살아왔다.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전보다 마음의 짐은 훨씬 덜었다. 애초에 내가 먼저 많이 표현하지 않았으니 떠나도 미련 없다면서 말이다.


취업, 그리고 진로 탐색 또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엄마 따라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꾸다가 수능 등급 커트라인에 현실을 깨닫고 쉽게 포기한 후 성적에 맞춰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6등급의 언어 영역 성적표를 받아줄 유일한 문과가 우리 학교 경제학과였기 때문이다. 왜냐면 수리, 외국어, 사회 탐구만 반영하는 특별한 과였기 때문에. 그렇게 수동적으로 전공을 선택하여 진학하다 보니 당연히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 중 아무도 선택하지 않던 소비자학과를 부전공으로 택해 애써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성적도 훨씬 잘 나왔고 수업 시간에 집중도 더 잘 됐다. 근데 그렇게 그쪽 전공으로 진로를 선택했으면 편하고 쉽게 취업의 길로 갔을 텐데, 신념도 줏대도 없던 나는 '경제학과라면 모름지기 금융권 취업 준비'를 맹목적으로 따랐다. 이 또한 전공 선택에 이어 Why not?이었다. 주변 선배와 동기들은 전부 증권사와 은행 등 금융기관 취업을 준비했고, 돈도 꽤 잘 벌 수 있는 직군이라고 했으니 큰 고민 없이 그 길을 따랐다. 결과는? 무기계약직으로 은행원이 되었으나 1년 2개월 만에 무지성 퇴사를 결심하고 나왔다. 아마도 이 결심이 20대가 되고 내가 내린 결정 중 가장 능동적인 결정이지 않았나 싶다. 근데 퇴사 후 나는 다시 수동적인 선택의 길로 들어왔다. 막상 은행에서는 나왔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거나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는 잘 몰랐다는 거다. 그래서 또 나는 맹목적인 팔로잉을 했다. '요즘 로펌 비서 취업이 잘 된다더라. 토익 성적이랑 면접 준비 잘하면 붙을 거다. 워라밸도 나쁘지 않다던데 도전해 봐라. 육아휴직도 보장되고 여자가 하기에 나쁘지 않은 직업이라고 한다.'는 엄마의 조언을 말이다. 또 열심히도 했다. 두 달 만에 토익을 930으로 끌어올리고 6대 로펌에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결과는 어땠냐고? 당연히 다 떨어졌다. 어울리는 인재상도 아니었을뿐더러 취업에 대한 의지만 있었지 해당 직무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회사들도 알았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돌고 돌아 지금 나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마케팅과 브랜딩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내가 잘하는 사람인지 의심과 채찍질이 반복되지만, 적어도 수동적인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온순해 보여도 내 안에 자리 잡힌 반골 기질 때문일까, 죽어도 싫은 건 절대 오랫동안 참고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인지 결국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고 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기까지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 속에는 많은 눈물과 창피함, 미안함, 고마움, 서러움이 뒤섞인 에피소드들이 함께 했다. 거의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7년 이상을 꾸준히 프로 소개팅녀로 살아왔다고 하면 다들 '눈이 엄청 높나 봐. 뭘 저렇게 골라.'라는 말부터 하면서 시작했지만, 서로 대화의 결이 잘 맞고, 예민하고 생각 많고 덜렁대는 나를 무던하게 받아줄 남편을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뚜벅뚜벅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다고 표현하고 싶다. 번번이 소개팅에 실패하고 돌아온 나에게 '각자의 인연은 분명히 있어.'라는 말을 묵직하게 해 줬지만, 머리로만 알아들었던 내가 지금은 그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인생에서 모든 것이 다 비슷한 것 같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것들 중 한 번에 성공한 분야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성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저 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한번에 성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건 나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의 영향도 있고 타이밍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내 것이라면 돌고 돌아 나에게 오게 되고, 내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취하지 못하게 겉돌다 끝났던 것 같다.


사실 오늘 난임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는데, 지난주에 이식했던 배아가 착상되지 못해 비임신 상태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이틀 전에 해본 얼리 임신테스트기(며칠 더 빠르게 반응이 온다는 테스트기)에서는 희미하게나마 2줄이 보이길래 반신반의하며 오늘 병원으로 향했다.

'엇? 나에게 이렇게 금방 좋은 일이 찾아온다고? 이럴 수가? 와 진짜? 나에게 기회가 오는 거야?'

역시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지. 인생이 이렇게 쉽게 풀리면 또 나는 '그래 내가 관리를 잘해서 그래'라고 오로지 나에게 공을 돌리며 교만함에 빠지기 십상이니 쉽게 주어지지 않겠지. 싶었다.


이제까지 36년의 인생이 늘 그랬다. 놀랄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다. 한 번에 되면 그게 더 불안한 것을. 성공해도 다시 뒤돌아 돌다리를 두들기는 나 자신을 알기에 쉽게 쥐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인간인지라 서러움은 숨길 수 없지만 내 인생이 원래 이런 모양이었던 것을 어떡하리. 이제 겨우 한 번 떨어졌으니 리바운드할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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