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꾸준히 하는 힘을 높이 사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우리 아빠는 매일 아침 6시 40분에 EBS 입이 트이는 영어(입트영) 공부를 하신다. 꼬박 1년이 되어간다. 70을 바라보는 연세에 영어 공부해서 뭐 하나 싶기도 한데 매일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게 좋다고 말씀하신다. 20분 수업만 듣고 휙 끝내는 게 아니고 혼자서 Band 앱에 방을 만들어 그날의 주요 표현들을 기록하고 응용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아빠는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신다. 이것 또한 여행 갔다가 돌아온 날에도 빠짐없이 실천하신다. 피곤하실 텐데 먼지 그 까이 것 하루 정도는 흐린 눈 하면 안 되나 싶은데 내려놓는 법이 없다. 운동이 빠지면 섭섭하다. 아마도 오후 4시나 5시쯤 되면 아파트 내에 있는 헬스장에 가서 한 시간 정도 근육 운동과 유산소, 그리고 골프 연습을 하고 오신다. 제 아무리 33년의 군생활을 마친 김대령 님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흐트러짐이 없나 싶다. 어릴 때에는 학교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쓰라고 할 때 선생님들이 '부모님 제외'라는 멘트를 써서 억지로 TV에 나오는 유명 인사를 찾아 돌아가며 썼던 기억이 있는데, 부모님을 제외하면 안 될 것 같다.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존경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엄마 얘기를 빼놓으면 주변 사람들도 많이 서운할 것이다. 사실 군인이셨던 아빠보다 더 빡센(?) 사람은 우리 엄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내게 군복 입은 아빠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아빠보다 엄마가 더 무섭다. 아마도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쓴소리 하는 악역을 맡아야 했고,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더 적합해서이지 않을까. 엄마는 부지런함의 끝판왕이다. 체력도 약하고 무릎 상태도 많이 안 좋은데 한 시도 쉬질 않으신다. 어릴 때에는 새벽에 일어나 아빠와 나의 아침을 챙겨주고 나를 데리고 6시 반쯤 집에서 출발하여 차로 40분 이상 걸렸던 할머니댁에 나를 맡긴다. 그 새벽에 일어나 엄마를 따라가던 어린 나도 대단했지만, 모든 걸 빼놓지 않고 해내려고 했고 대부분 해냈던 엄마를 능가할 수는 없다. 퇴근하고는 다시 할머니댁에 와서 나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고, 집에 오면 청소와 빨래, 저녁 준비 및 식사를 다 마치고 누웠다. 그 시절에는 손잡이가 긴 걸레도 없어서 무릎 꿇고 바닥을 닦았고 빨래는 목욕 의자에 앉아 빨래판에 빨랫비누로 비벼가며 손으로 직접 하셨다. 애석하게도 어린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준 적은 없었지만 이 외에 집안일과 가족을 보살피는 일에는 단 한순간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내가 결혼하고 출가하고 나서도 엄마는 나에게 줄 반찬을 해놓으시거나 식재료를 사두신다. 그리고 빼놓지 않으려고 하나하나 메모하고 재차 확인한다. 메뉴는 항상 갈 때마다 바뀌어있고 매일같이 침 맞고 정형외과 가서 연골주사 맞으면서도 부엌에서는 늘 서서 무언가를 볶고, 조리고 계신다. 배달 음식이나 외식을 즐겨하지 않았던 이유도 어쩌면 지독한 엄마의 부지런함 그리고 그 속엔 가족의 건강을 지켜내고자 하는 꾸준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
결혼을 해서 분가하고,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넘어가다 보니 엄마 아빠의 이런 꾸준함과 부지런함은 결코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느낀다. 밥 먹고 나면 피곤해서 더 쉬고 싶고, 청소는 어차피 로봇 청소기가 해주니까 기계에만 의존하면서 늘어지고 게을러졌다. 의자에 옷이 쌓여가도 '내일 치우지 뭐.' 그놈의 내일 내일 무새가 되어버렸고, 라섹한 지 16년이 지나 시력이 많이 떨어져 자연스럽게 흐린 눈을 장착하기도 했다. 과연 나는 엄마 아빠처럼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두 분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났다면 조금이라도 꾸준하고 부지런해야 하는 것 아닐까?
뭐라도 좋으니 나의 삶에 있어 꾸준히 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더 확장시켜 나가고 싶다. 분명 나도 있을 거다. 내가 잘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중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이.
매일 글 하나씩 쓰기, 매일 집밥 1개씩 만들기, 매일 쓰레기 버리기, 매일 가스레인지 닦기와 같은 것들.
나도 우리 엄마아빠처럼 꾸준히 하는 힘을 더 많이 길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