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는 시간들, 다시 열리는 문 앞에서
남편이 이직하고 작년 6월부터 우리는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매마수) 점심을 함께 보내왔다. 우리만의 따뜻하고 뜻깊던 시간인 매마수도 오늘 부로 잠시만 안녕이다. 나도 다음 주면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일을 겪었다. 남편은 재작년 말 회사를 그만두고 여의도를 떠나왔다. 우리는 함께 배짱 두둑하게 영국과 스코틀랜드 티켓을 끊고 다녀왔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도 회사를 나왔다. 다행히 그때쯤 남편에게 좋은 소식이 생겼고 이제 또 언제 둘에게 동시 시간적 자유가 주어질지 몰라 돌연 싱가포르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우리는 2024년 5월 신혼여행으로 이태리와 프랑스를, 2024년 12월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2025년 5월 싱가포르까지 약 6개월에 한 번씩 인천 공항으로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싣곤 했다.
나는 6월부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은 여전히 함께했고 늘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게 불안했다. 남들은 내가 가장 부럽다고 했는데 사실 소속감이 없고, 그로 인해 내가 능력이 없음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시간들은 건강하다고 볼 수 없었다. 특히 나 같은 외향적인 사람에게는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운동도 꾸준히 하고 부모님과 시간을 자주 보내며 소통의 고리를 이어나갔고 삶의 생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매번 다른 형태와 다른 주기로 기록했고 이를 통해 나 스스로를 구하려고 매 순간 애써왔다.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큰 노력은 하지 않더라도 일단 실행력을 보이며 도전해 왔다, 끊임없이.
글도 써서 에세이북과 인터뷰집도 냈다. 2세를 준비한다고 열심히 병원 다니면서 나팔관 조영술, 난자 채취, 자궁경, 배아 이식도 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면서 나의 지경은 점점 넓어졌다.
요리 실력도 많이 늘었다. 혼자 있어도 나 스스로를 가장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잘 차려먹는 연습을 해왔다. 덕분에 이제는 조리 시간이 예전만큼 오래 걸리지도 않으며 어느덧 블로그에는 레시피로 가득 찼다. 아끼는 사람들을 집으로 많이 초대해서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밥 한 끼씩은 대접하려 했다. 따뜻한 식사를 통해 모두 편안함을 함께 누리고 가기를 바랐다.
첫 사회생활을 같이 했던 언니들, 친구와도 수차례 만나면서 이제까지 함께 일하며 지냈던 것 마냥 일상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눴고,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시간을 이어갔다. 현재의 소속은 없어도 내가 그동안 잘해왔다는 사실을 종종 느끼며 자존감과 자신감을 놓지 않게 해 줬다. 25살의 나, 37살의 나.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재밌고 여전히 우당탕탕 청춘인 우리의 사이들을 예뻐해 줬다.
학교에서는 이 달의 멘토로도 선정되었다.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후배들을 도와줄 수 있어 뿌듯했는데, 그런 것까지 뽑히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빠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속도로 나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라 보람 있었다.
집에서,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대면 소통하지 않고 일하는 삶이 과연 나에게 잘 맞을지 수도 없이 생각하며 지내기도 했다. 여전히 답은 내리지 못했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며, 일희일비하는 간사한 게 인간의 참모습이니까.
밖순이인 나는 집에만 있는 것이 힘들어 늘 외출을 갈구했다. 하지만 어디를 나갈 때마다 '나가면 다 돈'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돈이 안 드는 곳만 골라가려고 머리 싸매던 시간들이 많았다. 수입은 없는데 계속 돈은 나가고 있고 모아둔 돈은 많지 않아 은근 눈치도 많이 보이고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2월에는 '재취업하는 다음 달의 내가 갚겠지'라는 심정으로 고삐 풀린 듯이 카드를 긁어대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무섭기도 하다.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곁에 함께해 주는 가족들이 수두룩인데도 자기 연민에 헤엄치다 밖으로 나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호르몬을 단기간에 과다 투여했음을 원인으로 삼고 싶다.
아무쪼록 그렇게 퇴사 후 꼬박 10개월의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시작이 있을 3월을 코앞에 두고 있다. 돌아보면 목표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를 얻은 것도 있었고, 목표했는데 달성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크게 후회는 남지 않는다. 실패하고 좌절한 매 순간마다 나는 버릇처럼 '~했었어야 했는데' 또는 '진작 ~좀 해둘걸'이라며 Should have pp, 즉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며 후회하고 자책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 리프레쉬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느꼈고 체득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10가지를 나누며 오늘의 마지막 매마수 기념 소회를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1. 모든 일에는 다 끝이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지만 결국 다 끝난다.
2. 성공도 실패도 다 제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3. 하나의 문이 닫히면 반드시 새로운 문이 열린다.
4. 당시에는 후회스러울 수 있지만 그것도 잘한 거다. 그 정도면 잘했다. 이미 최선을 다할 만큼 다했다.
5. 나는 언제나 내가 가진 에너지 총량을 초과해서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내 에너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잘 조절해야 하는 사람이다.
6.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현재에 충실하자.
7. 가족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8.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9. 경제적인 불안이 주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10. 그럼에도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해결하기 쉽다.
공식적으로는 4번째 회사, 인턴까지 포함하면 7번째 회사에 입사할 예정이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어떠할지, 나의 성장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일어날지 기대가 되기도 하다. 내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잠재력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회사 성장에 도모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