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하고, 그 질투를 덮기 위해 자랑을 하고.

by 깨알쟁이

나는 사실 질투가 되게 많다. 어릴 때에는 나랑 가장 친한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더 가까워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 서운함을 느꼈다. 외동으로 혼자 사랑을 독차지해서였을까. 나에게 향하던 관심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느낄 때 마음이 저려왔다.


나이가 드니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그냥 내가 마음을 먼저 닫고 만다. 상대는 모르는 새에 나 혼자 철컥. 그럼 내가 마치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써 마음을 꾹꾹 눌렀다. 비겁하고 지질해 보이겠지만 이게 나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다. 질투라는 감정이 나를 괴물로 만들지 못하게 빠르고 조용히 정리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남을 질투하는 이유라고 해야 할까, 분야라고 해야 할까. 그게 조금 바뀌었다. 결혼을 해서 그런지 ‘집’과 ‘아기’가 그 포인트가 되었다. 전부 아직 나에게 주어지지 못한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보이는 것만 보고 쉽게 판단하고 결론 내리면서 마냥 부러워하게 되었다.


몇 주 전에는 인스타에 사진을 두 번 올린 친구 한 명이 너무 부러웠다. 어느 날 친구는 인스타에 부동산 계약 파일 사진을 올렸다. 사실 전세인지 자가인지 월세인지도 알 수 없었는데, 부동산 계약서 파일 앞에 쓰여 있는 동네가 한강이 보이는 동네 중 하나였다. 애초에 나는 한강뷰를 동경하지도 않았으면서 ‘쟤는 어디서 돈이 저렇게 났길래 저기로 이사 가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다. 그냥 너무 부러웠던 거다. 유년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라 나랑 형편이 비슷하다고 넘겨짚은 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근데 나의 착각을 인정해야 하는 것도 이걸 질투하는 나 자신을 보는 것도 참 별로라고 생각했다. 내가 평생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 더 부러웠다. 거기서 생각이 끝났어야 했는데 곧바로 나는 내 현실을 바라보며 ‘아 나는 언제 서울 살아봐? 아니 경기도에서 집은 살 수 있나? 언제 무슨 돈을 얼마나 벌어야 집을 사는 거야?‘ 투덜대고 짜증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질투는 비교로, 비교는 자기 비하로 번져 나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 친구는 또 다른 게시물을 올렸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에서 찍은 케이크 사진과 고맙다는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기념일이라 분위기 내러 갔나 싶었다. 이어진 사진에는 와인잔이 있었고 ‘나도 마시고 싶다’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와인을 마실 수 없나? 아, 설마 임신을 또 했나?’

역시, 다음 사진으로 둘째 임신 소식을 알렸다. ’OO아, 우리 00월에 만나자 ‘라며..

친구는 한강 주변에 집도 장만하고 아이도 벌써 둘이다. 그렇다, 나는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우울해하기도 했다. 자연임신인지 시험관인지 알 수도 없지만 후자의 길을 걷는 나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축복이 왜 저 쪽에는 다 쏠려 있는지 궁금하면서 원망스럽기도 했다. 동갑이나 나보다 많은 사람이 자연 임신으로 애기가 생겼다고 하면, 예전보다 더 많이 부러움을 느낀다. 돈도 나만큼 안 들었겠고 병원도 이렇게 자주 안 다녔겠지. 호르몬 약 먹고 갑자기 울어본 적이나 있을까? 계획대로 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부럽고 계획에 없었는데 생겼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좀 얄미울 때도 있었다. 근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서, 너무 남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하늘이 노하셨나? 너무 옹졸하고 속이 좁은 나라서 아기를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 돌고 돌아 다시 나를 탓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다 울다 잠든 밤이 서너 밤은 되었다.


그래도 사람이 다 안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임신 준비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던 차에 취업이 먼저 되었다. 일을 쉬면서 경제적인 부담감을 크게 느껴왔는데 큰 거 하나 해결했다. 사실 임신 준비를 하는 이 시점에서 취업을 하는 게 맞을지 속으로 몇 번을 고민했다. 혹여나 나중에 권고사직 당하는 것은 아닌지, 입사하자마자 임신했다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했다. 가끔 임신을 특권 삼아 일하는 임산부의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든 빌런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럴 성격도 못 되지만 '아무래도 임신 계획 있으면 지금 취업하는 건 그 회사에 좀 민폐이긴 하지.'라는 말을 나에게 직접 했던 지인들도 있었기에 괜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냥 일단 하기로 했다. 확실히 된 건 취업, 아직도 언제 될지 모르는 건 임신이었고, 불확실한 것을 기다리기 위해 확실하게 따놓은 당상을 버릴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배포가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나 걱정을 끌어안고 들어간 회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직 2주밖에 안 돼서 설레발치기도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나름 대기업의 계열사라 그런지 복지가 생각보다 좋다고 느꼈다. 그리고 첫 직장이던 은행에 들어갔을 때처럼 이름만 대면 아는 기업이라, 구체적인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대기업답게 사원증 사진도 찍고 목걸이형 사원증을 받았다. 약 10년 동안은 지문으로 인식하고 출근하고 퇴근했는데, 오랜만에 회사 이름과 내 얼굴, 내 이름이 찍힌 사원증을 받고 나니 짧은 기간 안에 소속감이 확 생겼다. 4번째 회사라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사원증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고 느꼈고, 이제까지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고생했던 나에게 보상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역으로 질투의 대상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는 집이나 아기는 없지만 계속해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힘들었던 과정들을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나 결과적으로 이런 기업에 이직하게 되었다고 알리고 싶었다. 나 또한 사진 한 장으로 남의 인생을 판단하고 질투했던 것처럼, 인스타란 그런 공간이기에 자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역시 많은 지인들이 축하한다고 연락을 주었고 그들 중 몇몇은 이렇게 말했다.


"또 이직? 와 부럽다."


그렇게 나는 질투를 했던 나를 덮으려 질투라는 감정을 역으로 불러왔다. 내가 느낀 질투의 감정, 상대방도 느끼라고. 나만 힘들기 싫어서 나도 그 질투를 이용했다. 내가 갖게 된 것을 자랑하면서.


참 사람이 그렇다. 단순하고 간사하다. 옹졸하다. 질투가 나서 이글이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있을 땐 언제고, 남들이 나에게 질투하는 것 같을 때, 나를 부러워한다고 확실히 느낄 때에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진짜 옹졸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나는 부러워했던 친구가 잠시나마 덜 부러워졌고 '흥, 나는 취업했는걸? 나도 돈 벌어서 거기 살 수 있고 나도 아기 가질 수 있어!'라는 자신감도 생겨버렸다.


질투가 많은 나는 그렇게 나의 질투를 덮기 위해 자랑거리를 찾아 떠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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