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의 비시즌엔 야구를, 야구의 비시즌엔 배구를 봅니다
도쿄올림픽부터 나는 줄곧 여자 프로 배구 경기를 관람해 왔다. 직접 경기장에 쉽게 가기 위해 도로연수도 배워 경기도 화성까지 혼자 밤길에 귀가하기도 하고 엄마의 망원렌즈, DSLR을 빌려 제대로 선수 덕질도 해봤다.
그렇게 비인기종목인 배구라는 한 우물만 파던 내가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에도 빠졌다. 마침 배구 비시즌이 야구 시즌이고 야구 비시즌이 배구 시즌이기에 겹치지 않는다! 안 그래도 배구 안 할 때 볼 게 없어서 심심했는데 야구는 주 6일 경기라 심심할 틈이 없다. 아주 도파민 팡팡이다.
내가 느낀 배구와 야구의 공통점 그리고 내가 이 두 종목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이러했다.
첫째로 팀워크를 통해 인생철학을 배운다. 팀스포츠는 한 명이 아무리 잘해도 전체가 하나 됨을 보이지 않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우선 배구로 보자면 서브를 잘 넣어도 그걸 받아주는 리베로 그리고 공격해서 상대 코트로 넘겨야 하는 공격수의 역할까지 잘 해내줘야 득점으로 이어진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안타를 친 타자가 출루를 해도 그다음 타자들이 함께 출루하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모두 아웃이 된다면 안타는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반대로 안타 친 선수 뒤에 볼넷이나 또 안타를 쳐주거나, 혹은 가장 좋게는 홈런을 쳐준다면 더 많은 득점을 낼 수도 있다.
한 사람만 잘한다고 무조건 이긴다고 볼 수 없는 이 팀스포츠는 이래서 좋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일맥상통한다. 팀원이 없어 각자의 업무를 개개인이 고군분투한다 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팀으로 십시일반 힘을 모아 팀워크를 발휘하는 조직에 비해 능률이 오르기 쉽지 않다. 그 능률은 결국 성과로 이어지기에 팀으로 구성된 쪽이 성과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기 마련이다.
둘째로 신체적인 부딪힘이 크게 없다고 생각한다. 배구는 당연히 코트를 가운데에 두고 경기를 하기 때문에 같은 팀 선수가 공을 리시브하다가 부딪히는 예외의 순간 말고는 상대팀과 신체적인 충돌이나 몸싸움이 일어날 리가 전혀 없다. 그래서 신사 스포츠라고 하는 것 같다. 근데 보다 보니 야구도 신기하게 몸싸움이 없는 스포츠 같다고 느꼈다. 상대팀 수비와 출루한 타자가 몸을 태그 하면서 터치하는 경우, 송구하다가 살짝 부딪히는 경우, 공 받으려다가 같은 팀 선수끼리 부딪히는 경우가 있긴 한데 축구나 럭비처럼 몸싸움이 없어 상대적으로 보기 편한 것 같다.
물론 배구나 야구나 선수 간 몸싸움은 없지만 공에 맞는 경우가 다반사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상의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애석한 마음이다.
셋째로 흐름이고 기세다. 이건 사실 어느 종목이나 비슷할 텐데 한번 득점의 기회를 얻고 긍정적인 기세를 얻으면 갑자기 파바박 그 팀에서 연속 득점이 나오는 경우를 많이 봤다. 배구에서 서브를 하러 나온 선수가 서브 에이스를 만약 2점 이상 낸다면 코트 속에서 기다리고 공을 받고 던지는 나머지 선수들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공격을 부드럽게 잘하는 경우가 많다. 기세를 빼앗아온 거다. 야구에서도 비슷하게 한 선수가 2점 이상의 홈런을 치면 그다음 타자들이 좀 더 여유를 갖고 배트를 휘두르다 보면 안타를 낼 가능성이 높다. 야구는 특히 팬들의 응원 함성이 워낙 커서 그 기세는 배로 오르는 것 같다. 반대로 실점을 한 팀의 경우 한 명이 무너지면 전염병에 옮듯 다음 선수들도 갑자기 따라 자존감이 무너져 와르르 점수를 내어줄 때도 있긴 하다.
마지막으로 응원가들이 너무 재밌고 중독적이다. 배구는 한 득점을 해야 그 선수의 노래가 짧게 나오고, 원정 경기 때에는 응원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야구와 다르지만 그래도 재밌다. 야구에 비해 배구는 거의 매년 유행하는 가요로 바꾸는 선수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득점 하나 낼 때마다 율동과 함께 노래 불러주는 게 너무 재밌고 뿌듯하다. 야구 응원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너무 벅차올라 경기장에서 팬들의 함성만으로 눈물 쏙 뺄 뻔했다. 원정 경기 때에도 우리 팀 타자가 칠 타임이면 (매 이닝 초마다) 홈에서처럼 응원할 수 있다. 그래서 분위기가 비슷하게 이어지는 것 같고 너무 재밌다. 절대음감인 나에게는 음악은 너무너무 중요한 존재인데 야구는 아주 큰 부분을 음악에서 얻은 것 같다. 중독성 짙은 선수들의 응원가는 그만큼 쉽게 외워져 집관할 때에는 어렴풋하게 방송에서 들리는 간주에 맞춰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열심히 응원한다.
팀스포츠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이유는 참 무궁무진하다. 득점 하나 냈을 때 아이컨텍 하면서 하이파이브하는 것, 경기 마치고 이긴 날에는 어깨동무하면서 모두 둘러 모여 오른발 왼발 귀엽게 뛰는 걸 보는 것. 그들의 깨알 같은 팀워크 모먼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팬들에겐 경기 외에도 팀스포츠에 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 저녁에도 야구 경기를 봤다. 다행히 비가 안 와서 경기를 마지막까지 했고 우리는 역전승을 이뤘다! 오늘 아주 우리 팀 덕분에 찬란한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