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성화 Jun 08. 2023

이 한 마디가 나를 살렸다.

“울지 마라,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2018년 9월 10일 월요일,

첫째와 둘째를 서둘러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막내를 데리고 다니던 소아과로 갔다. 어제는 평온한 일요일이 아니었다.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막내가 안방 문을 열고 나오는데 왼쪽 다리를 끌면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일주일 전 단순 콧물로 시작된 막내의 감기 증상은 평소와 달리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아과 의사도 그냥 단순 감기라고만 했고 열이 나지 않아도 아기들은 찡찡댈 수 있으니 그럴 땐 4시간 간격을 두고 해열진통제를 먹이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만 했다. 낮에는 그런대로 잘 놀고 밥도 그럭저럭 잘 먹는 편이어서 이러다 나아지겠지 하고 처방받은 약만 꼬박꼬박 잘 먹이고 있었다. 그런데 밤만 되면 5분, 10분을 못 자고 계속 깨고 찡찡댔다. 시간이 갈수록 평소와 다른 막내의 행동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는데 다리까지 절고 나오니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이건 감기가 아니다.' 뭔지 모르지만 너무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고 싶은데 일요일이라 응급실 가도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하루를 더 참아야 했다.


평소에는 제 발로 잘 걸어 들어가던 진료실을 온몸으로 거부하면서 막내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소아과 원장님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막내의 모습에 직감을 하셨는지 소견서를 써주며 얼른 아빠를 불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다급한 마음에 서울까지는 생각도 못하고 천안에 있는 한 대학병원으로 갔다. 소아과 진료실에서 담당 의사는 고관절염이 의심되는데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고관절염일 경우 입원 기간은 한 달 정도 소요되고 항생체 치료 바로 들어가야 하니 입원절차부터 밟으라고 했다. 병실 배정을 받자마자 혈액검사, 초음파검사, MRI 촬영까지 했다. 초음파 검사결과 왼쪽 고관절에 물이 차 있는 것으로 보여 세침으로 물을 빼냈는데 맑은 물이 나와서 다행히 화농성 고관절염은 아니라고 했다. MRI 판독 결과도 단순 고관절염 같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물을 빼낸 직후 막내의 표정이 편해 보이고 밝아져서 정말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항생제는 48시간을 지켜봐야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수요일까지 지켜보기로 했는데 효과가 전혀 없었다. 막내는 쉬지 않고 이어지는 통증으로 잠을 계속 못 자고 있었고 그런 아이를 돌보는 나 역시 잠을 못 자기는 마찬가지였다. 병명도 모르는 데다 해열진통제도 4시간 간격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너무너무 아파하는데도 절대로 줄 수 없다고 했다.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고관절염도 아닌 것 같은데 뭐라 말도 안 해주고 올 때마다 검사만 하자고 그러고 아이는 아파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데 뚜렷한 처치도 안 해주니 화만 났다. 도대체 의사들은, 간호사들은 뭘 하는 건지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다. 병실에 가만히 있으면 더 아파하니까 침대에는 아예 올라가 있지도 못했고 밤낮으로 유모차에 태워 쉬지 않고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러면 찡찡대다 지쳐 잠깐잠깐씩 조는 게 다였다. 통증 때문에 5분을 못 넘기고 계속해서 깼다.


입원 3일 째에는 핵의학과에서 뼈스캔 검사도 해야 한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지금은 알지만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보호자인 나에게 말만 안 했을 뿐 백혈병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 회진 때 주치의 교수님께서 항생제가 잘 반응하지 않는다며 수술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곧이어 정형외과 교수님이 오셨고 1시간 정도 걸리는 간단한 수술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 줄로만 믿었다. 그래서 결국 입원 4일째엔 왼쪽 고관절 수술을 했다. 그러나 1시간 정도 걸릴 거라던 수술은 2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끝나지 않았다. 4일째 잠도 못 자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데 산 넘어 산이었다. 2시간 10분이 지나서야 수술을 집도하신 교수님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오셨다.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원래는 뼈에 구멍을 뚫어 고름을 빼내고 씻어내면 그만인데 뼈가 너무 약해서 구멍을 뚫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아 아예 시도조차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막상 뼛속을 들여다보니 있어야 할 고름이 없더란다. 하여 수술실에서 쓰는 큰 바늘로 세 군데를 찔러 만에 하나라도 있는 염증 물질을 빼낸 뒤 물로 씻어냈다고 했다. 만일을 대비하여 종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단순 고관절염이 아닌 것 같아 세포배양검사까지 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입원 5일째, 뼈 스캔 결과가 나왔는데 왼쪽 고관절 뼈뿐만 아니라 오른쪽 어깨뼈, 왼쪽 어깨 아랫부분도 병변이 있는 것으로 의심이 되어  전신 MRI 촬영을 또 했고 뼈 스캔 전문가에게 따로 의뢰해 재 판독한 결과 오른쪽 갈비뼈 1개에도 의심되는 부분이 있어서 추가로 전신 뼈스캔도 다시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열이 계속 안 떨어져서 새로운 항생제가 추가되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 아침, 전신 뼈스캔 결과 감염으로 의심되는 부위가 갈비뼈 여러 군데와 양쪽 어깨뼈까지 늘어나 있었다고 했다.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일주일 동안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검사만 계속하고 병명도 못 찾아내고 어떻게 해주겠다 얘기도 안 해주고 말이야. 이 병원엔 다 돌팔이만 있나? 이래서 큰 병원으로 가야 된다고 사람들이 그러는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내 아이를 위해서 감정 소모는 하지 말아야 했다.

회진이 끝나고 곧바로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사업을 하는 오빠가 발이 넓으니 막내가 큰 병원으로 가는데 혹시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전화를 걸었다. 말을 해야 하는데 오빠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말은 안 나오고 굵은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막내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칠 것 같아서 너무너무 무서웠다. 온몸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오빠는 지인을 통해서 가는 것보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견서를 받아서 가는 게 가장 빠르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울지 마라,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라고 하면서 얼른 의사한테 가서 얘기부터 하라고 했다.


솔직히 이 말을 듣는 순간 너무너무 서운했다. 일주일 동안 아이와 나는 한숨도 제대로 못 자서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고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있던 터라 오빠의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지금 가장 힘들고 괴로운 건 난데 남도 아니고 친오빠라는 사람이 이걸 위로라고 하는 건지 오빠가 참 미웠다.


하지만 미워하고 원망할 시간도 아까웠다.

아이를 서울 큰 병원으로 빨리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자마자 주치의 선생님께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선생님께서는 선뜻 서울아산병원으로 보내주겠다면서 진료의뢰서를 작성하고 일주일 동안 했던 모든 검사 결과를 같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하셨다. 안 보내주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는데 참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내가 생각했던 병원도 서울아산병원이었는데 운이 좋았던 걸까? 천안에 있는 대학병원 주치의 교수님도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오신 분이었다. 덕분에 인계가 잘 되었고 천안에서 고관절염 수술을 하고 가니까 정형외과 진료도 같이 볼 수 있도록 모든 조치가 다 취해졌다. 그러고 나서 그날(9월 17일) 저녁 7시, 129를 타고 서울아산병원으로 출발했다.


8시 20분,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실에 도착해 빠르게 검사가 진행되었다.

천안에 있는 대학병원에서도 마지막으로 할 예정이었던 그 검사였다.  바로 백혈병 검사 말이다.


9월 18일, 정작 보호자인 나한테만 얘기 안 했을 뿐 의료진들끼리는 짐작했던 대로 막내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9월 19일부터 항암을 했다. 그렇게 막내와 나는 서울아산병원 신관 14층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병동에서 기약할 수 없는 앞날을 향해 걸어갔다.


백혈병골수에서 생성되는 백혈구에 변화가 생겨 백혈구 암세포가 증식하고, 정상 백혈구 생성이 줄어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는 혈액암이다. 같은 백혈병이라도 초기 증상이 다 다른데 막내의 경우는 골수에서 백혈구 암세포가 빠르게 증식을 하면서 뼈가 팽창되자 극심한 뼈통증으로 나타났던 것이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나서야 막내가 왜 그렇게 잠도 못 자고 아파했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28개월 세 살배기 아기가 견디기에는 도를 넘는 통증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더 미어졌다. 복장을 아무리 세게 쳐도 아프지 않았고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 뭔지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정말 시작이었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일주일 동안 천안에서 울 거 다 울고 올라가서 그랬는지 막상 진단을 받고 보니 무섭거나 두렵지가 않았다. 전혀. 그래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투를 벌이면 그만이다. 이기면 되니까. 자신 있었다.

어느새 나도 오빠의 말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울지 마라,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오빠의 이 한마디가 한참 항암치료 중일 때는 물론 치료가 끝나고 완치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날, 재발했다는 말을 들은 날, 독하디 독한 항암약과 싸우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쓰라렸을 때, 폐포자충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었을 때, 갑자기 고열이 나서 늦은 밤에 급히 응급실로 달음박질쳤을 때... 힘들고 지친 날 수도 없이 많고 많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담담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빠의 이 한마디가 나를 보듬어 주었기 때문이다. 처음 들었을 당시에는 원망만 하고 미워했는데 지금은 오빠한테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오빠 자신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 오빠 스타일대로 위로를 해준 건데 그땐 진짜 몰랐다.


오빠의 단단한 이 위로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해서 나를 더욱더 강한 엄마로, 심지 굳은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주위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나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백혈병 아이를 돌보는 엄마라는 사실을 까먹는다고. 어쩜 그렇게 그늘도 없이 밝고 씩씩하냐였는데, 차갑고 서운하게만 들렸던 오빠의 이 위로가 나를 그렇게 우뚝 서게 만들 줄이야. 이 한마디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힘든 항암을 모두 이겨내고 막내는 다시 태어났다. 작년(2022년) 12월에 완치판정을 받고 지금은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도 다니고 아주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내가 먹은 단단한 마음을 어린 막내에게 하루도 빼먹지 않고 주입했다. 항암약과 항암 주사는 엄마가 대신 먹어줄 수도, 맞아줄 수도 없으니 약 잘 먹고 주사도 잘 맞으면 나머지는 엄마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그러니 엄마만 믿으라고. 엄마만 믿으면 아픈 거 다 낫게 해 주겠다고 매일같이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진짜로 다 나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살아가면서 앞으로도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는 어려운 상황에 주문처럼 외울 이 한마디.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이 한마디는 어딜 가도 나를 따라다닐 것이고 나를 붙들어 줄 것이다. 이 한마디는 정말로 나를 살렸다. 수백 번, 수천번.

작가의 이전글 저는 행정복지센터 기간제 근로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