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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Jun 06. 2023

저는 행정복지센터 기간제 근로자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의 잣대로만 보면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내세울 만한 경력도 없으니 경단녀라고 말하기 조차 어려워요. 40대 초반이니 나이로만 보면 팀을 이끌어나가는 장 역할을 맡고 있어야 하는데, 행정복지센터 산업팀에서 기간제로 업무 보조를 하고 있고 사치하며 살지는 않았으나 모아 놓은 돈도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초등학생 아들을 셋이나 두고 있으니 한 달 한 달을 사는 게 정말 녹록지 않은 소시민입니다.

한숨이 푹푹 나오죠?


하지만 저는 제가 좋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열심히 살았고 재밌게 살고 있으니까요. 2022년 3월 17일, 제가 살고 있는 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충남형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서를 받아야 하는데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최저시급이라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는데 무조건 한다고 했습니다. 막내의 백혈병 치료도 종결되어서 외래진료 주기가 길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일을 해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3주간의 업무 보조가 연장되어 지금은 2년 차로 일하고 있습니다. 운이 좋았고 저에게는 기회였습니다.


다 아실 테지만 요즘 농촌엔 고령 인구가 정말 많습니다. 동네마다 평균연령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어요. 저희 동네도 평균 80이 넘어요. 저희 식구들 빼면 아이도 없고 청년도 없습니다. 그래서 동네 부녀회장도 하게 되었어요. 몇 년째 공석이었거든요.


갈산면 새마을부녀회 소속 최연소이자 동네 부녀회장을 3년째 맡고 있는데요. 면에서 당장 3주간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믿을만한 사람이 있어야지요. 아무리 단기간이지만 아무나 뽑을 수도 없잖아요. 그러던 차에 산업팀에서 부녀회 명단 중에 제일 젊은 저를 본 거예요.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고 빠르고 정확하게 신청서를 받는 건 정말 자신 있었습니다. 똑같은 말을 하루 종일 반복해서 안내해 드려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눈은 똘망똘망 빛나고 표정이 밝으니 소상공인 어르신들께서 정말 많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글씨를 안 쓰다 쓰려니 잘 써지지도 않고 손이 떨려서 못쓰는데 신청서도 대신 써주고 진짜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다고 어디서 이런 사람이 왔냐고 그러셨어요. 3주가 다 지나기도 전에 떡방앗간 며느리라고 그러더니 일도 너무너무 잘한다고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실 일을 엄청 잘하지는 않았습니다. 새마을부녀회 활동도 그렇고 행정복지센터일도 그렇고 그저 맡은 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성심 성의껏 했을 뿐이에요. 젊은 사람 보기도 어려운 시골에서 이런 저의 모습들이 시골 어르신들 눈에는 예쁘게 보이셨을 거예요.


벌써 20년 전의 일입니다.

20대 초반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집과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서 일했어요. 손님들이 들어오실 때 눈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시간 동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밝게 웃으며 인사했고 나가실 때도 마찬가지로 친절하게 인사했습니다. 손님들이 안 오는 틈을 이용해 재빠르게 빈 물건들을 채워 놓았고 모든 물건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외워서 손님들이 찾으실 때 바로바로 알려드렸습니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집 근처 같은 라인에 편의점이 3개나 있었는데 매출이 가장 많은 편의점이었고 친절하니까 단골손님이 계속 늘어났던 기억이 납니다. 편의점 사장님께서 아예 편의점을 맡아서 해 보라고 제안도 하셨었는데 20대 초반에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라 거절하고 말았지요.


요즘은 시골에도 편의점이 없는 데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물건이 마트에 없으면 편의점으로 갑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직원들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손님에게 인사를 하긴 하는데 그냥 형식적으로만 하는 인사지요. 어딜 가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내가 일했을 때와는 많이 다르구나!’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게 다르니 일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이 다른 것도 당연합니다.

저는 어떤 일이든 사람을 상대해서 하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는 편이에요. 원래 이랬던 거 같아요. 고객이나 민원인을 상대로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진짜 어렵지 않아요. 기운이 없어 늘어져 있다가도 고객과 민원인을 마주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기운이 생겨요. 에너지가 솟아나고 의욕이 넘치며 씩씩해져요. 그냥 재밌어요. 그래서 사람들 눈에 친절하게 비치는 것 같아요.


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작년 5-6월과 올 3월에 충남농어민수당 신청서 받는 업무를 봤습니다. 그런데 올해 신청서를 받던 중 ‘22년 농어민수당 미수령자가 다섯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적 조사를 해 본 결과 두 분은 생존해 계셨고 세 분은 사망하신 상태였습니다. 첫 번째 할머니는 80만 원 중 45만 원만 받으신 상태라 35만 원 추가 지급된 것을 찾아 드렸는데 연유는 이렇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어떤 부부의 농어민수당 신청서에 이 할머니의 집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때문에 한 세대로 인식되어 45만 원만 나왔던 것입니다. 이장님께서 일괄적으로 신청을 하시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께서는 영문도 모르신 채 왜 본인만 적게 주냐고 하셨거든요. 사람들한테 얘기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더랍니다. 그러던 중 올해 농어민수당 신청을 하시면서 제게 살짝 물어보셨는데 이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충남농어민수당은 1인 농가는 80만 원, 2인 이상 농가는 개별지급으로 인당 45만 원씩 지급합니다. 다행히 작년 담당 주사님이 12월에 35만 원 추가 지급 요청을 해 놓은 상태였고 농협에서 찾아가라고 통보도 했다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할머니 앞으로 나온 수당이 농협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오래 걸릴 수도 있었는데 당일 퇴근 전에 해결해 드려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 분은 할아버지였는데요. 올해 수당을 신청하러 오셨다가 작년 미수령하신 분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찾아 드렸습니다. 세 번째는 사망하신 아버님 수당을 따님이 찾아갔는데요. 이 마을 이장님을 통해 타 지역에 살고 있는 따님 연락처를 알게 되어 대리수령할 수 있게 도와드렸습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사망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수령해 가실 수 있게 최대한 끝까지 도와 드렸지만 너무 늦게 오셔서 군으로 환수되는 바람에 수령해가지 못했습니다. 전부 다 찾아드릴 수 있었는데 아쉬웠습니다.


기간제 근로라 담당자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작년 담당 주사님도 없는 상태에서 이미 수당은 나와 있는데 못 받으신 분들 입장을 생각하면 찾아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저마저 묵인해 버리면 미수령자들은 자기 몫을 챙길 방법이 정말 없거든요. 조금이라도 관여되어 있는 사람이 찾아주지 않는 이상 민원인이 직접 추적 조사해서 찾아가기란 진짜 어려운 구조입니다. 무엇을 바라고 찾아드린 게 아닙니다. 당연히 제 일이라고 생각해서 했을 뿐입니다. 잠자고 있는 미수령된 농어민수당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농협에 직접 찾아가 알아보겠다고 했더니 현 담당 주사님께서 굉장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말은 안 했지만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직접 찾아가지 않았다면 첫 번째 할머니부터 막혔을 거예요. 할머니께서 따님과 농협에 직접 문의했을 때 농협 담당자가 이미 다 수령해 가서 없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다시 행정복지센터로 오셨으니까요. 사람들마다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현재 담당 주사님의 반응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개인주의가 흔한 세상에서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면 오지랖만 넓다고 오히려 흉을 봅니다. 그런데 저도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이라 제 마음이 가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저는 바쁜 업무 속에서 빠르게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더디게 가더라도 중요한 것을 놓치고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한테 중요한 일이든, 타인에게 중요한 일이든 우선순위는 없다 생각해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똑같이 중요해요.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니까요.


2년에 걸쳐 농어민수당 신청업무를 맡아보니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더라고요. 신청서 기록하는 것도 작년보다 올해가 훨씬 수월했고요. 중복되는 사람, 신청 불가한 사람도 쉽게 구분이 되었습니다. 신규 신청자인 경우에는 첨부할 추가서류가 있는데 이 또한 바로바로 낼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었습니다.


마흔 초반의 나이, 아들만 셋, 시부모님이 원해서 결혼과 동시에 시골 마을에서 같이 살고 있는 그냥 아줌마 입니다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아주 많습니다. 밤잠을 아껴서 책을 읽고 글도 씁니다. 캘리그래피 글씨도 쓰고요. 오롯이 내 시간을 갖기 위해서죠. 그러면 다음 날의 에너지로 쓸 수 있게 됩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면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모두 공무원으로 봅니다. 기간제 근로자이지만 공무원처럼 일을 하면 됩니다. 업무 보조이지만 업무 보조에 선을 긋지 말고 담당자처럼 마음을 먹고 일을 하면 됩니다. 시키는 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찾아서 더 하기도 합니다. 작년 농어민수당 미수령된 것을 찾아드린 것처럼요. 또한 어르신 민원인들께서는 모르는 서류가 날아오면 무조건 행정복지센터로 달려오십니다. 자식들이 멀리 사는 시골 어르신들은 더 그렇지요. 그럴 때 내일 아니라고 뿌리치지 말고 내 부모님 생각해서 도와드리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일이 더 재밌고 즐거워졌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참 신나는 일입니다. 보람이 넘칩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허기지지 않습니다. 뿌듯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듭니다. 비록 제가 가진 능력이 미미하지만 이런 능력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면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제가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주고 싶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능력을 점점 더 키우고 역량을 넓혀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두루두루 끼치고 싶습니다. 경제적으로 자유를 누려서 저희 막내가 아팠던 것처럼 아픈 아이들에게 치료비 지원도 해주고 싶습니다. 막내가 아팠을 때 받은 고마움이 너무나도 크거든요. 그리고 인생 소원인 만권당 서재를 지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곳에서 낭독과 강연, 토론을 즐기고 북스테이와 글씨 전시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만권당 서재를 꿈꿨을 당시에는 책방이 알려지기 전이었는데요. 요즘 들어 책방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제가 꿈꾸고 있는 만권당 서재와는 차이가 조금 있지만 지금의 책방에서 미래에 지어질 만권당 서재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행정복지센터에서의 하루하루는 제 꿈을 이루어가는데 동기부여를 해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일을 다 하고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책을 잠깐씩 보기도 하고 글감을 찾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기도 합니다. 잠깐잠깐씩 블로그 관리도 합니다. 근무 시간에 크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소소한 기쁨을 즐기고 있습니다. 남들의 시선에서는 고작 최저시급을 받는 행정복지센터 기간제 근로자이지만 저에게는 아주 재밌는 직업이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부분도 당연히 있고요. 일을 하면서 돈만 받느냐 재미와 의미, 보람까지 챙기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어떤 것인지, 내 직업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렇기에 살아가는데 동기부여가 되고 의미부여가 되는 행정복지센터에서 가능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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