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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Jun 04. 2023

최우수상이 우수상으로 바뀐 날부터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할까?

중학교 1학년 때 ‘과학의 날’ 행사로 독후감을 냈는데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책을 많이 읽어왔고 공부를 잘하는 또래 친구들과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독서 경험이 제로에 가까웠던 내가 1등을 한 것이다.


환경오염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없던 내가 단지 책 한권을 읽고 오존층 파괴로 인한 환경오염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염려, 그리고 해결방법에 대해 썼는데 최우수상이 될 줄이야…


게다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혀 몰랐던 때였다. 나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를 교무실로 부르신 과학 선생님만이 신입생인 나를 대견하다 여기셨지 다들 나를 의심하고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었고 책을 읽으면 글자는 읽었는데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 읽은 부분을 읽고 또 읽어야 겨우 이해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최우수상’이 어느 날 ‘우수상’으로 뒤바뀌었다.


학교 대표로 뽑혀서 도 대회로 내보낼 예정이었던 내 작품은 그냥 내 보내는 게 아니라 수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 딴에는 몇 번에 걸쳐 열심히 고친다고 고쳤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맘에 안 드는 글이 되어 버렸다. 얼떨결에 운이 좋아서 잘 써진 글을 더 잘 써보려고 노력했더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이었다. 마냥 시간을 끌 수 없으니 과학 선생님께서 우수상이었던 2학년 언니의 작품을 최우수상으로 올리고 내 작품을 우수상으로 하자고 하셨는데 바보같이 난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 졸업한 지도 25년 이상이 흘렀다. 지금의 나라면 막 열불이 나고 눈에 뵈는 것도 없이 막 따졌을 텐데 당시의 나는  왜 바보멍청이처럼 아무 말도 못 했을까?


그리고

신기한 것은 중학교 때 이 사건을 겪고도 난 자존심 같은 게 없었나 보다. 처음부터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글쓰기에 욕심을 내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30대 중후반까지 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러다 내 나이 서른여덟에 내 인생이 마구 흔들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가 어느 날 갑자기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진단을 받고 당장 내일도 기약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5차 항암 막 시작했는데 재발이란 시련이 닥쳤었고 치료가 막바지로 가고 있을 무렵에 폐렴으로 사망확률이 거론되고 24시간을 다투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당시 너무너무너무 무서웠지만 내 새끼는 내가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끌었다.


한 번도 어려운 골수검사를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 입원도 거부한 상태에서 단행했다. 처음 재발했다고 했을 때 담당 주치의 교수님께서 “지금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애 죽어요.” 했었는데 난 입원을 거부했다. 누구의 도움이었을까? 아무에게나 다 빌었었다. 제발 우리 막내 재발이 아니게 해 달라고… 세 번째 골수검사 결과에서 다행히 재발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래서 다시 항암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백혈병에 걸리면 항암 1차 때부터 치료종결 후 3개월까지 폐렴예방약을 매주 금토일 아침, 저녁으로 먹게 된다. 집중 항암 치료가 끝나고 이제 유지항암으로 바뀌니 한결 편해지겠다 싶었는데 웬걸 폐렴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폐렴예방약 먹으면 99.9% 예방된다고 해서 걱정 하나 안 했는데 0.1%에서 내 아이가 걸리고 말았다.


입원하자마자 의료진들이 떼로 달려오고 여러과에서 협진해 수시로 아이의 상태를 보고 갔다. 백혈병으로 처음 입원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의료진들이 다녀갔다. 그래서 폐렴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사망확률 뜨고 숨을 제대로 못 쉬어서 고통스러워했고 기운도 없어 쓰러질 것만 같았던 막내가 입원 3일째부터 빠른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폐렴균 검사 결과가 나왔을 퇴원 무렵에는 호흡과 맥박, 심박수, 산소포화도가 모두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막내처럼 암환자가 폐렴으로 입원해 12일 만에 퇴원을 했다는 건 정말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 큰 에피소드로 인해 수많은 백혈병 환아들 중에서 막내는 기억되는 아이로 바뀌었다. 늘 차트먼저 보고 진료하는 의사들이기 때문에 아이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짓지 못해 잘 기억 못 하고 보호자인 부모들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 잘 못해서 늘 상처(?)를 주는 교수님이었다. 그런데 두 가지 사건 이후로는 진료실 들어갈 때마다 얼굴 보고 이름을 기억하셨고 말씀도 정답게 하셨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셨다. “참, 알 수 없는 아이군. 두 고비나 잘 넘겼으니 허허.“


이후로 막내는 치료 종결까지 무리 없이 잘 지나갔고 작년(2022년) 12월 완치판정을 받은 이후로도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의료진을 믿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고 스케줄 지연됨 없이 항암을 제때제때에 잘 받게 하기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잘 먹였다. 심리적인 면에서도 아이가 엄마인 나를 전적으로 믿고 끝까지 잘 따라올 수 있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했다. 그 결과가 완치라서 정말 감사하다.


막내가 두 번의 큰 산을 넘었을 무렵 문득 이제는 두려울 게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막내는 이제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잠시 어지렵혀져 있었던 내 인생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막내도 이제는 점점 더 나아질 테고 머지않아 완치도 될 텐데 그때의 내가 지금에 머물러 있다면 나는 정말 싫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글이 쓰고 싶어졌고 책을 내고 싶었다. 내 인생의 유일한 한 권.


동기부여가 차고 넘쳐서 금방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단숨에 한 권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내 욕심, 욕망일 뿐이었다.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온갖 얘기들이 한순간에 뒤엉켜서 한 글자, 한 줄, 한 장 채우기가 너무너무 어려웠다. 미치는 줄 알았다.

왜? 도대체 왜 안 써지는 거야? 왜? 화가 났다. 무진장.

바보 같은 나. 답답한 나.


난 글쓰기 재능이 진짜 없나??


그러는 와중에 앞에서 말했던 중학교 때의 일이 떠올랐다. 경험이 없어도 잘 썼었잖아.

고등학교 때도 입시공부와는 거리가 멀어 재미도 없었고 추억도 별로 없는데 작문 시간은 유독 기억에 남고 다들 싫어했던 작문 선생님이 난 그렇게 좋았다. 작문 시간에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발표하는 일이 그렇게 뿌듯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2017년 첫째가 다섯 살, 둘째가 네 살, 셋째가 두 살이었을 때 삼성디스플레이 봄드림페스티벌(독서감상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이날 수상 리허설도 하고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고만고만한 아들 셋 육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때였다. 그 와중에도 잠을 아껴 써냈던 독후감으로 상을 받았으니 지하로 내려가 있던 내 자존감이 한순간에 지상 20층으로 껑충 올라갔다.


중학교 때 내 글을 지키지 못해서 최우수상이었던 작품을 우수상으로 받고도 아무런 대꾸도 못했던 나는 이제 없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다. 내 글을 키워나갈 것이고 내 작품을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노력하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정은 늘 뒤죽박죽이다.

2021년 3월, 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 독후감 대회에서도 보란 듯이 나는 크게 무너졌다. 존경하는 기업인이고 본받을게 많은 분이라 넘치는 의욕으로 오히려 글을 흐렸다. 내 실수였고 잘못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 썼는데…그래서 심사 결과 메시지를 받고 인정할 수 없어 오랫동안 많이 힘들었었다. 내 흐린 판단과 욕심으로 뭉쳐진 결과는 나를 눈뜬장님으로 만들었었다.


작품은 비록 수상에서 멀어졌지만 나한테는 보물이다. 다음에 또 이런 독후감을 쓰게 된다면 비교 분석이 되는 참조글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내가 쓴 글이기에 없어지는게 아니라 독후감 한 편은 어쨌든 살아남았다.


크게 반성했고 처음부터 책을 쓸게 아니라 글쓰기를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했다. 2021년 3월 30일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글쓰기인데 잘 쓰든 못쓰든 지금까지 꾸준히 써온 결과 진심으로 읽어주시고 정성껏 댓글을 달아주시는 이웃님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한 번의 실수는 한 번에서 멈추면 된다. 어리석은 것 같지만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깨달음이 생긴다. 배울 점이 반드시 있다.

과거의 실수는 글을 써 나가면서 거름으로 사용하고 책쓰기에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쓰고 있는 블로그를 진심으로 쓰고 진심으로 소통하면서 점점 더 성장해 나가고 싶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도 이제는 안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 진정 내가 행복하기 위해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꾸준히 계속 쓰고 있다.


편성준 작가는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에서 지금껏 그 어떤 글쓰기 관련 책 중에서도 주지 못한 용기를 주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유치할수록 좋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나의 실력을 알아주지 못한 비특정 심사위원들에게 소심한 복수를 기대하며 글쓰기에 진심을 쏟아붓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보란듯이 책을 내 놓겠다는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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