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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Jun 10. 2023

49일 동안 내 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내 몸은 내가 잘 알아야 한다.

2020년 3월 5일

1년 5개월 만에 짐을 싸서 홍성 집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막내의 외래 주기가 2주 간격으로 늘어나 이제는 얼마든지 우리 집에서 다닐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엉망진창인 살림과 그동안 엄마의 손길이 부족했던 첫째와 둘째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다시 내 집에서 예전과 같은 일상을 꾸릴 수 있게 됨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아이들 셋을 껴안고 뒹글 뒹굴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집에 내려온 지 3일이 지난 3월 8일, 예정대로라면 생리를 해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초경 이후로 원래 28일 주기로 아주 정확했었다. 셋째 출산 이후 26일 주기로 살짝 당겨지기는 했지만.


예정된 날짜에 안 했음에도 크게 걱정은 안 했다. 환경이 바뀌기도 했고 그동안 막내를 간호하느라 내 몸이 많이 힘들었던 것도 원인이 되니 그냥 그려려니 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안 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임신 가능성이 없음에도 임신 테스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2주가 가까워지는데도 생리는 시작할 기미조차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산부인과를 갔는데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대응에 더더욱 화가 났다. 임신 가능성도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번이나 테스트를 했는데도 비임신으로 나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럼에도 의사는 임신테스트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고야… 답답이.


소변검사결과 비임신이라 뜨자 초음파를 해 보자고 했다. 결과는 자궁 내막이 너무 두꺼워져 있었다. 자궁 내막이 두꺼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태는 생리 직전과 임신 두 가지다.


그럼 내 자궁 내막은?

평균적인 두께보다도 1.3cm가 더 두꺼운 상태라고 했다. 이 정도면 많이 두꺼운 거라고 했다.(정말 그랬다. 아무리 두꺼워도 11~16mm라고 했는데 말이다.) 마지막 생리 시작일로부터 46일째 되는 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암 전단계일 수도 있으니
지금 당장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견서는 바로 써 드리겠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이런 말 듣자고 내원한 게 아닌데… 난 지금 아파서도 안되고 막내 치료 끝나고 완치될 때까지는 절대로 아프면 안 된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지내왔기 때문에 동네 산부인과 의사의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당장 큰 병원 안 가고 지켜보면 안 되냐고 말씀을 드렸더니 냉 검사와 피검사를 하고 가고 결과 나오면 통보해 주겠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 2개월 정도 지켜보면서 생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고 하면 끝나자마자 내원해 초음파 검사로 자궁 내막의 두께를 비교해 보자고 하셨다. 이렇게 난 또 두 달 정도를 생리 유무에 집중해 살았다. 피검사는 암으로 의심되는 수치를 보려고 했던 건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냉 검사 역시도 특이한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하다.

왠지 할 거 같다가도 안 하던 생리가 산부인과 갔다 온 지 3일 만에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생리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호르몬에 달려있기 때문에 지금껏 아무 문제 없이 살아온 나는 약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처방받은 약도 없었고. 그렇지만 암 전단계 일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찝찝해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산부인과에서 오자마자 막내에게 먹이고 있던 글리코영양소를 마구 퍼먹었다.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봐야지’라는 생각에 정신없이 가루를 막 퍼먹고 물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서였을까? 3일째에도 열심히 퍼 먹었는데 팬티에 생리혈이 살짝 비치더니 그날 저녁부터 콸콸 쏟아졌다. 제때 안 나온 것까지 쏟아내느라 그랬는지 정말 생리양이 많았다. 평상시에도 7일 동안 생리를 하면 생리양이 많은 편이라 생리대도 늘 오버나이트, 대형 쓰다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중형, 소형을 쓰는 나였다. 대학 다닐 때도 2-3시간 이어서 강의가 있으면 생리혈이 새서 늘 신경 쓰였던 나였다. 생리통은 전혀 없었는데 양이 많아서 그날만 되면 늘 걱정이었고 불안했다.


49일 만에 생리가 정상적으로 시작되자 얼마나 내 몸에 감사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원래대로 7일을 했고 컨디션도 아주 좋았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26일 주기로 제때 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자궁 내막의 두께도 완전 정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큰 변동사항 없이 건강하게 잘하고 있다. 글리코영양소가 내 몸에 이렇게 쓰일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경험하고 나니 신비롭게 느껴졌다. 내가 글리코영양소를 먹기 몇 년 전 아기를 갖지 못하는 지인의 아들 내외가 있었다. 며느리가 선천성 불임으로 결혼 전부터 둘 만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는데 어느 날 신생아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연유를 묻자 아들 내외가 같이 글리코영양소를 계획적으로 먹었다는 것이었다. 이 사례를 기억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글리코영양소를 먹었다. 당시 다른 방법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과학 시간에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과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에 대해 배웠다. 다른 것은 다 까먹었어도 이 두 호르몬 이름은 기억이 날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생리 주기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호르몬만 해도 다섯 개가 넘는다고 한다. 책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의 2장 <피임약>에서 처음 알았다. 생각보다 많은 호르몬이 작용해 여성의 생리 주기가 정교하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인체의 신비’ 맞다. 지금보다 더 젊었던 날에는 28일 주기로 딱딱 맞춰서 하니까 주위에 생리를 잘 안 하는 친구나 동료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됐었다. 그러다 나에게 닥친 일을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겸손해지더라.


생리 주기를 조절하는 호르몬 중에서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생리는 멈춘다는 사실! 앞으로도 명심해야겠다.   


생리 주기는 다음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먼저 생리가 시작되면, 뇌의 아래쪽에 위치한 뇌하수체에서 배란을 준비시키는 호르몬인 ‘난포자극호르몬’을 분비해 난자주머니 속 ‘난포’를 성숙하게 한다. 이렇게 난소가 자극을 받아 난포가 성숙해지면  에스트로겐이 분비된다. 에스트로겐이 분비되기 시작하면 자궁 내막이 조금씩 두꺼워진다. 그리고 더 이상 난포가 성숙되지 말고 배란이 되도록 뇌하수체에서 배란 유도 호르몬인 ‘황체형성호르몬’을 분비하도록 만든다. 그러면 배란이 되고 난자가 빠져나간 난포는 황체라는 새로운 형태로 바뀐다. 이때 황체에서는 에스트로겐 말고도 프로게스테론이 같이 분비되는데 이유는 더 이상 배란이 되지 않게 배란 유도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기 위함이다.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량이 늘면서 2~4mm 정도이던 자궁 내막은 최대 11~16mm까지 두꺼워진다고 한다. 2주 정도가 지나면 황체는 자연스럽게 퇴화돼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들고 자궁 내막이 무너지며 생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생리가 시작한 날로부터 14일 후에 배란이 일어나 황체가 만들어지고 다시 14일 후에는 자연스레 퇴화한다. 이렇게 해서 생리 주기가 보통 28일 주기로 맞춰지게 된다.

 

그런데 임신을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정란이 자궁 내막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순간 황체가 퇴화하지 않고 계속 프로게스테론을 분비하도록 ‘인간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유산된다. 이 호르몬 덕분에 생리 주기가 멈추고 태아는 안정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임신도 안 했는데, 줄어들어야 할 프로게스테론 분비도 줄어들지 않은 채 자궁 내막이 계속 두껍게 유지되고 있었던 듯하다.


그 시기에 끈기 있는 냉이 많아졌고 가슴이 단단해지고 부풀어 오르는 등 흔히 생리 전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작 생리는 안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말이 49일이지. 마지막 생리 시작일로부터 다시 생리를 하게 된 49일째까지 정말 피가 말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안 하니까… 멀쩡하던 몸이 이상해지니 더 그랬다.(마지막 생리했을 때 9일 정도를 했는데 생리양이 줄지 않고 계속 많이 나왔었고 9일을 한 것도 처음이라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렇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2월엔 까마득히 몰랐다.)


아무튼 2020년 3월 31일(49일째) 이후로 지금까지 제대로 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 지레 겁먹고 큰 병원 가서 조직검사하고 그랬으면 지금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리코영양소를 막 퍼먹었던 게 약이 됐나 보다.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해.

글리코영양소 공부뿐만 아니라 건강 서적도 꾸준히 보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 나를 지키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이다.




막내가 투병해 온 시간 동안 나는 참 많은 것들을 겪었고 이겨내야 했다. 처음엔 그 시간만큼 나를 잃어버린 줄 알았다. 그래서 많이 아프고 힘들었었다. 그런데 세상에 헛된 시간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와 나를 통해서 알게 된 것과 공부하면서 터득한 게 어느 순간 내 재산이란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것이 아이와 나의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브런치를 시작해서 서툰 점이 많지만 글을 쓰면서 하나씩 깨닫고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생리를 다시 시작했던 2020년 3월 31일,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인체의 신비도 중요하고 내 몸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알아야 하는 것도 맞다. 이제는 건강을 더욱더 신경 쓸 나이도 되었다. 의사를 먼저 찾아가는 건 맞지만 의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서는 내 몸을 제대로 지켜낼 수도 없다. 살아가는 게 전부 공부더라. 살아가는데 직접적으로 필요한 공부로 내 인생을 채워 나가고 있으니 정말 뿌듯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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