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성화 Jun 13. 2023

아들만 셋,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엄마가 되자

아이들과 웃으면서 나누는 성 이야기

2021년 우연히 동갑내기 친구를 두 명이나 만났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홍성에서 말이죠. 홍성은 결혼하면서 터를 잡은 제2의 고향인데 10년 가까이 살면서 고만고만한 삼 형제 육아로 친구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기회로 작년 12월에 캘리그래피 전시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명의 친구 중 같이 전시를 하게 된 친구가 친한 친구를 초대했는데 알고 보니 제 중학교 동창이었어요. 그렇게 저를 포함하여 동갑내기 친구 넷이 되었지요.


우리는 전시회가 끝나고 지금까지 한 달에 한번 꼴로 만나고 있습니다. 한 명은 서양화를 그리고 저와 교회사모인 친구는 캘리그래피를, 중학교 동창은 민화를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만나면 얘기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고 서로에게 든든한 그런 사이라서 헤어질 때마다 늘 아쉬움이 큽니다. 그런데 터놓고 얘기하기가 좀 그런 게 생겼습니다. 바로 아이들 성교육이지요. 더 솔직히 말하면 아들 성교육입니다.


저는 저희 삼 형제와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편이라 부끄럽거나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데 서양화를 그리는 친구는 딸만 둘이라서 그런지 유독 많이 부끄러워합니다. 제가 남자의 성기인 ‘음경’과 ‘고환’ 이름만 대도 매우 수줍어합니다. 적응이 안 된답니다. 교회 사모인 친구는 아들만 셋, 중학교 동창은 아들 둘에 딸 하나라 표 나게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 친구도 어색해 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가정에서 평소에 대놓고 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거죠.


글 초반에 제 친구들 얘기를 했지만 저는 대한민국 보통 가정의 현실이 이렇다 생각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세대라서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들 셋을 키우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엄마인 내가 모르면 우리 아이들이 못난 남자로 클 수도 있겠구나' 남편까지 하면 아들이 넷이나 마찬가지인데 멋진 남자로 키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저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부했지요. 성교육 전문가만큼은 아니더라도 전문가처럼 책도 보고 강연도 듣고 질문도 해보고… 적극적으로 찾아가 저자와 솔직하게 얘기도 나누었지요.


2017, 2018년 당시 곳곳에서 성교육 강연이 꽤 많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2018년 7월 6일에는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 작가님이 우리 지역 홍성으로 오신 겁니다.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첫째가 6세, 둘째가 5세, 셋째가 3세였는데 아들의 성에 대해 한참 관심이 생겼을 때였거든요. 게다가 손경이 작가님의 강연이 있기 며칠 전에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을 읽었는데 이 책의 작가님이 오신다니요.


몰랐어요. 아들 셋 키우면서 TV볼 시간이 없어서 tvN <어쩌다 어른>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고 이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분인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남편이 홍주문화회관에서 강연이 있으니 가보라고 해서 그날 아침에 알았어요.


당시 홍성군은 2018년 7월 1일부터 7일까지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7월 6일 오후 1시부터 홍주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2018년 홍성군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이 행사는 홍성군여성단체협의회의 주관으로 홍성군 남·여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화합을 다지는 양성평등촉진을 위한 기념행사였습니다. 식전공연, 기념식, 명사특강, 문화행사, 어울마당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예정돼 있었는데요.

그 당시 미투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tvN <어쩌다 어른>에서 ‘With You’에 관한 이야기로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낸 손경이 강사님이  <Me Too 상황 속 자녀 성교육 지도법>에 대해 강연을 해 주셨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성의식과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 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더불어 다음 세대인 자녀들에게 올바른 성인식을 갖게 하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일상에서의 성교육 지도법’에 대해서도 사례를 들어가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정말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강연 시작 전에는 대기실로 손경이 작가님을 찾아가 직접 뵈었습니다. 책을 완독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기에 용기가 충만했어요. 책 내용도 생생해서 얘기 나누기도 딱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어느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냐고 물으셨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아들 셋을 출산하고 먹이고 씻기고 입히면서 아기 때부터 늘 봐왔던 게 발기였는데 어린 아기가 왜 발기를 하는지 몹시 궁금했었거든요.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아 답답했어요.


어른이라고 다 아나요? 딸만 둘인 저희 언니는 삼 형제가 아기였을 때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발기되는 음경을 보고는 “아기인데 왜 그래? 어머머 징그럽다. 오줌 나오려는 거 아냐?”라고 했었어요. 이유는 몰랐지만 매일 보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언니는 징그럽다고 하더라고요. 어른 남자인 남편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어요. 남자라고 다 아는 게 아닙니다. 학창 시절에 배운 적도 없었고 남들처럼 성적인 자극이 주어질 때만 발기가 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도통 시원하지가 않았는데 손경이 작가님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았어요.


‘발기’는 꼭 성적인 의도가 없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아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요.


특히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발기가 잘 됩니다. 아기 때부터 그렇지요. 사춘기 남자아이는 하루 평균 적게는 4~5번, 많게는 12번까지 한답니다.


음경으로 한꺼번에 피가 몰리면서 음경이 커지고 딱딱해지는데요. 이것은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피가 평소보다 아홉 배 정도 몰리니까 그렇답니다.


산소부족! 이게 원인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다가 쉬는 시간에 갑자기 일어나려고 할 때 발기가 되어 있습니다. 불편한 자세로 자다 보니 숨을 잘 못 쉬어서 산소가 부족해져 그렇대요. 그리고 만원 버스 안에서도 사람은 많고 산소는 부족하니까 발기가 되는 거래요. 성적으로 흥분해서가 아니라요.


머릿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습니다. 속이 다 후련했어요. 이런 신세계를 만나다니요. 너무너무 감동이었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친필 사인도 당연히 받아왔지요. 미션 성공. 대박 행운의 날이었습니다.


‘발기’ 하나만 놓고도 대부분의 성인 남녀가 잘 모릅니다. 모르니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잘못된 상상만 합니다.


성교육은 단지 성 지식만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관계’를 바탕으로 가정에서, 일상 속에서, 대화 속에서 지속적이고 일관된 훈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손경이 작가님은 말합니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리는 ‘자기 결정권’과 상대방의 성에 대해 이해하는 ‘젠더감수성’을 일상 속에서 가르쳐 주고 실천하는 것이래요.


여전히 모르는 게 많지만 손경이 작가님의 책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을 본 뒤로는 정말 더 당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막내는 급성림프모구 백혈병이었고 남자의 경우 재발이 된다면, 고환으로 재발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에 병원 갈 때마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교수님께서는 첫 질문이 항상 "고환은 잘 있나요? (비정상적으로) 커지지는 않았나요?”였다. 이렇게 물어보시고 바지를 내려 종종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막내는 세네 살 때부터 제가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자신의 성기 이름을 ‘고환’과 ‘음경’이라고 정확히 알고 말했습니다. 첫째와 둘째도 그렇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성교육을 받고 오면 늘 제게 궁금했던 걸 물어봤습니다. 한 번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나는 고환이랑 음경 고추가 있는데, 그럼 엄마 꺼는 뭐예요?”라고 묻더라고요. '남자는 고추가 있는데 여자는 왜 없냐고'가 아니라 엄마 성기의 이름을 물어봐주니 매우 흐뭇하고 기뻤습니다. 곧바로 “엄마 꺼는 음순이라고 해. 대음순과 소음순. “이라고 정확히 알려줬습니다. 가끔씩 까먹으면 상기시켜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핸드폰을 사달라고 하더라고요.(당시 코로나로 첫째는 5월 27일에 입학식을 했어요.) 친구들은 다 갖고 있는데 자기만 없다고. 바로 거절했습니다.

시골이라 행동반경이 크지 않았기에 연락할 일도 별로 없었고 핸드폰을 갖고 싶은 목적이 연락이 아니라 유튜브 보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대신 조건을 명확하게 달아 주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쯤 멋진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몽정이란 걸 하게 되는데, 그때 몽정파티를 해주면서 선물로 최신형 핸드폰을 사 주겠다고 말입니다. 첫째는 이걸 믿고 떼쓰지 않고 잘 다녔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첫째가 제일 큰 형이니 가장 먼저 몽정을 하게 된다는 생각에 “나도 빨리 몽정하고 싶다. 형은 좋겠다."며 부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삼 형제는 ‘몽정 파티’를 노래처럼 부르고 다녔습니다.


올해 첫째가 4학년. 몽정을 하면 선물로 사주겠다고 했던 약속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또래보다 성숙한 첫째에게 사춘기 비슷한 게 왔거든요. 그래서 시기를 당기게 되었습니다. 폰을 받은 순간 첫째가 눈물을 주체 못 하고 울었습니다. 물론 좋아서 운 것이지만 얼마나 좋았으면 울기까지 할까요.


한편으로는 미안했습니다.


아직은 초등학생이고 학교 방과 후 수업 끝나면 태권도 갔다가 아동센터를 들러 집으로 옵니다. 시골 사니까 평일엔 돌아다니는 데도 거기서 거기고 하니 급하게 전화할 일이 있으면 친구나 아는 형, 누나, 학교에서는 선생님 폰을 빌려서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말만 안 했을 뿐 이렇게 전화하는 게 얼마나 창피했는지 엄마는 아느냐고 며칠 전 울면서 얘기하는데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진짜 미안했어요.


전화기 빌려서 전화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렇게 하는 것에 전 너무 무심했습니다. 첫째는 자존심 상하고 창피했을 테고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싫거나 짜증 났을 게 분명합니다. 첫째가 느꼈을 감정을 그동안 고려하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엄마, 아빠, 친구들, 주위 사람들 모두 갖고 다니는 폰을 얼마나 갖고 싶었을까?(알면서도 흘려듣고 무시해 버린 저. 왜 그랬을까요?)


너무너무 좋아 입이 귀에 걸려 다물지를 못하더라고요. 진작에 사줄걸 그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몽정 파티는 유효합니다. 삼 형제라고 다 같지 않더라고요. 둘째와 셋째는 아이다운 맛이 더 큽니다. 형에게 새 폰이 생겼는데 별 관심이 없어요. 나중에 몽정 파티를 하게 되면 지금 형 폰을 달라고 그러면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비록 첫째에게 일찍 폰을 사주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인 건 맞습니다. 아직 겪어 본 적 없는 몽정과 자위행위, 자위예절, 야동 보는 것, 섹스 등에 대해서도 앞으로 할 얘기가 많지요. 몸교육을 넘어 자기 결정권, 성폭력, 젠더교육, 젠더감수성에 대한 이야기 역시 정말 너무 무궁무진해요. 서로 공부가 되고 생각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어려서 깊은 대화까지는 아니었지만 삼 형제와 성에 대해서 평소 궁금할 때마다 묻고 답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성교육이 부끄럽거나 몰래 조용히 하는 게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손경이 작가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아이들과 웃으며 지금보다도 더 깊이 있고 더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찐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좋은 남자’, ‘괜찮은 남자’로 삼 형제를 키워내고 싶습니다.


#아들성교육

#자연스러운

#성교육  

#양성평등  

#자기결정권

#젠더교육

#젠더감수성

#성폭력

#withyou

#metoo





작가의 이전글 49일 동안 내 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