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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Jun 15. 2023

참을 수 없는 아픔도 겪어봐야...

진짜 부모의 마음도 알게 되고 진짜 성숙한 인간이 되기도 한다.

이 글은 <이 한 마디가 나를 살렸다.> 글과 전반적으로 겹치는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생생하게 기억해서 저를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조금씩 편안해지고 게을러지려고 할 때마다 제 자신에게 주는 기록으로서의 성숙 고문입니다. 또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요.




아픔에도 강도가 있을까요?

슬픔이나 분함 때문에 가슴이 째지는 듯한 고통을 받을 때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을 쓰고요.

영어로는 'be heartbroken'이라고 나와있네요. 영어 표현으로 보니 더 확 와닿는 느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가슴이 미어지다'는 '마음이 슬픔이나 고통으로 가득 차 견디기 힘들게 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긍정적인 표현도 같이 갖고 있네요. '큰 기쁨이나 감격으로 마음속이 꽉 차다.'라고 말이죠. '먹먹하다'는 '갑자기 귀가 막힌 듯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다'는 첫 번째 뜻 외에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하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어감도 다르고 느낌의 차이는 있지만 '억장이 무너지다'라는 표현도 있어요. 극심한 슬픔이나 절망 따위로 몹시 가슴이 아프고 괴로울 때 쓴다고 나와있습니다.



   

위의 표현들은 2018년 9월 10일부터 17일까지 제가 느꼈던 감정이 과연 어떤 강도의 아픔이었나를 가늠해 보기 위해 찾아본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슬픔이나 고통으로 가득 차 견디기 힘들 때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을 한다는데, 세상에 태어나 이런 강도의 아픔을 누구나 겪는 것은 아니잖아요? 살면서 그저 평탄했던 제 마음에 쓰나미가 일어날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아들 셋을 자연분만으로 아플 만큼 다 아프고 낳았습니다만 죽을 것처럼 아팠던 산통도 출산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히기 마련입니다. 몸의 통증이나 고통은 시간이 지나 없어지면 기억에서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내가 아파서 2018년 9월에 겪은 부모로서의 아픔은 여전히 생생하고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도 몸소 느끼고 나니까 확실히 알겠습니다.


진단명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고관절염으로 의심받아 수술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백혈병이었는데 왜 서울까지 안 가서 '아픈 아이를 더 힘들게 했나?'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48시간 동안 항생제에 효과적인 반응이 없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그땐 정말 몰랐죠. 대증요법(환자의 증상에 따라 대처하는 치료법)으로 하는 현대의학인만큼 의사도 모르는데 어찌 제가 알았겠습니까. 통증과 열은 쉬지 않고 계속됐고 아파서 5분도 내리 못 자는 어린아이에게 병원은 해 줄게 없었습니다. 엄마인 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발만 동동 구르고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잠시라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통증을 잊을까 싶어 유모차와 휠체어에 번갈아 태워가며 데리고 다녔습니다. 병원 주변을 산책하면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서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었고 바람을 쐴 수 있으니 순간순간은 정말 통증을 잊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원인 모를 통증으로 밤에 한숨도 못 잔 아이가 유모차나 휠체어에 탔을 때 그나마 잠깐 조는 게 전부여서 그 당시의 순간순간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더 아프니까 아예 침대에 올라갈 생각을 안 하고 자꾸만 나가자고 했습니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겨우 소아병동 주변을 맴도는 것이 전부였으니 금방 한 바퀴를 돌고 돌았습니다. 혹시나 의료진들이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면서요. 챙겨간 옷도 없이 입원을 했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도 없었지만 통증 때문에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로 인해 씻기는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아이와 저는 일주일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웠기 때문에 몸과 정신이 사람 몰골이 아니었습니다. 톡 건드리면 정말 쓰러질 것 같았어요. 잠 못 자게 하는 고문을 당한 것처럼 핏기하나 없고 누렇게 뜬 상태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어린 아기가 견딜 수 있는 통증이 아니라서 하염없이 아파했는데 특별히 해 줄 처치도 없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아픈 아이를 두고 저도 제정신이 아니라 의사의 멱살을 잡을 뻔 했습니다만 그렇게 한들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왼쪽 고관절에서만 보였던 염증은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검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병변부위가 계속 늘어나 극심한 공포까지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병이길래 자고 일어나면 계속 늘어나 있는 건지 너무 무섭고 화나고 짜증 나 미쳐버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아파하는 아이를 안아주고 토닥토닥해 주고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니는 것밖에 해줄 수가 없었으니 정말 안 미친 게 이상했죠. 고스란히 혼자 떠안고 있었던 불안과 공포로 가슴에서는 천둥번개가 치고 있었습니다. 눈물은 쏟아지려고 하는데 아이 앞에서는 울 수도 없지요. 잠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걸어 다니며 가슴을 세게 쳐댔습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가슴을 칠 일도 없었겠지만 당시에는 아무리 세게 가슴을 두르려도 전혀 시원해지지가 않았고 치면 칠수록 오히려 더 답답해져 갔습니다. 이때의 답답함은 누워있는 저를 코끼리가 짓누르는 듯한 그래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심장 근육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막상 이렇게 말은 했지만 그 무엇으로 표현이 정확하게 될 수 있을까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상태에서 그냥 짐작만 했을 뿐입니다. 자식 있는 부모로서 이런 게 가슴이 찢어지는 거구나,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구나를 태어나서 처음 맛보았지요. 제가 아픈 게 낫습니다.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고 아픔입니다. 생지옥이고 생고문이 따로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편안했던 제 삶이 아이의 통증과 고통 앞에서 순식간에 쓸려 나갔습니다.


이런 쓰나미는 살면서 없으면 좋겠지만 남들이 못 겪어본 힘듦이 있었기에 부모로서 한 뼘 더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저라는 한 인간을 놓고 봐도 예전과는 다른 좀 더 나은 인간, 어른다운 인간이 된 것 같아 뼛속까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 슬픔, 아픔 등도 귀하게 받아들이고 견뎌봐야 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가슴이미어지다

#가슴이찢어지다

#부모마음

#아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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