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성화 Jun 19. 2023

아픈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더 이상 자책하지 마세요. 정말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평생 병원 문턱을 넘어 본 적 없으셨던 엄마가 2006년도에 갑자기 입원을 하셨습니다. 당시 엄마는 50대 중반이었는데 혈관 나이가 70대라고 했습니다. 입원하시기 전부터 협심증 증상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당시 모두 나가서 생활하느라 저희 4남매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협심증심장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3개의 관상동맥 중 한 곳 이상이 70% 이상 막혀서 심장근육에 피가 부족한(허혈)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엄마가 가끔씩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게 협심증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냥 으레 겪는 갱년기 증상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초기 증상은 어지러움, 메스꺼움, 피로, 식은땀 정도로 나타나고 여기서 더 진행이 되면 가슴을 쥐어짜는 느낌 또는 가슴 가운데와 심장 부위의 통증이 나타나는데 지속되는 시간이 5분 이내. 그리고 깜쪽같이 괜찮아지니 엄마 자신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하셨답니다. 고된 일로 늘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셨답니다.


본래 혈관은 70%가 막힐 때까지도 증상이 없기 때문에 막상 협심증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진행이 꽤 된 상태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자꾸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한 엄마는 동네 의원에 가셨답니다. 혀 밑에 놓으면 바로 녹으면서 통증이 호전되는 그런 약을 드시고 계셨던 겁니다.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말씀을 아예 안 하셨고 바쁜 일상에 쫓겨 건강관리는 꿈도 못 꾸셨을 테지요. 그러다 숨이 안 쉬어져 밤 12시에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자식들이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둘째 고모와 5일장이 서는 시장 안에서 백반집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을 위해 언제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셨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저희 4남매 도시락만 해도 7개였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른 새벽마다 도시락을 싸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제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은데 친정엄마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엄마의 헌신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또한 아무리 작은 식당이라도 식당일이 고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둘째 고모로 인해 엄마는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으셨는데, 먹고 살 생각에 그저 꾹 참고 견디셨답니다. 둘째 고모는 천성이 착하셨고 손맛이 아주 좋으셨지만 손님들에게는 말을 예쁘게 하지 않으셨어요. 속정은 따뜻한데 표현은 그렇지 않아서 손님들을 내쫓기까지 했습니다. 늘 피곤한 상태에서 엄마가 애써 일구어 놓으면 모래성 무너뜨리듯 하는 고모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곪아 터진 게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봅니다.


통증을 가라앉히기만 했을 뿐 관리를 안 해서 엄마는 급성심근경색 직전까지 가셨습니다. 협심증이 악화되면 혈관을 완전히 막는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좁아진 혈관을 혈전이 막아서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혈관을 순간적으로 확장시켜 증상만 가라앉히려다가는 더 큰 화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엄마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신 것도, 오래 계셨던 적도 2006년이 처음이었습니다.

엄마는 급하게 스텐트 삽입술을 하셨습니다. 금속망으로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키고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시술을 말합니다. 50대 중반인데 혈관 나이는 70대라서 심혈관성형술(혈관 속으로 풍선을 넣어 풍선이 부풀어짐에 따라 좁아진 혈관이 늘어나게 하는)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게 되면서 고혈압, 고지혈, 당뇨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4남매를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부인과 쪽으로 맘고생, 몸고생도 오래 하셨는데 그냥 참고만 사셨답니다. 때문에 심혈관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끝내고 여성병원으로 옮겨 꽤 오랫동안 입원해 계셨습니다.


가족들 모두 심혈관질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에 대한 상식이 부족했던 때라 스텐트 삽입술 이후로는 괜찮으실 줄 알았습니다. 매일매일 약 드시고 병원 관리받으시면서 10년 가까이 별문제 없이 지내오셨기 때문에 수술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쯤 엄마가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속도 메쓰껍다고 하셨습니다. 기운도 예전 같지 않아 도통 뭘 할 수가 없다고요. 삽입한 스텐트에 혈전이 생겨 다시 막힌 것입니다. 또 한 번 스텐트 삽입술을 하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스텐트 삽입술 자체는 잘 되었다고 했지만 엄마 본인이 느끼기에는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하셨습니다. 약하게나마 두통도 여전히 있었고 기운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고요. 100% 효과가 있는 치료는 없는데 우리 가족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지요. 스텐트 삽입술도 재발률이 30%나 된다고 합니다. 벌써 두 번의 스텐트 삽입술을 하셨고 관상동맥 질환이 많이 진행된 경우이기 때문에 결국 엄마는 수술까지 가셨습니다.


2016년 7월, 수술 날짜를 최대한 앞당겨 간신히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심장 내과에서 받은 스텐트 삽입술과는 달리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은 흉부외과에서 담당하더라고요. 이 수술은 우리 몸에 있는 혈관 일부를 떼어내어 좁아진 관상동맥에 우회로(돌아서라도 갈 수 있게)를 만들어 심장근육으로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해주는 수술을 말합니다. 6시간 넘게 걸리는 대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전날 엄마를 만나고 왔습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병원에서 가족 모두를 부르라고 했답니다. 수술과정에서 여러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고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 사망까지도 염두에 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전 막내를 출산한 지 두 달 정도 됐을 때라 산후조리중었지만 안 가볼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걱정에 한시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죠. 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아기도 중요하지만 나를 낳아주신 엄마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생후 2개월 된 막내를 데리고 무작정 엄마를 만나러 갔습니다.


엄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 이후 1년여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이 난리였습니다. 중증 급성 호흡기 질환이었던 메르스가 병원 분위기도 바꿔 놓았지요. 병실에 들어선 순간 빨리 나가라고 사람들이 더 난리였습니다. 옥상으로 올라가서야 엄마와 편하게 있을 수 있었고 엄마 얼굴을 직접 보니 걱정되고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내려와 그저 수술만 잘 되시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산후조리 중이었기 때문에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일곱 식구 살림과 육아가 버거운 때였습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실 때까지, 그 후 회복 중에 계시는 동안에도 많이 아프고 힘들어하셨다는데 전 병원 한번 못 가봤습니다. 그게 지금도 죄송하고 죄스럽습니다.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을 받으신 후로 심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머리 아픈 것도 없고 맑다고 하셨습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 제대로 온몸에 공급이 되고 다시 심장으로 잘 들어가는 일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엄마를 통해 크게 깨달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워요. 2006년 이후로 엄마는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혈관과 혈액을 정상으로 돌려놓지 못해서 엄마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협심증, 심근경색 약을 매일매일 드시고 계십니다. 게다가 당뇨로 인해 몇 년 전부터는 녹내장을 막기 위해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밤마다 안약을 넣고 5분간 있다가 다시 씻어내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계십니다. 엄마는 이제 혈액, 혈관과 관련된 질병에서는 더 이상 자유롭기가 어려워 보이십니다. 매일 꾸준히 걷기 운동과 식사 조절을 하시고 몸에 좋은 영양제도 챙겨드시게 하는데도 늘 기운이 잘 안 난다고 하십니다. 엄마가 기운 없다고 하실 때마다 또 문제가 생긴 건가 조마조마합니다. 그래서 심혈관 질환을 갖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듣고 보니 엄마와 비슷한 분들이 많더라고요.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아무 이상 없다고 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안 그래요. 기운도 없고 밥맛도 없고 매사에 의욕이 없으며 짜증이 많이 난다고 했습니다. 만성무기력증 비슷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을 하다가도 의욕이 너무 없는 날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지리 복도 없지’, ‘하늘도 무심하시지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냐’며 한탄을 늘어놓으십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열심히 일했는데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병들어 자식들에게 손만 벌리니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그럴 땐 이렇게 얘기합니다. "4남매 모두 대학 보내고 결혼까지 시키셨으니 부족함 없이 다 해주셨는데 뭐가 그렇게 미안하냐고"그러면 다른 부모들에 비해 해준 게 너무 없어서 더 미안하다고 속상해하십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님 세대의 헌신과 사랑은 이런건가봐요.


엄마의 병은 분명 엄마의 잘못으로 생긴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신세 한탄을 하십니다.

쉼 없이 자주 한숨을 쉬시니 보기에 참 안타까워요. 그냥 한숨이 나온대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십니다.




엄마의 큰 수술 후 2년이 조금 지난 2018년 9월에, 28개월 된 저희 막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첫째와 둘째가 옮겨다 준 감기 말고는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던 막내였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그때 저 역시 친정 엄마처럼 자책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도 밝혀내지 못하는 원인을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제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질문을 소리 없이 해대며 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처음엔 제 아이와 저만 보여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차츰차츰 병동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소아종양혈액과 병동에서 지내다 보니 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보통, 아이가 아프게 된 지 얼마 안 된 엄마들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독한 항암을 시작하면서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공포에 떤 아이는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의료진들에게 욕도 해보고 물건을 던진다거나 발길질도 해봅니다. 때론 항암부작용으로 이런 돌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만 근본적인 건 무서워서겠죠. 얼마나 무서울까요? 세상에서 하나뿐인 엄마가 보호해 주기는커녕 의료진과 한 패가 되어 자신을 못 움직이게 억압하는데 얼마나 배신감이 클까요? 아이가 어떻게든 항암을 받아야 하니까 이렇게도 구슬려보고 저렇게도 구슬려보다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 의료진들의 눈치를 보며 엄마는 아이를 다그칠 수밖에 없습니다.(가슴이 찢어집니다.) 항암치료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엄마도 낯선 병동에서 충격 그 자체인데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 아이는 더 공포에 떱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하고 태연해야 합니다. 눈물은 진작에 감추었지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엄마는 이제 자기 가슴을 후벼 파기 시작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우리 아이가…


아이가 독한 항암으로 잘 먹지도 못하면서 그나마 간신히 먹은 것도 토할 때, 기운을 못 차리고 몸이 축 늘어져 아무것도 못하고 넋이 나가 있을 때, 항암 부작용으로 걷지도 못할 만큼 통증이 있다거나,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거나, 불안과 우울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야기한다든가 등등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엄마들은 끝도 없이 나락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대신 아파해 줄 수도 없고 그저 곁에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니 죽을 맛이죠.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는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서 내 아이가 아픈 건가'하고 엉뚱한 상상도 합니다. 아이가 아픈 게 다 내 탓만 같고 엄마 자신이 죄를 져서 내 아이가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렸다고 치부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병을 진단받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일단 충격이 너무 심하고요.

믿지 못하겠으니까 밀어낼 궁리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뭐라고요? 그럴 리가요. 뭔가 잘못되었을 겁니다”라면서 사실을 강하게 부정합니다.


그러다 “왜 하필 내가?”, "내 아이가?"라며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저희 엄마도 그랬고, 제 아이로 인해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정과 분노, 원망의 시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감정소모만 커지고 건강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체력이 받쳐줄 때 서둘러 치료를 잘 받아야 합니다. 이건 정말 매우 중요합니다.


막내는 방사선 치료나 이식 없이 항암치료만 1차부터 6차까지 받았는데요. 5차 항암을 시작하면서 '재발'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끝까지 추적하고 버텨서 결국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고 중증 폐렴인 폐포자충폐렴(폐포자충라는 진균이 양측 폐를 침범하여 감염되는 폐렴으로 주로 면역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 주로 발생)으로 목숨이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이겨냈습니다.

중간중간 항암부작용으로 치료가 약간 연장되기는 했지만 3년 4개월간의 집중항암치료와 유지항암치료를 모두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치료가 종결되고 완치받기까지 추적관찰을 하는 1년도 잘 보냈습니다. 3살부터 초등학교 입학 직전까지 거의 5년(2018년 9월 19일~2022년 12월) 막내는 그 모든 것을 이겨냈습니다.

이제는 완치자로, 보통 사람들처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이가 힘들게 투병하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떠올라 혼자 끙끙 댈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의료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을 했고 우리나라도 의료선진국에 속하는데 왜 백혈병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나, 성인병이라고 불리는 질환들은 요즘 흔한 질병인데도 왜 완전히 고치지도 못하고 죽을때까지 약을 먹으라고 하나, 아픈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치료를 해도 죽고, 병명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모르는 희귀 난치성질환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이제는 의료 인공지능이란 말도 나왔는데, 원인도 모르면서 어떻게 예방을 한다는 말인지.

이런 의심들로 인해 현대의학에 끝없는 의문을 품고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할수록 저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해결되는 것도 없고요.


일단은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내 아이를 위해서, 제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도 흔들린 적 많았지만 그래도 병원스케줄에 맞게 제때제때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습니다. 최고로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몸을 만들고 엄마만 믿고 잘 따라오면 아픈 거 다 낫게 해 주겠다고 심리적으로도 단단하게 해 주었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계속해서 원인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제자리. 그러던 중 2019년 4월 어느날 밤 《새벽에 읽는 유대인 인생 특강》이란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미국 100대 기업의 약 40%를 소유하고 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부와 명성을 쌓고 있는데, 그런 힘이 유대인들이 읽는 경전에서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다음이 중요하지요. 유대교 경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성경 중 구약이 바로 유대인들의 경전인 '토라'라는 사실입니다. 무교인 저는 기독교를 모릅니다. 기독교 성경책과 유대교 경전은 별개의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전 세계 77억 명 중 약 1,500만 명이 유대인입니다. 이렇게 소수의 유대인들이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데에는 5,000년 동안 지탱해 온 그들만의 정신과 생각에 그 답이 있다는데요. 그게 경전으로부터 나온다니 그 경전이 궁금해졌습니다. 비종교인이지만 친한 언니한테 선물로 받은 성경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구약 부분을 보았습니다. 생전 처음 펼쳐보는 구절이 눈에 잘 들어올 리 없었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제 마음에 간절함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생각보다 잘 읽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창세기를 며칠에 걸쳐 다 읽고 나서 호기심에 신약성경을 펼쳐 보았는데요. 요한복음을 읽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3절까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1절: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2절: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여기까지 읽었을 때 저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뚝뚝뚝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더 읽어 내려가면 '예수라 하는 사람이 진흙을 이겨 소경 된 사람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해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믿는 건 본인의 선택입니다.


쉬지 않고 나오는 눈물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분명 저는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에 했던 속앓이가 눈물과 함께 한꺼번에 씻겨 내려갔습니다.


성화야, ○○이가 아픈 건 ○○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란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거란다.


이렇게 들렸으니까요.


유대교 경전의 비밀이라도 밝힐 것처럼 구약을 보다가 삼천포로 빠져 우연히 보게 된 신약의 한 구절에서 저는 분명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교회를 다니게 된 건 아닙니다.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라고 하니 성경말씀을 믿는 것이지요. 성경말씀은 무척 어려워요. 저와 같은 비종교인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으로 인해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3절까지가 와닿았을 뿐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참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저 위로의 한마디가 너무나 간절했을 거예요. 누군가로부터 저 한마디를 정말로 듣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으니까 결국 스스로 찾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천안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입원해 있는 일주일 내내 참기 힘든 통증으로 5분도 편하게 못자고 고통스러워하는 막내를 보면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시간을 되돌려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도 왜 아픈지 모르겠고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갑갑함 속에서 모든 것이 엄마인 제 잘못 같기만 했습니다.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는데 스스로 자책하고 주눅 들어 자존감이 땅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더 오래, 더 많이 자책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다른 엄마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본인이 아프다면 그분에게도 희망과 위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라면 나처럼 이 구절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런 말을 누군가가 해준다면 죄책감 아닌 죄책감에서 보다 빠르게 헤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직접 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지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내 아이가 큰 병에 걸리면 특히 엄마들의 마음엔 근거 없는 죄책감이 들어앉습니다. 그런 생각은 암세포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엄마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지배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엄마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자기 마음을 계속해서 후벼 파고 괴롭힙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래서 내 아이가 아픈 것 같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래서 아픈 것 같습니다. 그 무엇을 생각해도 전부 다 엄마인 내 잘못으로만 여겨집니다. 근거 없는 죄책감의 구렁텅이로 점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도 못합니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만약 본인 또는 자녀가 중병에 걸려 있다면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천천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1절: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2절: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내 아이가 뭘 잘못해서 또는 부모가 잘못을 해서 그런 큰 아픔이 찾아온 게 아니라고. 절대로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끝도 없이 자책하고 괴로워하면서 더 이상 귀한 시간 흘려보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찾다 보면 우연 또는 필연으로 가장해서 우리 앞에 큰 위로가 찾아와 평정심을 갖게 해 줄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기독교를 믿든 안 믿든 그건 그다음문제예요. 중요한 것은 종교가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좌절하지 않고 굳은 마음으로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그 정신력이 중요한 겁니다.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는 말도 있잖아요.

'내 아이가 또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서 이런 고통이 찾아온 거구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까지도 생깁니다. 우리는 그만큼 단단한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위로를 받은 순간 좌절했던 지난 시간들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로지 강인한 정신력과 흔들림 없는 행동만이 저를 사로잡게 했습니다. 저희 막내와 저는 결국 해냈습니다. 누구든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힘든 병과 싸우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이 위로가 진심으로 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픈 것은 당신의 잘못도 아니고 ,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당신은 강한 사람입니다. 이겨 내실 거라 믿고 신께서 딱 그만큼의 아픔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힘내십시오.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참을 수 없는 아픔도 겪어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