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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Jun 25. 2023

새로운 도전이었던 캘리그래피 환갑 현수막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 되자

지난 화요일(6월 20일), 행정복지센터에서 같이 근무하시는 주사님 중 환갑을 맞이한 분이 계셔서 다 함께 환갑파티를 열어드렸다.


주인공이신 주사님을 제외하고 비밀리에 파티 준비를 했는데 젊은 직원들의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 덕분에 정말 잊지 못할 환갑 파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주사님의 환갑은 좀 많이 특별해 보였다.

요즘에는 양력으로 생일을 대부분 챙기지만 부모님 세대는 아직까지도 음력으로 생일을 많이 챙긴다. 그런데 음력도 그냥 음력이 아니었다. 환갑을 맞이하신 주사님은 1963년 음력 중에서도 윤 4월 29일에 태어나셨다고 한다.


윤달은 나도 너무 어렵다. 그냥 상식적으로 4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는 그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니까.


그래서 나무위키에서 찾아보았다.

양력에서 1년은 365일이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음력에서는 다르다. 달이 지구를 열두 번 도는 데 354일이 걸린다고 한다. 태양년의 기준인 365.25일과 비교해서 한 주기마다 11일이 빨라지기 때문에 이렇게 몇 주기를 돌면 음력과 태양년 간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계절도 맞지 않게 된다고.


따라서 음력과 태양년 간의 차이를 한 달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날짜를 더 넣어주는 것인데 이때 넣는 것이 윤달이라고 한다. 보통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4년마다 한 번씩 2월 29일을 넣어주는데 이것도 윤달의 한 원리라고 한다.


더 자세히 알아보면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알고 넘어가기로 하고, 찾아본 김에 네이버에서 1900년 이후의 모든 '윤 4월'을 찾아보았다.


현재까지 1906년, 1925년, 1944년, 1963년, 1974년, 1982년, 2001년, 2020년이었고 주사님이 태어나신 이후로는 모두 네 번 있었다.

60해를 사는 동안에 진짜 생일이 네 번 밖에 없었던 것이다. 12세, 20세, 39세, 58세 때 이렇게.

그러니 앞으로 100세까지를 가정한다 해도  두세 번 있을까 말 까다.


진짜 태어난 날이 해마다 오지 않으니까 그냥 편하게 양력으로 '6월 20일'을 생일로 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부모님 세대는 이게 그냥 쉽게 넘어갈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 주사님께서도 한 10년 전쯤 호기심 반, 궁금함 반으로 천문대에 문의도 해 보았다고 하셨다. 돌아온 답변은 진짜 생일을 찾아먹을 수 없으니 1963년 당시 윤 4월 29일에 해당되는 양력 6월 20일을 그냥 생일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단다.


나는 평소에도 생일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이 주사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젊은 날에는 좀 그랬을 것 같다는 짐작이 들긴 들었다. 보통은 해마다 생일이 다 있는데 윤 4월은 60년 동안 살면서 네 번 뿐이었고 달력을 봐도 윤 4월 29일은 아예 쓰여 있지가 않았으니 없는 날이 돼버렸던 것이다.


  분명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태어난 날이 없다?

 

내가 태어난 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들면 나도 한 번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 같다. 친구들이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봤을 때 대답도 꺼려졌을 것이고 또 누군가가 “넌 생일도 없냐?”라고 그냥 툭 던진 말에도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했다.


인생 우여곡절 없고 순탄하게만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 내면에는 희로애락이 있겠지.


주사님의 생일과 관련해서 속사정을 알고 나니 깜짝 이벤트로 해드리는 환갑파티에 나도 뭔가 의미 있는 걸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캘리그래피로 축하문구를 써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캘리그래피를 배웠을 때 환갑, 칠순 같은 축하문구를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어서 막상 말해 놓고 나자 급 후회가 밀려왔다.

'이상하게 써지면 어떡하지?', '괜히 써드린다고 했나?' 하는 생각에 겁부터 덜컥 났다.

시간도 촉박한데 써지긴 하려나 의문도 들었고...


6월 13일 반나절의 고민 끝에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어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으로 괜찮은 문구를 마구 찾았다.

한참을 찾았는데 눈에 띄지 않다가 갑자기 딱 걸려든 글씨가 보였다.

안도의 한숨.

부엌일을 마치고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11시, 집중해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보고 따라 쓰는 건데도 내 마음처럼 글씨가 잘 나와주지 않았다. 몇 달간 손을 놓고 있었더니 그새 감을 잃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째...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졸리기도 하는데 지금 안 쓰면 또 쓸 시간이 없었다. 새벽 3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맘에 드는 글씨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흐뭇함이란... 정말 내가 환갑 현수막 문구를 썼다.

1회성으로 잠시 걸어 놓을 현수막이었지만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새로운 시도였고 평생 기억될 만한 작품이 되었다.


2020년 11월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풀잎문화센터에서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매주 월, 목 수업이 있었는데 원장님께서 편의를 봐주신 덕분에 시간 있을 때만 가서 배우느라 2급 자격증을 따기까지 나는 1년 정도가 걸렸다. 남들은 속성으로 2-3개월이면 배우는 것을 나는 참 오래 걸렸다. 코로나 시기여서 원장님과 1:1로 수업을 받은 적이 더 많았기 때문에 나는 진도 빼기보다는 실력 쌓기로 승부를 걸었다. 한 가지 과제를 해가더라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연습할 때는 주로 화선지에다 썼는데 화선지가 쌓여갈 때마다 글씨가 점점 나아지는 게 보여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작품을 내는데 한 가지 작품을 낼 때마다 과제로만 그치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상품 레이블을 제작하는 과제를 했을 때는 시부모님 떡방앗간에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참기름, 들기름 병과 미숫가루 봉투에 들어가는 글씨를 캘리그래피로 제작해 어버이날 선물로 드렸다. 시부모님 떡방앗간 유리문에 붙이는 스티커도 오래되어 새로 하신다기에 상호명과 맞춤떡, 기름, 고춧가루, 연락처를 캘리그래피로 제작해 드렸더니 금일봉까지 주셨다. 좋아서 배운 건데 응용해서 실생활에 적용까지 시키니 너무너무 뿌듯하고 즐거웠다.


사실 캘리그래피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던 단 하나의 이유도 있었다.


막내가 백혈병 치료를 받으면서 점점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할 무렵 문득 내 삶을 돌아보다가 책을 내고 싶어졌다. 언젠가는 건강해질 막내를 생각하니 희망이 생겼고 막내가 아프기 시작한 순간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멈춰야만 했던 내 인생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미래에 나올 내 책에 제목을 내 글씨로 써서 출간하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니 도저히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시간도 내게 되더라. (당시는 막내 항암 치료 중이었기 때문에 집과 병원만 오가던 때였고 이것만으로도 벅찼던 때였으므로)


글씨를 배우고 쓰는 동안에는 정말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밤과 새벽 시간을 이용해 난 글씨로 자유를 찾았고 만끽했다.

책 읽기와 글쓰기도 글씨만큼이나 나에게 빛이 되는 일이다.


일상에서 내 소중한 에너지를 갉아먹는 잡념들이 모두 지워지고 열정이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 차게 만들어 주는 새벽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신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나는 덤으로 얻은 경험이 너무도 많다.

2급 자격증을 따면 경험이 없어도 보통 강사로 활동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실력은 보장되지 않는다. 실력은 자격증이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써봤느냐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이다. 속성으로 배운 사람들에 비하면 내가 좀 더 많이 써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 역시 강사로 활동할 만큼의 실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원장님께서는 수업을 나가실 때 나를 데리고 가주셨다. 진짜 너무너무 감사하다.


첫 보조강사로 갔던 날이 2021년 9월 9일, 장소는 충청남도교육청연구정보원이었다.

2021년도 지방공무원 정보교육 연수 집합과정 마지막 날에 캘리그래피 수업이 있었다. 제목은 "힐링 캘리그래피"였다. 휴대폰에 붙이는 그립에 자기만의 글씨를 넣어 꾸미는 그런 시간이었다. 원장님께서 앞에서 설명을 해 주시면 나는 뒤에서 보고 있다가 수강생들이 글씨 연습을 할 때 다가가 글씨 쓰는 방법을 지도해 주었다.  원장님께서 칭찬도 해주셨다. 처음이었는데 떨지도 않고 많이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뒤에서 잘 받쳐줘 고맙다고 하셨는데 정말 어떤 칭찬보다도 듣기 좋은 말이었다.


두 번째 수업은 2021년 12월 28일, 남자중학교에서 단독 수업이었다. 이미 해본 수업이라고 원장님께서 나에게 아예 맡기셨다. 흥미적성 특별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수업이었는데 중학교 남자아이들이라서 그냥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해보니 나름 관심을 갖고 재밌게 참여해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수업을 맡겨주시고 믿어주신 문화센터 원장님께 진심을 담아 감사드린다.


초보들에게는 경험이 무기다.

뭐든 경력자를 우대하는 세상이다 보니 초보들이 설 자리가 없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지인의 부탁으로 결성마을학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캘리그래피 수업도 해봤다. 경험을 쌓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고 영혼이 맑고 순수한 시골 아이들과 함께해서 나 또한 얼마나 힐링이 되었는지 모른다.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예쁜 마음도 많이 받았다.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캘리그래피 전시회도 했다. 친구들 통해 이은희 캘리그래피 작가님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는데 작가님께서는 흔쾌히 내 자리도 허락해 주셨다. 덕분에 인생을 살면서 오기 쉽지 않은 기회도 나는 잡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너무 많은 복을 받았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기에는 표현이 너무 모자란다. 내가 뭐라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은혜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큰 용기를 얻어 앞으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환갑을 맞이하신 임주사님께 진심으로 축하를 전합니다.

비록 금년이 윤 4월 진짜 환갑 생신은 아니었지만 직원들이 마음을 담아 1963년 윤 4월 29일(양력 6월 20일)을 재현해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진짜 생일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던 주사님의 서운함이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으셨을까요?


주사님 덕분에 저는 환갑 현수막 문구도 써보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려요. 정말. 용기가 더 생겼습니다.

앞으로는 양가 부모님 칠순, 팔순, 구순 문구도 자신 있게 써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세상에 나올 제 책에 진짜 제 글씨가 새겨질 텐데 그때에도 이번 일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신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감사드리고 이번 환갑을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기쁘게 맞이하셨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더욱더 건강하시고 더 많이 웃는 날 이어가시기를 바라요.

행정복지센터 식구들에게 늘 진심이고 맡은 업무에 진심이신 주사님을 본받아 저도 더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이런 생각의 자리도 갖게 되어 기록하게 됨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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